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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표준 노트 - 창의력을 자극하는 174가지 그래프
팀 샤르티에.에이미 랭빌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5년 4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수학의 규칙이 노트의 규칙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 책은 노트다. 이 노트의 마법은 모든 페이지에 3가지 목적이 공존한다는 데 있다. 이 노트는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모아 놓은 갤러리이며, 일련의 비공식적 수학 과외수업이다. 또한 이 노트는 당신 것이니 무엇이건 당신이 원하는 것으로 채울 수 있다. 선들은 그 사이의 공간에 생각과 글과 그림을 초대한다. 당신이 채우길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각각의 페이지가 제공하는 독특한 초대를 즐겨보자.
선들을 바꾸면 생각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만약 똑바른 평행선들을 곡선이나 십 자 선으로 바꾸면 어떨까?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았던 면에 각각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면 어떨까? 만약 선들이 무질서해진다면 어떤 개념들이 살아날 수 있을까?
페이지의 모든 점은 한 쌍의 좌표이고 모든 좌표는 페이지의 한 점이다. 수는 공간을 표현하는 수단이고, 공간은 수의 지도일 뿐이다. 창조성은 모든 제약에서 벗어날 때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제약을 극복하고 상상력을 펼칠 때 진정한 창조성의 발휘된다. 우리는 규칙이 필요하다. 그것을 깨기 위해서라도. 이 노트가 수학의 창조적 측면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각 장별로 인상 깊었던 부분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장 : 직선. 수학에서 가장 단순하고 우아한 기본 구성 요소다. 그래서 직선으로 뾰족점, 교차점, 톱니 모양, 곡률의 착시까지 만들어 낸다. 이 이미지들은 음악의 모든 화음이 각각의 음들로 이루어지듯, 직선들의 조화로 교향곡이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절도'라는 페이지가 인상적이었다. 절도 있게 선을 딱딱 정해진 만큼만 그으면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탄생한다. 스카이라인 페이지를 통해서는 적분이란 개념을 알게 되었다. 구불구불한 곡선 아래의 넓이는 어떻게 계산할까? 적분은 선분 조각들을 사용해 계산을 한다. 곡선 아래를 직사각형들로 채워서 스카이라인(리만 합)을 그린다. 직사각형이 더 가늘고 그 수가 많을수록 계산이 더 정확해진다. 이렇게 단순한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곡률을 계산할 수 있다.
2장 : 포물선(抛物線). 포(抛)는 던진다는 뜻이다. 물(物)은 물건, 선은(線)은 직선 사선할 때 그 선이다. 포물선이란 물건을 던질 때 생기는 선이라는 뜻이다. 공중으로 돌을 던졌을 때 포물선 궤적으로 날아간다.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혜성도 포물선 궤적을 그린다. 모든 포물선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동그라미가 크건 작건 찌그러졌건 어쨌건 결국은 동그라미이듯.
어떤 것은 폭이 넓고 마루와 골이 완만하고, 어떤 것은 예리하고 좁아 보이며 급 커브를 그린다. '꼬집기'라는 제목의 포물선이 재밌었다. 양 끝을 포물선으로 처리하고 가운데는 직선을 그대로 두어 정말 꼬집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전하는 포물선을 보니 옛날에 계단 위에 올려놓으면 스스로 톡톡 튀면서 내려가던 무지개 링 인가? 하는 스프링 생각이 났다. 특히 '다항식, 70행' 와! 어떻게 원주율 π 마크가! 원주율은 동전 둘레가 동전 지름의 몇 배인지 알려주는 숫자인데, 이것은 늘 3.14로 같다. 나는 3.141592...까지만 외웠던 기억이 난다.
3장 : 다각형(多角形). 각이 많은 도형. 영어로는 폴리곤(polygon). 폴리는 많다, 곤은 각(角, angle)이란 뜻이다. 미국 국방부 건물이 5각형이라서 펜타(penta, 5) 곤이라고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다각형의 기본은 삼각형이다. 변이 4개인 사각형은 삼각형 2개가 결합된 것이고, 오각형은 삼각형 3개가 결합된 것이며, 나머지 다각형들도 같은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모양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정삼각형으로 시작한 프랙털 구조(Fractal pattern)와 정삼각형의 각 변을 3등분 해서 가운데 부분을 기준으로 정삼각형을 튀어나오게 해서 만든 아름다운 코흐 눈송이(Koch snowflake)의 기본이 다각형이었다. 정말 만화경을 보는 듯 황홀했다.
4장 : 원. 원으로 만들게 눈사람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6개의 원으로 꽃무늬가 나타나더니 32개의 원은 드라마에서 클럽 천장에 달려있는 반짝거리는 동그란 공 모양 같은 것이 탄생한다. '요요'라는 직선과 원의 콜라보는 정말 딱 요요 같아서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닥터 후에 등장하는 우주선 타디스와 기타 피크 같은 모양의 릴로 삼각형이 인상적이었다.
5장 : 파동. 파동은 반복의 원초적인 형태다.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의 반복은 사인 곡선의 오르내림으로, 자연계의 메트로놈이다. 우리의 삶은 주기와 파동을 따라 움직인다. 빗소리를 내는 원통형 악기인 레인스틱을 표현한 페이지에서는 빗소리가 후드득 퍼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전기로 삐죽 선 머리카락은 너무 비슷해서 혼자서 웃었다는.
6장 : 극한. 극한이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끝, 최대치, 최고 한도를 말하지만 수학에서는 리미트! 어떤 변수가 특정한 값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개념으로 쓰인다. 영원히 다가가지만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목적지가 극한이다. 한곳으로 계속 다가가는듯한 이미지들이 영원을 느끼게 해준다.
7장 : 회전. 회전의자에 앉아서 친구 보고 돌려달라고 하면 여기가 어딘지 정신이 쏙 빠지던 생각이 난다. 방향과 위치 감각에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 회전의 힘이다. 회전은 우리가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한다. 하지만 무엇을 해체하진 않는다. 네덜란드 판화가 에셔(M. C. Escher)는 빙빙 돌면서 끝없이 반복되는 파충류들을 구조의 해체 없이 방향 감각을 혼란에 빠뜨리는 놀라운 예를 보여준다. 정말 어디를 보나 비슷한 도마뱀 모양이 신기했다.
8장 : 확대와 축소. 이 노트의 페이지들은 물리적 대상일까, 아니면 수학적 상상력의 작품일까? 둘 다다. 닐 게이먼(Neil Gaiman)의 판타지 소설 <신들의 전쟁(American Gods)>에서 어떤 인물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섀도는 자신이 머리 위 30cm 높이에 있는 1달러만 한 크기의 달을 보고 있는지, 혹은 수천 마일 밖에 있는 태평양만 한 크기의 달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물리적 현실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대립한다. 하지만 수학에서는 그 둘이 서로 일치한다. 닐 게이먼은 "어쩌면 그것은 그저 관점의 문제일지 모른다"라고 썼다. 특히 모자이크 42 열에는 모나리자가 있었다. 책을 보면 좀 더 잘 보인다. 42개의 원들로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너무너무 신기하다!
9장은 극좌표계다. 극이란 북극이나 남극처럼 한 점을 말한다. 이 점의 위치는 거리와 각도만 있으면 된다. 영화 같은데 보면 레이더에 반짝이는 물체의 위치를 말할 때 이 극좌표계를 쓴다. 10장은 경로. 매개변수 방정식을 이용하여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경로를 그려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트, 웜홀 모양이 신비롭지만 매개변수 개념은 이해를 못 했다.
11장은 무작위성인데 각 페이지마다 딱 피카소 생각난다.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마지막 12장은 3차원. 우리의 착시 현상을 다룬다. 누에고치인 줄 알았더니 하트였고, 올챙이배도 신기하다. 정말 배가 뽈록 나온 것 같이 보인다. 어떻게 이런 착시 현상이 생기는 걸까. 마지막 페이지까지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요새 꽃 구경이 한창이다. 블로그 사진만 봐도 그 화려함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미술관에 간 적은 없지만 아름다운 명화를 책으로 구경하는 것도 너무 예뻐서 정신을 못 차린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음악도 그렇고 아름다움으로 나의 혼을 빼놓는 것들이 꽤 된다.
그중에서 수학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못하고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모양들이 전부 수확과 관련이 있었다니.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 책에 나의 고정관념을 깬 사건들을 적기로 했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라는 책에서 본 최정화의 '소쿠리 탑'처럼 시장에서 파는 천 원짜리 소쿠리도 이런 어마어마한 사랑의 탑이 될 수 있다니, 나의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졌던 생각이 났다. 신비한 수학 랜드에서 정신없이 잘 놀고 와서 어질어질한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