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사랑스러워 쉬이 잠들지 못하였답니다
한재우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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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겨울의 고운 빛은 모두 이곳에 모였다네 (冬節佳光摠此移 동절가광총차이)

제목도 표지도 달을 주제로 한 듯한 아름다운 자연을 담아낸다. 하지만 내용은 달만 나오는 게 아니고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풍경을 한시로 쓴 것이다. 한자 능력 검정시험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가끔 공부에 지치면, 힐링 삼아 아름다운 삽화와 함께 한시를 감상하면 어떨까?

드라마 같은데 보면 한시를 읊는데 소리 내서 읽으면 운율이 있어서 노래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옛날에는 놀 것이 별로 없어서 노래방 대신 한시를 낭독한 것? 나는 글자 수가 정해져 있으니 아무 글자나 넣어도 운율은 당연히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한시(漢詩)란 말 그대로 한자로 지어진 시(詩)다. 나도 옛날에 한시를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이 시집을 통해 계속 보다 보니 한시의 느낌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꾀꼬리 사이좋게 뒤섞여 놀고'를 黃鳥好相交(황조호상교)라고 표현했는데, 유리왕의 황조가는 제목을 알아서 황조(黃鳥)가 꾀꼬리인 건 알겠고, 사이좋게를 好(좋을 호)라고, 뒤섞여 놀다를 相交(서로 상, 사귈 교)라고 한다. 나는 논다니깐 유원지 할 때의 遊(놀 유) 자를 쓰지 않을까 했는데 이것이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인가보다.

이 책은 절구다!

한시에는 절구(絶句)와 율시(律詩)가 있다. 이 책은 모두 절구다. 떡 만드는 절구가 아니라 4줄로 짧게 딱딱 절구 소리처럼 끊어지니까 짧은 게 절구로 외웠다. 이 절구에서는 가래떡 4줄이 나온다. 그래서 절구는 4 줄이다. 그럼 긴 건? 율시라고 한다. 긴 바이올린 선율~을 생각했다. 8줄로 이루어진 시다. 이 책에는 안 나오니까 시험 볼 거 아니면 몰라도 된다.

그럼 4줄로 된 절구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5언절구와 7언절구가 있다. 5개의 언(言, 말)으로 되어 있다. 즉 한자가 5글자라는 뜻이다. 7언절구는? 당연히 한자가 7개겠지. 처음에는 좀 쉽게 5언절구가 나오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5언절구와 7언절구가 섞여 나온다. 이 한시는 5언절구 인지 7언절구 인지 먼저 확인한 다음, 한시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다. 2줄로 된 자유시도 있다.

내가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던 시를 소개한다. 한자는 책에 있다.

그날 오후

천 가닥 늘어진 버들가지 꾀꼬리 사이좋게 뒤섞여 놀고

저무는 하늘가에 비 내리려 하니 거미는 그물을 거둬 몸을 숨기네

버드나무와 꾀꼬리 그림만 봐도 힐링 된다. 그런데 거미는 왜 없을까? 힐링에 방해돼서 안 그린 걸까? 나만 안 보이는 걸까?

봄비 내린 농촌

봄비 내린 뒤 분주해진 농촌에 짙어진 보리 빛은 들과 논을 물들이네

책 읽기를 마치고 골목길 거니는데 해 질 녘 이웃집 방아 찧는 소리 정겨워라

보리나 쌀이 익으면 황금 들판으로 변한다고 한다. 본 적은 없지만 초록 들판은 본 적이 있다. 게다가 아파트 층간 소음은 스트레스인데 방아 찧는 소리가 정겹다니까 아이들의 뛰는 소리를 방아 찧는 정겨운 소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의 여유를 주는 시였다.

봄에 취하다

때맞춰 내린 단비가 초당을 촉촉이 적시고 개구리 여럿이 개골개골 울어 댑니다

별별 꽃들 시새워 봄 낯을 화사하게 가꾸니 나는 풍광에 나비는 그 향기에 취하였답니다

나는 별별 꽃 들이래서 별(星, star)? 이 왜 나오나 했는데 별별을 한자로 보니 백화(百花), 많은 꽃들, 다양한 꽃들, 온갖, 갖가지의 꽃 들이라는 뜻이었다. 별별 사람 다 있네 할 때 그 별별(別別).

달그림자

내 몸을 따르는 그림자 벗 삼아 바람 부는 난간에 기대어 달을 보았지요

맑은 경치에 이 마음 가눌 수 없어 침소에 드는 것이 절로 더뎌졌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무엇인가? <달빛이 사랑스러워 쉬이 잠들지 못하였답니다>가 아닌가? 이 시에서 이 한시집 제목의 잠들지 못하는 힌트를 얻고 '별천지'라는 시에서 제목을 만든 것이다. 내 생각이다. 나이 들면 잠을 잘 못 자는데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을 하니 갱년기조차 멋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늙어감도 아름다움이 된다고 알려준 시였다.

한적한 산골 풍경을 배경으로 한 시들이라 '방아 찧는 아이'라는 제목의 시를 보고 아이가 절구에 방아 찧는 모습을 그린 시인 줄 알았는데 졸면서 머리를 책상에 콩콩 방아 찧는 거였다. 한가롭고 나른한 시골 풍경이 그려져서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이렇게 편안한 시를 읽으며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그림들도 감상하며 마음의 여유를 가져본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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