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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 의무론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ㅣ 현대지성 클래식 61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2월
평점 :
♥ 현대지성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말은 제2권 유익함에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키케로는 유익함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그들이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았다.
<키케로 의무론>이라는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신호등이다. 우리 모두는 신호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납세와 교육의 의무도 있는데 하필 왜 신호등이 먼저 생각났냐 하면 낮에는 당연히 신호를 잘 지키는데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차들도 다니지 않는데 나 혼자 있다. 빨간불이다. 나는 신호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니 빨간불인데 기다릴까? 아니면 아무도 없으니 그냥 건널까? 나는 그냥 건널 것이다. 우리란 나를 포함하므로 나에게 빨리 간다는 유익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 집 근처에 좁은 골목길인데 교차로라 신호등이 있다. 처음에는 신호를 칼같이 지켰는데 지금은 그냥 차가 없고 보는 사람도 없으면 빨간 신호에 건넌다.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나도 같이 기다려준다. 이것이 내가 찾아낸 유익함이다.
이제껏 기다렸는데 내가 빨간 불에 그냥 막 간다. 그럼 그 사람이 얼마나 어이없고 뭐 저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유연하게 행동하면 나는 욕 안 먹어서 유익하고 기다린 분들은 잘 기다렸다고 생각하게 돼서 유익하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결론이다. 내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전이라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들에게 쓴 편지가 어려워 봤자 얼마나 어렵겠냐 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그래도 내게는 꽤 어려웠다. 그래서 가장 먼저 맨 뒤에 있는 해설을 읽었다. 일단 워낙 오래전에 사셨던 분이신데다가 나는 역사 지식 0인 지라... 사람 이름들이 길고 낯설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혀서 깜짝 놀랐다. 번역하신 박문재 번역가님이 한국어를 아주 잘하시는 것 같다.
키케로는 자신의 아들에게 요새는 철학자들이 의무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 대세라고 한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집안일이든 자신에 관한 일이든 삶의 어느 부분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안일이라는 말에 나는 큰 며느리라 제사를 지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반드시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할 의무도 있었다. 어휴...
키케로는 의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곳은 스토아학파, 아카데미에 학파, 소요학파뿐이라고 했다. 해설을 보면 키케로는 자신을 아카데미아 학파 소속으로 밝히고 있지만, 그는 당시 활동 중인 소요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나는 모든 학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키케로는 <의무론>을 집필하면서 스토아 철학자 파나이티오스라는 사람의 책을 많이 참조했다는. 그래서 1권과 2권의 핵심 내용은 파나이티오스의 <의무론>에서 가져다 썼고, 3권만 독자적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이때부터 나온 것은 아닐까?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너무 심플하다. 제1권 도덕적 올바름, 제2권 유익함, 제3권 도덕적 올바름과 유익함의 상충. 이게 끝이다! 목차가 이렇게 심플한 책은 처음 봤다. 책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마 편지 3통의 내용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한눈에 보는 <키케로 의무론>이라는 상세 목차를 본문 핵심 내용에 맞추어 만들어 놓았다. 책의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 목차가 있는데 이 책은 없으니 박문재 님이 이렇게 정리를 해 주셔서 독자의 이해를 도운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나는 독서를 할 때 빠짐없이 꼼꼼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 보니 어려운 부분은 건너 뛰고, 관심 없는 부분도 패스하고,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읽어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목차는 솔직히 책 제목 같아서 읽고 싶은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서 그럴 수도? 이때 이 한눈에 보는 목차를 이용하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밖에 사치가 정당한 경우, 가난한 사람의 감사, 봉사의 기본은 재산이 아니라 인격, 이기심 대 자기희생, 우선순위 기준, 범죄 사기 및 형사 사기와 법률, 신뢰가 늘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해악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을 택하라고 말했다 등 각 권별로 마음이 가는 것을 먼저 읽어도 좋다. 당연히 처음부터 정독하며 2천 년 전의 사람과 소통해 보는 것도 뜻깊을 것 같다.
나에게는 74 페이지에 있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국정을 운영하려는 사람은 플라톤이 제시한 두 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첫째 시민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모든 일을 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둘째, 국가 구성원 중 일부 계층만을 돌보느라 나머지를 소홀히 하지 않고 전체를 돌보아야 한다. 국가 경영은 후견인 역할과 마찬가지로 국정을 위임받은 자들의 이익이 아니라 위임한 이들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148 페이지에 있는 말도 현재 시국과 관련된 것 같아 신기했다. 무려 기원전에 키케로라는 분이 생각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공감이 된다는 것은? 인간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일까? 인간 안 변한다?
대중은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인물을 국가 최고 통치자로 선택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 그 인물이 실천적 지혜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의 지도 아래 이루어내지 못할 일이 없다고 믿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정의를 함양하고 유지해야 한다. 이는 정의 그 자체를 위해서이고 동시에 우리 명예와 명성을 위해서 이기도 하다.
내가 이래서 고전과 어려운 책을 안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는 건 모른다는 뜻이다. 솔직히 뭔가 좋기는 한데 이해는 못 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서평단을 할 것이다. 이런 고전이 이해되는 날까지. 그런데 왜 서평단이냐고? 내가 남과의 약속은 잘 지키는데 스스로는 약속 안 한다. 백퍼 안 할 게 뻔하니까. 그래서 마감일까지 꼭 써야 하는 서평단으로 억지로 문해력을 높이는 중이다.
내가 키케로도 의무론을 잘 이해하진 못했지만 내 수준에서 본 이 책의 핵심은 유익함이다. 아마 키케로도 <키케로 유익론>하면 아무도 관심 없어 할 것 같아서 <키케로 의무론>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상하게도 우리가 남의 이익을 중시하는 것 같은데 유익론이라면 관심이 안 가고 의무론이라면 확 관심이 간다. 이런 느낌을 기원전의 사람이 알았다는 게 신기했다.
키케로는 아들에게 이제까지 본인이 배운 지식을 전하면서 결국 내가 행복하고 나에게 먼저 유익해야 그 풍요로움이 사회로 확산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