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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다시 찾아옵니다 - 괴테 수채화 시집 ㅣ 수채화 시집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한스-위르겐 가우데크 엮음, 장혜경 옮김 / 모스그린 / 2025년 1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렇게 계속 꽃을 피운답니다.
이 책은 차례가 없다. 자연도 순서나 차례가 없듯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펼치는 곳마다 자연이 담겨있다. 이 책의 원래 독일어 제목은 Es dringen Blüten aus jedem Zweig다. 모든 가지에서 꽃이 솟아난다, 가지마다 꽃이 피어난다는 뜻이라고 한다. Gemini가 알려줬다.
꽃은 자꾸만 가지를 뻗고 그렇게 계속 꽃을 피우는 것. 이런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봄날 풍경이 우리 인생인 것 같다. 우리는 지구라는 나무에 잠시 피다 지는 꽃에 불과하지만 나무는 계속 꽃을 피운다. 여름의 무더위와 가을의 쓸쓸함과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지나 또다시 봄이 오면 꽃을 피운다.
어쩌면 모든 계절은 봄이 오면 꽃을 피우니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계절이 다시 찾아온다는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닐까. 모든 계절이 가진 생명력 때문에. 꽃이 져도 아름다운 건 다음 계절에 피어날 꽃으로 이어지는 영원을 잉태한 때문일지도. 🌸
<계절은 다시 찾아옵니다>는 글과 수채화가 어우러져 자연의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나는 아름다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그림에서 생동감은 느낄 수 있었다. 하물며 바다만 보이는 풍경에서도 내가 여기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괴테의 시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그림도 어떻게 감상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마치 고전을 대하는 자세처럼 내가 아는 만큼만 이해하고 내 느낌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13페이지에 있는 파란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옆에는 <3월>이라는 시가 실려있는데 "눈이 내렸습니다"로 시작한다. 정말 눈이 내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내린 눈이 가지에 앉았다가 바람에 날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커다란 파란 나무는 마치 온몸으로 내 안에 있는 푸른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나는 파란 바다를 참 좋아한다. 이 그림에서도 파란 바다가 보인다. 그런데 파란 나무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눈에 덮인 나뭇가지도 아니고 보통 브라운 계통의 색으로 나무와 나뭇가지를 표현하는데, 이 책 표지에 있는 작품도 그렇고 73페이지와 75페이지의 작품 모두 파란색으로 나무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25 페이지에는 파란 잠자리도 있다. 잠자리가 파란색은 아닌데... 얼굴도 몸통도 날개도 다리까지 온통 파랗다. 괴테는 말한다. 가만히 잠자리를 살피니 구슬프게 짙은 파랑이라고. 괴테는 파란색을 보면서 슬프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기쁨을 낱낱이 해부하는 자, 그대도 그러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슬프고 우울한 것을 영어로 green이 아니고 blue라고 하는 듯. 기쁨을 해부하면 슬픔이 되고 슬픔을 해부하면 다시 기쁨이 되고 그래서 자연도 삶도 영원히 계속 되나보다.
자연의 모든 색은 내 마음을 반영하는 것 같다. 내가 기쁘게 파란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는 기뻐서 춤을 추는 것 같고, 슬픈 마음으로 파란 바다를 바라보면 파란 바닷물이 온통 내 눈물인 것 같으니 말이다.
파란색은 차가운 느낌이다. 나무도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새파랗게 떨고 있다고 말하는 것일런지. 파란색을 떠올리니 차가운 냉대, 아픔, 시련, 시리다, 음지, 파랗게 멍들다, 칼바람, 살을 에는 추위... 이런 단어들이 생각났다. 파란색은 왠지 쓸쓸하다.
눈물도 색깔이 있다면 파란색일 것 같다. 하얀 것 투명한 것을 하얀 종이로 옮길 때는 이상하게 파란색을 쓰는 것 같다. 눈물과 땀은 투명한데 💧파란색으로 표현한다. ☁️ 🌧 ⛅️ 🌫 구름은 회색이나 검은색 또는 테두리를 두른 흰색으로 나타내는데 투명한 빗물은 늘 파란색이다. ☃️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파란색이다.
파란 하늘, 파란 구름, 파란 꿈, 파란 불, 파란 눈동자 등을 생각하면 긍정적이고, 희망차고,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 파란색은 어쩐지 슬프고 고된 느낌이 앞서는 것 같다.
괴테가 1787년에 그린 수채화 <폭풍우 치는 바다>를 가장 좋아한다는 한스-위르겐은 강렬한 프러시안블루의 붓 터치로 묘사된 드넓은 바다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자신의 시심을 그림에 담으려고 괴테의 자연 시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파란색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강렬한 생명력을 가진 색깔이 아닐까?
명심이라는 시가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좋았다. 오른쪽에 있는 그림은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가만히 있어도 되는지, 바쁜 것이 나은지, 흔들리는 바위라도 의지해야 하는지 망설이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작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한 가지가 모두에게 맞지 않으니 나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을 명심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림에서 여러 사람들을 어둡게 표현하니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고 행복한 것을 찾으라고 말하는 듯했다.
'들장미', '하나의 발견', '비유'와 같은 괴테의 대표적인 시와 함께 다른 독특한 시들도 수채화 그림과 어우러지니 아름다운 삶을 노래하는 것 같아 또 다른 시집의 아름다움을 느껴 본 시간이었다.
나 그대들에게 말하는 건가요? 사랑하는 나무여. 내 심장에서 나오듯 자라 허공으로 뻗어가세요. 그대들의 뿌리에 나 온갖 기쁨과 아픔을 파묻었으니. 그늘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으세요. 매일매일 새로운 기쁨을 맺어주세요. (p.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