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가는 여정
정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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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과감성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친구 경이는 21살 꽃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경이를 죽인 건 정부 당국이었다. 국민이 어떻게 살든 자기 살 궁리만 하는 관료들이었다.

나의 북한에 대한 지식은, 현빈과 유해진이 나온 <공조> 2편과,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와, 이제훈의 <탈주>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전부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에서 온 작가님의 <한국으로 가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우리 엄마 고향은 황해도 황주다. 그래서 옛날에 엄마가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 신청을 했는데 결국 가족들은 찾지 못했다. 저자의 아버지 고향도 황해도라고 해서 더 친근감이 들었다. 황해 남도 은율군이라고 한다. 나는 황해도만 들었는데 황해도가 황해 남도, 황해 북도로 되어 있나 보다.

고등중학교 학급 담임인 김만남 선생님 집은 학교 안에 있는 사택이었다는 말도 신기했다. 학교 안에 사택이 있다니. 담임은 물리(전기) 과목을 가르쳤는데 전기 기술도 있어 수업 내용이 꽤 설득력이 있고 재밌었다고 한다. 어떤 것을 배웠는지 전기 기술은 뭔지 궁금했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잘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학급 벽보주필이 되었다. 벽보주필은 대부분 사상부위원장이 맡는다. <당을 따라 천만리>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쓰고, <종달새>를 국어 시간에 읽던 생각이 난다면서 그때는 국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혁명역사 시간이 가장 중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세뇌 교육인가 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 혁명역사에 낙제를 맞으면 대학은 고사하고 상급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한다. 성취도도 수학과 국어보다 가장 높아야 한다. 북한은 시험이 대부분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으로 "~에 대하여 쓰세요."라고 나오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항일 투쟁 날짜와 회의 장소와 연도별 날자들을 내용과 함께 달달 암기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애국가와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난다. 내 동생은 박정희 대통령 암살 소식에 엉엉 울었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 사진과 태극기가 교실 칠판 위에 없는 것이 너무 이상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큰 언니는 '이부자리 보고 발을 펴라'는 속담이 있듯 자신의 가정 상황은 보지 않고 높은 곳만 올려다보면서 남이 하는 대로 뭐든지 따라 하며 공허한 삶만 추구했다. 저자는 그런 맏언니가 얄미웠다. 잘난 체하고 집 걱정은 꼬물만치도 하지 않고 부모님들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는데, 나는 거꾸로 부모를 위해서 자식들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시아버지가 지금도 싫다.

우리는 '누울 자리 보고 발을 펴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이부자리 보고 발을 펴라'고 하나보다. 저자가 어린 시절 들었던 <천 송인가 만 송인가>라는 노래를 유튜브에 검색해 보니 조선 가요라고 검색도 된다. 이런 북한 가요가 검색되는 것도 신기했다. 내친김에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생소했던 표현들을 한 번 정리해 보았다.

맛의 미를 돋우어 주는 역할을 했던 사과 모양 양념통에 대한 추억 이야기에서는 풍미를 맛의 미라고 한다. 우리나라 수능은 대학예비시험이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고 하는데, 은주가 워낙 태권도를 잘해서 맞서기 힘들어하던 애들은 쏘는 이를 뽑은 듯한 기분이 들었을 거라고 한다. 또 우리는 1kg이라고 쓰는데 쌀 한 킬로그램을 사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은 화는 쌍으로 온다. 고군분투(孤軍奮鬪)의 북한식 표현인 간고분투(艱苦奮鬪)는 국어사전에도 있는 말이다.

저자는 고등중학교를 나오고 건설건재전문학교 건축공학과를 나왔다. 그리고 친구 엄마의 소개로 건설총국 산하 기업인 수출가공 사업소에 다니게 된다. 여성이 3명이고 남자 지배인과 비서까지 5명인 엄청 작은 수출가공사업소였다. 업무는 공예반과 수예반에서 만들어 내는 상품으로 중국과 무역을 해서 건설총국 산하에 식량 조달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1년 이상 다니다가 어린이 식료품 회사에 입사한다. 새벽부터 교대제로 일하는데 하루 두 끼는 무료로 회사에서 먹을 수 있어 모두 들어가고 싶어 하는 회사였다. 거기서 탈북을 할 때까지 열심히 일했다. 저자의 북한 생활은 여기서 26살에 막을 내린다.

북한 여성들은 굶주림 때문에 인신매매로 중국에 팔려가거나, 중국 남성들에게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저자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장백현과 마주하고 있는 곳에서 살았다. 압록강은 영어로 Yalu(鴨綠) River다. 중국어 발음(鸭绿江; Yālùjiāng)에서 압록을 영어로 표기한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큰언니가 함께 중국 가서 돈을 벌어 오자고 했다. 돈을 벌어 오면 우리 집 상황도 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에 흔쾌히 따라나섰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둘 다 돈에 팔린 것. 그래도, 북송이라는 위험 때문에 중국 허난성의 이름 모를 한 농촌에서 시집 생활이 시작된다.

아들이 태어나자 시부모님께 맡기고 중국 광저우 편직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다시 시골로 돌아와 살다가 남편과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닝보에서 일한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을 도둑맞고, 교통사고로 후각이 손상되어 중국에서 가장 낮은 장애인 등급인 10급을 받게 된다. 결국 회사에서 일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시집은 쥐벼룩이 너무 많아서 시내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동안 저축해 놨던 돈과 시집에서 보탠 돈과 친척들에게 꾼 돈으로 시내에 새로 지은 아파트 2층을 샀다. 그리고 아들을 시내로 데려와 시내 학교에 전학시키고 점차 저자는 안정감을 찾는다.

그러다 아빠가 중국으로 오면서 통일부에 편지를 썼고 큰아버지가 한국에 살아 있다는 통보를 받은 뒤 제일 먼저 한국으로 가게 된다. 저자는 가장 나중에 둘째 아들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우연히 EBS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탈북 그 후>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게 되면서 그 당시 만 11세였던 큰아들도 중국에서 데려온다.

큰 아들은 성당에 다니는 분들과 수녀님의 도움으로 강원대학교 국제어학원에 다니며 한국어를 배웠다. 나는 이 이야기에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부모보다 더 따뜻한 수녀님과 선생님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큰아들의 글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어린이집 원장의 차별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되는데, 나도 은근히 선생님들 월급을 착취하는 원장에게 당한 적이 있어서 너무 이해가 갔다. 한국인도 차별하는데 탈북민을 채용하면 고용지원금까지 받으니 그 원장에게 탈북민은 봉이었을 것이다. 탈북민 정착금을 사기 치는 분들도 있다더니... 그래도 굶겨 죽이는 나라나 전쟁으로 죽이는 나라보다 사기 쳐서 죽이는 게 나은 나라일 것이다. 사기는 내 선택으로 안 당할 수 있으니까.

나도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서 보이스 피싱 이야기에는 너무너무 공감이 되었다. 나는 사기 피해로 지금까지 신용불량자로 산다. 경찰에 신고도 하고 은행에도 모든 서류를 넣었지만 결국 사기당한 돈은 못찾았다. 지금까지 매일매일 대부 업체에서 전화가 온다. 내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도 저자처럼 왜 나를 선택했냐고 울부짖고 싶다. 저자는 상담 공부로, 나는 서평단을 하며 사기꾼에게 당한 피해를 이겨내고 있다. <가석방 심사관 이한신>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사기당한 돈을 되돌려주는데 나에게 그런 행운은 없었다.

사기당한 것이 탈북민이라서 그렇다는 댓글에 섭섭했다는 저자님. 그럼 남한인(?)인 나는 뭔가? 나도 사이버 경찰청에서 범인을 잡았다기에 행여나 돈을 받을 수 있을까 했지만 이미 다 빼돌려 찾을 수 없었다. 저자는 보험회사와의 2년간의 재판까지 했으니 나보다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정말 사기 안 당해 본 사람은 그 온몸이 덜덜 떨리던 순간을 그 지긋지긋한 고소와 피폐되는 정신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공부는 맞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절박하면 누구나 입문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님. 입문하게 된다는 표현이 낯설었지만 기쁨이 담긴 말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저자는 결국 대학원생이 된다. 대학원에서 인문 치료 공부를 하며 원장님도 용서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도왔을 때 뿌듯함을 느끼고 탈북민 여성들을 돕는 것에 대해 소명감을 가진다.

이런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도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6년 만인 2023년 2월,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님께 박수를 보낸다.

인문학 자조 모임을 통해 저자는 피해의식을 갖고 살던 것이 첨차 없어졌다. 다름을 인정하니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예전에는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했는데 지금은 타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게도 됐다. 현재 저자는 학교통일교육 전문강사로 전국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통일 교육을 하고 있다.

율동 체조, 인민반장, 당비서, 지구사령부, 안전원(경찰), 상점(마트)이라는 말이 신기했다. 엄마가 두부를 하고 난 콩비지를 가져다가 옥수숫가루에 섞어서 꼬장떡을 해 주셨다는데 꼬장떡도 뭔지? 콩나물 김치라는 것도 먹어보고 싶었다.

북한 이야기를 할 때는 똑같은 한국어인데 뭔가 독특하면서도 살짝 다른 느낌이 들어서 정말 재밌게 읽었다. 뒷부분에서는 자연스러운 한국어라서 교육과 독서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까지 받은 작가님의 앞날에 이제부터는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빈다.

학위를 받는 날 부모님과 지인들이 축하해 주러 와 주었다. 주석단(강단, 연단, 단상)에서 대학교 총장이 주는 학위증을 수여받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고 뿌듯한지 알게 된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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