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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서 봄
수정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5월
평점 :
♥ 작가님께 직접 책을 선물받아 감사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피할 수 없지만 필요 이상으로 아프지 않게. 견디는 일로만 삶을 태우지 않게.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사는 것이 여행이라면 죽는 순간도 여행처럼 끝나겠지.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여행의 마지막 날처럼.
이 책은 수정 작가님의 동유럽의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와 서유럽의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그리고 남유럽의 그리스, 몰타, 스페인,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담아낸 시와 같은 사진들과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기록이다.
유명한 관광지에 대한 것은 여행 가이드북을 봐야 한다. 유튜브와 블로그도 아주 잘되어 있다. 다만 이런 것만으로는 어디가 유명하고 어떤 집이 맛있고 하는 정보는 얻을 수 있지만, 이 책처럼 마치 명화 감상을 하는 것 같은 사진이 전하는 감동은 없다. 스위스 뮈렌의 새벽안개가 낀 마을 풍경은 사진인데도 고요함과 맑은 공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유럽에 서 봄>이다. 유럽에서 봄을 맞이한다는 뜻도 되고, 유럽에 서서 본다는 뜻도 되고, 유럽에서 본다는 뜻도 된다. 나는 마지막 뜻인 유럽에서 보았다는 뜻이 맘에 든다. 억측이지만 유럽에서 앉아서 본 것을 찍은 사진도 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 같은.
그래서 동, 서, 남 유럽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보고 온 저자는 스위스와 프랑스가 마음에 남아 2권은 스위스, 3권은 남프랑스에 가게 된 게 아닐까?
공백의 시간은 산소처럼 유용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을 통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힐링한다. 온통 할 일 투성이로 지내는 현대인들은 잠시의 휴식 시간에도 핸드폰을 확인하느라 자연을 들여다볼 틈이 없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모처럼 화면 속이 아닌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작가님께서 소중한 여행을 선물해 주셨다.
동유럽에서는 체코의 프라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를 보고 서유럽으로 간다. 먼저 네덜란드. 나는 풍차와 튤립만 생각나는데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이 있었다. '해바라기'와 '별이 빛나는 밤'이 진열된 상점도 구경했다.
벨기에는 만화와 와플, 홍합이 유명하다는데 홍합이 너무 짰다고 표현하지 않고 홍합은 초심을 잃은 짠맛만 느껴졌다는 표현에 역시 우아하게 맛없다는 말을 하시는 작가님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영국 하면 런런 타워 브리지가 유명하다. 그런데 더 샤드라는 72층 건물이 다리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의 시청사보다 템스 강변에 있는 거대한 대관람차에 더 관심이 갔다. 얼마나 크면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이나 걸리나 모르겠다. 나는 하이드 공원에서 나무를 신기하게 들여다보는 아기와 대영박물관에서 전문가용 카메라로 사진 찍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다음은 에펠탑이 있는 파리다.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에 있는 그림들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금으로 장식을 한데다가 화려한 조명이 더더욱 그림들을 빛나게 했다. 첫 만남이어도 다정한 거리는 오래 걸어도 행복한 이끌림이 있었다는 낯선 파리의 야경. 그래서 남프랑스가 이 책의 시리즈 제3권을 탄생시킨 게 아닐까.
몽마르뜨 언덕은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언어들로 '사랑해'라는 말을 적어 놓은 사랑해 벽도 특이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돌에 새긴 위대한 교향곡'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표현이 기억에 콕 박힌다.
저자는 그림을 볼 때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지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 한다. 완전 몰입의 경지다. 나는 그냥 멋있네~ 하며 지나갈 것 같은데. 내가 파리에 가면 미술관은 안 갈 것 같은데. 조르주 퐁피두 센터는 TV에서 본 적이 있다. 공사 중인 건물 같아서 기억에 남았었다.
개선문이 우리나라 동대문, 남대문처럼 그냥 문인 줄 알았는데 전망대가 있다는 사실. 나선형의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오르면 별 모양으로 뻗은 파리의 대로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치 아래에는 이름 없는 병사의 무덤이 있고 헌화와 추모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다.
베르사유 궁전, 루브르 박물관을 뒤로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간다. 괴테 할머니 전영애 교수님의 여백 서원과 괴테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인지 '괴테 하우스(Goethe Haus)' 사진이 유독 반가웠다. 물보다 많이 마신다는 맥주 축제 사진도 흥겹다. 나는 독일 뮌헨 역에서 고기와 빵만 있는 심플 버거를 먹어보고 싶다. 로텐부르크를 들려 스위스로 향한다.
말로만 듣던 마터호른 산, 손가락 하트에 산을 담은 사진도 너무 예뻤다. 사진으로도 스위스의 맑은 공기가 전해지는 듯하다. 떠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잘 보기 위함이다. (p.135) 있던 자리를 떠나 보면, 멀리서 혹은 낯선 곳에서 나를 발견하고 느낀다는 말은 책 속 여행에서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신기함 같은 걸까?
살아가는 동안 자신에 대해 알고 가는 것이 여행자의 목표이자 선물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스위스라는 나라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유럽에 서 봄> 2권이 스위스인가 보다. 감사할수록 감사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늘 체험한다며, 감사한 일들로 둘러싸여 숨 쉬고 살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이 마음이 축복이라면서.
애초에 나는 떠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몰타에서 확인한다. (p.151)
그리스와 지중해에 있는 섬나라 몰타를 거쳐 스페인으로 간다. 스페인은 음식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 같은 보께리아 시장이 정겨웠다. 이탈리아는 로마의 산타 마리아인 코스메딘 성당 서쪽 벽에 있는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à, Mouth of Truth)사진이 특이했다. 늘 정면에서만 봤는데 옆에서 보니 하수도 뚜껑이었다는 사실에 수긍이 간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려도 좋다는 서약을 했다고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졌다.
소렌토는 자동차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 있는 해안 도시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작가만의 특별한 시각으로 똑같은 풍경을 이렇게 다르게 담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보았던 유명한 건축물들을 가까이서 찍은 사진들에는 작은 조각상들이 말을 걸고 있었다. 그냥 돌 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동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내가 주도해 가는 책 속 여행이었다. 속도도 내가 조절할 수 있고 멈추고 싶은 곳에서는 얼마든지 그 장소를 느끼며 맑은 공기와 눈부신 태양을 충분히 느껴보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것들과 매우 비좁은 골목도 가봤다. 시장에서는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이래서 여행 에세이 집이 인기가 있나 보다. 여행지 해설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기에. 여행과 같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선물해 준 책이었다.
여행은 다음을 기약하는 욕심으로 부자가 된다. (p.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