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이카시대
스토리공장 지음 / 펜타클 / 2024년 11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실용성에 감성 한 스푼을 더하다. 2000년대 초, 도로 위의 국민차 아반떼 차주들은 모두 과거의 추억과 멋을 가슴속에 품고 다닌다.
차와 함께 살아왔던 아름답고 가슴 아픈 추억들...<마이카 시대>에는 인생의 동반자 마이카에 대한 열네 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에는 인생을 함께해 온 마이카 그림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면 마치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처럼 나처럼 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마이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 덕분에 차 이름을 검색해 보며 어떤 차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이라 사람 칠까 봐 겁이 나서 마이카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고 급 면허를 딴 남편이 처음 장만한 엘란트라는 생각난다. 자주색이었고, 가벼운 접촉사고가 한 번 있었고, 베이비시트에 아들이 있었던 행복한 장면이다.
이 책에는 우리처럼 신혼을 엘란트라로 시작한 상준의 이야기가 나온다. 엘란트라 이후 카니발을 샀다고 한다. 명예퇴직을 한 상준의 시바스리갈 음주 운전 무용담에 너무 웃었다. 음주 단속에 걸렸는데 경찰들이 하도 다들 안 마셨다고 하니까 주량을 솔직히 말했다고 벌금 없이 집까지 고이 모셔다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자동차 키만 있고 자동차가 사라진 것이다. 알고 보니 다른 곳에 주차해 놓았던 것. 아무리 만취 상태였어도 어떻게 남의 집 대문 앞에 주차를 한 것인지? 지금도 나는 이해를 못 하고 있다. 버스 기사가 운전하면서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단다. 지금은 음주 운전은 생각도 못 하지만 옛날에는 차가 많이 없어서 관대했던 것 같다.
아내의 마티즈 초보 운전 이야기에는 그 옛날 김 여사가 등장한다. 김 여사는 운전이 서툴러서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하는 여사님이시다. 아줌마들이 하도 차 끌고 나와 길을 막히게 하니까 욕을 먹는다고, 집에 가서 밥이나 하지 왜 쓸데없이 차를 끌고 나오냐는 말을 나도 들어봤다. 얼마나 말들이 많았으면 실제로 '지금 밥하러 가는 중'이라는 문구를 자동차 뒷유리에 붙여놓았을까?
록스타는 자동차 이름이다. ROCSTA라고 전라도 광주의 아시아 자동차에서 생산한 차라고 한다. 나도 사람이 운전대를 잡으면 돌변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운전이 미숙한 점잖고 온순한 아버지의 욕하는 모습이 너무 재밌었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이 묘사된 부분에서는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떠오르면서 마음이 아팠다. 록스타와 함께 그때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셨기를...
불과 백여 미터 앞에서 벌어진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목격한 포텐샤 차주 명우 이야기로 옛날 가슴 아픈 뉴스들이 생각났다. 아시아나 비행기 추락,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2014년 세월호사건까지 겹쳐진다.명우는 폐암으로 갑자기 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잠시 갓길에 주차하고 쉬었는데 그 짧은 시간이 목숨을 구한 것이다.
영업을 하려면 비싼 차를 몰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없어 보이면 신뢰하지 않는다고. 그랜저 이야기를 읽으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업의 세계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청년기를 보낸 정사장은 각 그랜저를 몰고 다닐 때마다 거래처 사람들에게 나는 돈 많은 사장이니 믿고 거래해도 된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돈을 좀 벌게 된 정사장은 개성공단에 남의 돈까지 빌려서 투자했다. 정치가 사람을 죽이더라고. 남북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고 정사장은 쫄딱 망했다. 그리고 노인 일자리 수당이 입금되는 날이면 편의점에서 막걸리 두 통에 새우깡 한 봉을 놓고 각그랜저 전성기를 곱씹는다.
아반떼에 얽힌 이야기가 나는 제일 기억에 남았다. 딸과 아내를 호강시켜 주려고 열심히 돈벌기에 바빴던 남편은 아빠 없이 자랐다는 딸의 이야기에 뒤늦은 후회를 한다. 박노해의 <이불을 꿰매면서>라는 시를 찾아 읽어보면서 이분들의 이야기에 괜히 마음이 아려왔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 청소에 고추장 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 달라 물 달라 시켰었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 홑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박노해
새로 배운 단어 2개. 잘코사니. 감탄사인데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소리다. 고소하다, 쌤통이다는 뜻. 스쿠프가 한국 최초의 쿠페라고 한다. 쿠페(Coupé)란 프랑스어로 '자르다'는 뜻인데 세단의 뒷부분을 잘라낸 듯 날렵한 디자인의 자동차를 말한다. 나는 그냥 스포츠카라고만 알았는데 앞으로 쿠페라고 잘난 척을 해야겠다.
중2 병보다 훨씬 쎈 게 갱년기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 정도로 심각한가보다. 남자도 갱년기가 있다고 한다. 갱년기가 70에 오는 사람도 있단다. 갱년기 엄마 아빠는 마이카만 애지중지하지 말고 서로서로 아껴주자. 아들이 대학 대신 영농조합을 만들어서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하자 결국 아들을 응원해 주는 아빠가 생각난다. 마이카와 함께한 소중한 인생 이야기들은 그 나름의 색깔로 내 기억을 아름답게 물들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