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살아 볼게 -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
이만수.감명진 지음 / 고유명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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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산다는 건 어쩌면 잘 알아듣기 어려운 낯선 타지(他地)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 겨울 눈이 나풀나풀 내리는 날 커피 한 잔과 딱 어울리는 책이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인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고 힐링이 된다.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 꼭 장소가 아니라 글과 그림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언어로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생각을 활짝 펼쳐 놓는다. 그림도 너무 예쁘고 수필인 듯 시인 듯 글도 참 예쁘다. 일례로 나 같으면 '나는 매일 함께 산책한다'라고 쓸 텐데 '하루 한 번 우리는 서로를 산책시켜 준다'고 하거나 산책을 '햇볕 따라가기'라고 표현한다. 똑같은 한국어 표현인데 참 아름답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오빠와 진이. 선글라스를 끼고 멋쩍어하는 오빠에게 진이는 타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남들은 다 순간의 관객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은근히 대인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내가 혹시 상처 준 것은 아닐까? 나 때문에 마음 다쳤을까 봐 혼자서 끙끙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생각보다 남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 남들 비위가 아니라 내 비위를 맞춰주며 사는 게 최고다.

장 볼 때마다 물건을 싸온 비닐을 한 번 쓰고 버리기 아까워 모으다 보니 많아졌다는 말에 나도 격하게 공감했다. 쓰는 속도보다 모으는 속도가 빨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많이 쌓이지 않게 재활용품을 담아서 버린다. 쿠팡 비닐은 쓰레기통에 씌워서 쓰고 버린다. 진이처럼 나도 테이크 아웃 컵들이 아까워서 다 모았었는데 요즘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개인 텀블러를 써서 일회용기는 우리 집에서 사라졌다.

연애 초기에는 맞장구를 치다가 같이 산 지 8년 차인 지금은 상대방의 말을 끊고 아니야,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란 오빠에게 난 참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억지로 맞춰주면 꼭 억울함이 쌓인다. 다만 말을 끊는 건 실례라고 하니 일단 진이의 의견을 끝까지 듣고 그다음에 오빠의 생각을 얘기해 주면 더 좋을 듯? 나도 최근에서야 나는 이것을 하고 싶은데 맞춰줄 수 없다면 내가 이해를 할 수 있게 설명을 해달라고 남편에게 요구한다. 사랑은 서로 맞추어 가며 함께 둥글둥글 해져 가는 건가 보다.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것보다 상대방이 먹고 싶은 걸 헤아려 보는 것. 나도 이렇게 배려를 하다가 망한 적이 많아서 이제는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따로 시킨다. 오빠를 생각해서 내키지 않는 치킨을 먹고 체해서 오빠에게 설교를 듣는 장면이 너무 귀여웠다. 진이님껜 죄송. 진정한 배려란 내가 먹고 싶은 걸 솔직하게 말하는 것. 나는 치킨이 먹고 싶으면 시켜서 나 혼자 다 먹고 남편에게는 김치찌개를 해 준다.

오빠는 치킨을 좋아해서 반려묘 이름도 '통닭'이다. 진이는 어릴 때 할머니가 직접 닭을 잡아 삼계탕을 끓여 주시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닭을 잘 못 먹게 되었다. 오빠는 '통닭"이 고양이 집사, 진이는 방토 집사. 진이는 매일 아침 방토에게 물을 주며 조금만 소홀해도 시들시들해지는 모습에 식물이 참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창가의 방토와 매일 아침을 여는 행복한 모습이 보인다.

대봉감과 단감이 틀리다는 것을 나도 경험해 봤다. 지인이 잘 익혀서 먹으라며 키세스 초콜릿처럼 생긴 감을 줬다. 모양이 좀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깎아 먹었다 떫어서 기절초풍을 했다. 그래서 잘 익혀 먹으라고 했구나... 뒤늦게 깨달았던. 익혀서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나도 익히기 귀찮아서 대봉감은 안 사지만 누가 부쳐주면 공들여 익혀서 맛있게 먹을 각오는 되어있다.

진이는 어릴 때 처음 곰탕이라는 말을 읽고 곰을 고아 만든 탕인 줄 알았다고 한다. 나는 곰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푹 곤 국이라고만 생각했지 한 번도 곰을 끓였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다. 달걀에 달 없고, 소떡에 소 없고, 유모차에 유모 안 탄다더니, 순수한 곰탕 이야기에 빙그레 웃게 된다.

나는 오빠와 진이의 일상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오빠가 요리를 좋아해서, 사 먹는 것보다 해 먹는 걸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 요리를 아주 싫어한다. 마트나 시장은 나는 좋은데 남편은 싫어해서 그냥 나도 안 가고 인터넷으로 쇼핑한다. 난 오늘 뭐 해 먹을지가 스트레스인데, 진이는 늘 먹을 궁리를 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진이처럼 이 고민의 시간을 행복이라고 애써 느껴보겠다.

진이는 등산이 일부러 시간 내서하는 고된 일일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등산이나 마라톤은 힘들게 왜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그동안 묵혀 둔 등산화를 신고 오빠와 함께 정상에 오르니 뿌듯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나도 진이처럼 딱 한 번 신은 등산화가 있다. 남편과 함께 다시 한번 자연을 느끼며 등산을 해볼까?

결혼=결혼식이 아니다. 나도 대찬성! 결혼식 비용으로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결혼식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부조금 본전 뽑기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를 얼마나 잘 설득시키냐의 게임 같다.

난 웨딩드레스 입고 행복하기보다는 엄청 불편했던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드레스 한 번 입어보는 것이 꿈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 그분의 결혼식을 응원한다. 왜냐하면 내가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을 꼭 한번 타보고 싶은 것과 비슷한 마음일 테니 말이다. 각자 솔직히 마음을 터놓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때 행복한 것 같다.

진이의 그림 중에 두 팔 벌려 오빠가 들어오는 것을 환영해 주는 그림을 보고 나는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이에게도 유치원 때까지만 이렇게 두 팔 벌려 환영해 줬던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어제, 늘 어서와요로 맞이하던 나는, 남편이 들어올 때 진이처럼 만세 오버액션을 하며 반겨주었더니 은근히 너무 좋아한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매일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안아줘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 두 사람이 샘나서 모두들 두 사람처럼 알콩 달콤 사랑을 키우고 싶어질 것이다. 나라고 알콩달콩 못할까~💘 추운 겨울이 오기 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렇게 따뜻한 것임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 고유명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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