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이와 같이 하라
김원균.우순애 지음 / 좋은땅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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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량 청소년이 아니라 불행을 겪은 청소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선돼야 한다.

비행 청소년이나 범죄소년들은 대부분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거나 가정이 해체되어 부모로부터 1차 방임된 상태가 대부분이다. 정서적이나 경제적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냉대에 익숙하며 방치와 학대에 놓여 있다. 편견에 몰린 아이들은 반발심과 반항심만 키운다. 어린 고양이가 여린 발톱을 세우듯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는 것이다.

부모가 양육할 의지가 없거나 알콜 중독 등으로 양육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방치된 아이들은 결국 국가가 양육하는 교정 시설에 보내진다. 바로 소년원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왜 비행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실상을 듣다 보면 혐오보다는 연민이 앞선다. 부모 잘 만난 주동자는 변호사를 선임한 덕에 집으로 돌아가고, 돈 없는 아이들은 소년원으로 간다.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하지만 도와줄 사람은 없다.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소년원을 여러 번 들락거리며 청소년기를 다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 자신들을 냉대하는 사회에 분노와 원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소년들의 문제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풀어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이 책은 김원균 목사님이 전국의 소년원을 다니면서 소년원 안에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사를 보내고, 소년원생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글이다. 소년원을 나왔으나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의 공동체인 겨자씨 마을과 사명자의 길을 걸어온 목사님 부부 그리고 함께 일한 여러 교회와 동역자들 이야기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소년원 선교 이야기'와 우순애 사모님의 '겨자씨 마을 이야기'의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두 분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사회에서 소외된 소년원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이분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모님의 이야기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사회의 이면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티슈도 많이 썼다. 드라마가 그래도 현실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목사님의 어머님은 남의 집 살이를 해서라도 공부시키겠다고 결심하고 홀로 서울로 올라왔다. 형은 입주 교사가 되고, 평생 금광을 쫓아다니시던 아버지는 목사님이 16살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목사님을 소년원 아이들을 위한 선교 사역자로 쓰시려고 하나님께서 일찍부터 가난과 서러움과 멸시를 경험하게 한 것 같다고 한다.

사역(事役)이란 믿음을 표현하고 전파하는 일이다. 종교에 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목사님은 한국 독립교회 선교 단체 연합회의 제1회 목사 안수식에서 1998년 49세 때 목사 임직을 받았다. 소년원 아이들을 떠나지 않기 위해 선교사 직분으로 20년 동안 사역했던 것이다. 목사님이 양육한 고봉소망교회 아이들에게 직접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으셨다고 한다.

겨자씨 선교회

1978년 거자씨 선교회를 창립하고 잃은 양 찾기 프로젝트 시행에 들어갔다. 불광동 소년원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던 날 5백여 명의 베이지색 작업복을 입고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는 소년원생들을 보며 목이 메어 한동안 침묵하며 서 계셨던... 다윗 왕이 시편에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길 잃은 이 아들들의 영혼을 구원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데 종교가 없는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그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전국의 각 소년원에서 문제아로 찍힌 원생들을 보내는 특별한 곳인 충주 소년원에서 모든 원생들이 예배에 참여하게 되는 기적을 만든다. 용현이라는 아이의 중병을 중보기도로 고치는 기적 같은 이야기도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예배가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춘천소년원에서 선교하게 된다. 그때 연대 의대 수련의였던 박진수 형제가 소년원생 집회를 돕기 위해 휴가를 냈다.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을 본 소년원생들은 키득거리며 장난치고 비웃었다. 그러다가 서너 명이 그 형제 옆에 무릎을 꿇더니 거의 모든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찬양을 드리는 부흥이 일어났다.

그 후 청주소년원 소망교회 사역을 하게 되었다. 골수염이 낫고 원생들의 식중독도 기도로 다 나아버린다.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서울 불광동에서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서울소년원에서 사역하게 된다. 화재경보기가 울릴 정도로 뜨겁게 기도하는 경험까지 했다고 한다. 여기에 세운 교회가 어느덧 46년이 된 고봉소망교회다.

간절한 기도만으로 병이 낫는다?

금식 기도로 암이 낫는 등 신비한 체험을 통해 불치병이 나았다는 말은 나도 많이 들어봤다. 원인 모를 북통에서 해방되는 목사님의 이야기 역시 그중 하나. 복통 때문에 계단을 오를 때는 두 번씩이나 쉬며 올라가야 했는데 기도를 마치니 다 나아서 계단을 뛰어서 내려왔다. 주님께서 원인 모를 병을 치료해 주신 것을 깨달았고 그 병은 한 번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증(干證)이란 자신의 초자연적인 경험을 들려주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것이다. 목사님은 물론 소년들의 간증도, 죽기 전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 소년원 신앙수련회 선교사로 일했던 이영자 권사님의 간증도 신기했다. 인후암으로 희망이 없었던 권사님을 위해 함께했던 모든 선교사가 마음을 모아 중보기도를 했다.

중보기도(仲保祈禱)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인데,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 한 결과 권사님이 새벽에 입과 코가 갑갑해 잠에서 깼는데, 입안과 콧속에 이물질이 가득했다고 한다. 화장실에 가서 뱉어 보니 핏덩어리였고,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의사가 암세포가 떨어져 나갔다고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예배에 참여하는 소년들은 바뀐다.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면서 재범하지 않고 인생이 바뀐 소년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겨자씨마을

1988년에 설립된 신앙공동체 생활관의 이름이다. 의지할 곳이 없는 무의탁 퇴원생들이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다. 교육을 받으면 잘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인데, 그들에겐 작은 환경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의왕시 학의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1년에 문을 닫았다. 국가에서 쉼터를 만들고 아이들이 공부하고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신학대학이 생긴 이래 최고의 점수를 받은 광호, 19세인데도 한글을 몰랐던 경완이, 골방에 감금되어 살았던 성훈이 구출 이야기, 친구를 구하고 익사한 해성이 이야기, 지금도 거제에서 소식을 전하는 형오 이야기, 술 담배를 기도로 끊은 이야기, 김원균 목사님의 뇌출혈 완치 이야기 등 사모님은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그리고 치과 기공소 때문에 빚더미에 앉게 되었던 이야기는 어리숙한 내 생각이 나서 너무 가슴 아팠다. 씨앗을 뿌리고 싹이 트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듯, 흔들리는 인생을 바로 세우는 데도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말에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였던 겨자씨 마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어주는 마음이 아닐까?

이 아이들은 목적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조차도 없이 사회에 방치되어 왔다. 하지만 스스로 삶의 목적을 찾고,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하고싶은 일도 생기고 변화되어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사회는 갈수록 각박해져 간다지만 이런 분들이 계셔서 이 사회가 점점 더 따듯하고 아름다워져 가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은 사모님의 말씀으로 대신한다.

자아를 찾고 싶은 소년에게 멘토가 되어 주는 사람, 지속적인 지지와 돌봄으로 울타리가 되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사회적 부모 역할을 감당하는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 한 아이의 결핍을 채워 주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어른들이 이 사회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가난한 자와 옥에 갇힌 자를 돌봐 주는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두드려 주시기를.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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