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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 프로메테우스의 꿈과 좌절
테리 이글턴 지음, 박경장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5년 1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2011년 출간된 이 책은 "만약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익숙한 비판들이 모두 또는 대부분이 틀린 것이라면?"이라는 단순한 물음에서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의 내용은 마르크스에 대한 가장 표준적인 비판 10가지를 택해서 마르크스가 옳았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덤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주의할 것은 차례에 나오는 각 장의 제목이 반박 주장이라는 것! 예를 들면 '1. 마르크스주의는 끝나지 않았다'는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이글턴의 반박이다. 어떤 비판들에 대한 반박이냐는 각 장 제목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나와 있다.
난 이 제목을 사람들이 마르크스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마르크스 주의가 끝났다는 내용이 나와야 하는데 아무리 읽어도 없길래 알고 보니 각 장의 제목이 모두 이글턴의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주장이었던 것. 즉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범죄자의 범죄 수법이 지능적이 되었다고 해서 경찰 업무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된다고 얘기하는 거였다.
한 가지 더 참고할 사항은 이 책에서 저자가 마르크스라고 할 때는 보통 그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대중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엥겔스를 포함하는 말인 점이다. 슬로우 리딩을 해야 하는 책이지만 잘 곱씹으며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마르크스는 통섭의 지성인이었던 것 같다. 철학, 심리학,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서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던데, 외국에서는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다윈보다 위대한 사상가라고 대접받는다. 나는 마르크스 하면 공산주의만 생각나서 마르크스가 러시아 사람인 줄 알았다는? 독일 사람이다.
마르크스의 저서 중에서는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로 유명한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실제 역사의 경로를 바꾸었으며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를 밝혀냈듯, 우리 생활의 이면을 파헤쳐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실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계급투쟁의 역사란 이제까지의 역사가 모두 계급투쟁이란 말이 아니라 계급투쟁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근본적이라는 의미다.
마르크스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공산주의다. 공산주의 하면 북한이 생각난다. 북한 하면 빨갱이란 단어가 생각이 난다. 붉은색은 프랑스 혁명 때 급진파들이 붉은색 깃발을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구소련이나 중국 깃발을 보면 온통 빨갛다. 북한 깃발에도 파란색보다 빨간색이 훨씬 많다.
그런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같은 말일까? 워낙 내가 이런 쪽에 무지하다 보니 AI를 검색해도 잘 모르겠다. 그나마 이해한 것은 사회주의는 착한 아이.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눠주는 아이. 공산주의는 완전 착한 아이. 내가 가진 것을 반띵하는 아이. 이 정도였다.
사회주의는 사회가 함께 사는 곳이니까 정부가 학교 선생님처럼 규칙을 정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다 같이 잘 살자는 이론이다. 부자가 조금씩 양보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 즉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잘 살자는 생각이다.
공산주의는 함께 생산(共産) 하고 함께 나누며 완전히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공산주의는 너와 나는 평등하니까 피자 한쪽도 공평하게 똑같이 나누자는 것인데 그깟 피자야 똑같이 못 나눠 먹겠냐 싶다. 그런데 내가 가진 것을 아예 공평하게 반띵 하자고? 내 돈 다 뺏어서 공평하게 나눈다고? 갑자기 우리나라가 공산주의가 돼서 니 빌딩 내놓고 가난한 사람들과 반띵 해야 한다면? 나야 아주 좋다. 하지만 돈이 많은 사람에겐 많이 억울할 것 같다.
그러니까 매우 가난한 사람에게는 공산주의=유토피아다. 하지만 중산층이나 부자들도 그럴까? 으리으리한 내 집 내 놓고 후줄근 한 곳에서 사는 게 유토피아일까? 그래서 저자는 4장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이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현재의 모순을 드러내고 실천을 통해 현실을 변혁시켜 나가자는 실천 운동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진정한 평등은 모두 똑같이 대접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각자 다른 필요를 균등하게 돌보는 것이다. 그럼 각자의 재능을 발견해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훨씬 더 다양하게 분산되어 예측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사회가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공산주의다.
마르크스는 진정한 부란 인간의 창조적인 잠재력이 절대적으로 발현된 것, 즉 미리 정해진 잣대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인간의 능력의 개발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마르크스가 추구했던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요새 모든 기업들이 모셔간다는 통섭형 인재가 자신만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절대적으로 발휘해서 만든 스티브 잡스 같은 느낌?
옮긴이 박경장 교수님의 말을 읽다가 '자본주의 모순이 극에 달한 이 시대에 왜 마르크스가 소환되지 않느냐는,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비판으로서만 유용한 것이냐는 말에는 감동의 눈물이 글썽했다.
책의 뒤표지에 있는 '이글턴 특유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명쾌함'의 의미는 책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느껴진다. 맛보기로 조금만 아래에 가져와 봤다. 계급투쟁이 모든 것을 다 포괄할 수는 없다고 하는 내용이었는데, 체 게바라가 트럭에 치였다면 계급투쟁의 사례로 꼽을 수 있겠지만, CIA 요원이 운전했을 경우에나 가능하다는 말이 재밌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사고일 뿐이다.
시장 사회주의에 관한 설명 : 약간 미친 자본주의 집단이 초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전근대 부족을 기술적으로 세련된 기업가로 변모시키려 한다고 상상해 보라. 뻔히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이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한 비난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건 걸스카우트가 양자물리학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p.66)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 : 미래가 공허한 환상이 되지 않으려면 실현 가능해야 하고, 현실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런 미래는 현재를 스캔하거나 엑스레이로 찍어 그 안에 잠재된 미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한테 헛된 욕망을 품게 할 뿐이다.(p.104) 마르크스의 이상은 여가이지 노동이 아니었다.
다양성 : 마르크스는 평등이란 관념을 경계했으며, 모두가 등에 국민보험 번호가 찍힌 작업복을 입을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 (p.317) 그가 보기를 희망했던 것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었고,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적대적이었고,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의 적이 아닌 심화라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경제적인 것에 주목했던 것은, 그것이 인류에게 끼치는 힘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의 유물론은 확고한 도덕적, 정신적 신념과 양립 가능하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중간계급의 위대한 유산인 자유와 시민권과 물질적 번영이의 계승자라고 보았다. (p.318)
나에게는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서 AI에게 단어 뜻을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고 하며 읽었다. 테리 이글턴은 영국의 문화 비평가이자 문학 평론가로 영국 신좌파의 대부인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제자라고 한다. 올해 82세 양띠. 현재 랭커스터 대학교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알려 준 이 책을 통해 나도 저자의 팬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