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청소년판)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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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어떤 서평에서 이 책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는 후기를 읽었다. 추미스도 아닌 청소년 소설인데 설마 그럴 리가? 했는데, 정말 밥 먹는 것도 미루고 세 번째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서야 멈췄다. 아직도 왜 멈출 수 없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하면 큰일 난다. 다음날 출근하거나 학교를 가야 하는 분들은 꼭 휴일을 이용하자.

왜 이 책이 100만 부 이상이 팔렸는지 읽어 보면 이해가 간다더니, 읽어보니까 진짜로 이해가 간다. 책 읽기 싫어하는 학생들도 이 책은 읽기 시작하면 못 놓을 것 같다. 어른이 읽어도 재밌고 학생들이 읽어도 재밌다는 남들 말이 어쩜 이렇게 다 맞는지. 내 독서 인생 1년여 만에 이렇게 내 의견과 남들 의견이 일치한 책은 처음이다. 내게 흐른 시간은 잠깐이었는데 한 아이의 엄청난 삶이 지나갔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선윤재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엄마와 할머니를 잃었다. 주인공은 웃지 않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다. 윤재는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 즉 감정 표현 불능증이다. 표현 불능이라고 해서 표현을 못 하는 건 아니고 잘 느끼질 못한다. 사람의 뇌에 있는 편도체의 모양이 아몬드를 닮았다고 해서 편도체를 아몬드라고도 부른다. 이 편도체의 크기가 작고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했다.

<아몬드>는 이 감정 표현 불능증인 윤재가 우여곡절 끝에 회복되어 가는 여정을 그린 감동 소설이다. 아몬드는 제 기능을 못하는 윤재의 편도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엄마가 사다 준 모든 종류의 먹는 아몬드도 아몬드다. 아몬드를 먹으면 이 병이 좀 나을까 하는 엄마의 마음, 내 자식에게 좋은 것은 다 주고 싶은 마음, 이 아몬드는 곧 사랑이다.

책 속에서 윤재가 말한다. '내가 먼저 뭔가를 원한다거나, 하고 싶다거나, 어떤 것을 좋다고 표현하는 일들이 힘들다. 내가 전혀 먹고 싶지 않은 초코파이를 보며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 나도 달라며 미소 짓는 것, 약속을 어겼을 때 왜 그랬냐고 따져 묻는 것,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 이런 평범한 것들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좋아하는 것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고, 화내는 일도 없고, 웃는 일도 없다. 두려움이나 공포심마저도 없다. 윤재 엄마는 이런 사실들을 남들에게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상처를 준다고 알려줬다. 나는 솔직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상대에 맞게 적당히 조금만 솔직해야 하는 것이다. 나도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 판단하기 어려운데 윤재에게는 얼마나 어려웠을까?

엄마의 이름은 지은이다. 할머니가 부를 때마다 멋들어진 글자를 지어내라고 붙여준 이름이다. 자식 공부 시키려고 평생 떡을 팔아 왔는데 자기 공부는 못하고 헌책 장사를 한다며 할머니는 투덜댔다. 이런 투덜댐과 엄마의 잔소리가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나도 엄마 생각이 나 가슴이 먹먹했다. 자식이 아무리 못나도 부모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날 웃었다는 죄로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고 할머니는 돌아가신다. 그런데 윤재는 슬픔을 느낄 수가 없다. 내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충격 때문에 제정신으로 살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윤재의 반에 윤이수라는 학생이 전학 왔다. 살인 빼곤 다 해봤을 거라는 학생이다. 윤이수는 어릴 때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희망원이라는 시설에 있을 때 스스로 곤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너무 어릴 때 미아가 되어서 자기의 진짜 이름을 모르니까. 곤이 엄마도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병을 얻어 죽고. 다 커서 만난 교수 아버지와는 사이가 안 좋다.

곤이가 윤재를 폭행한 사실로 정학을 먹고 진짜 아빠 윤 교수는 어렵게 찾은 아들을 두 번이나 때리고 후회한다. 내가 바라던 모습의 아들이 아니어서 열받아서 때린 것이 아닌가 싶다. 윤재는 속상하다고 그렇게 찾던 아들을 때리고 후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숫제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아버지의 고백을 듣는다. 나도 나 때문에 속 썩었을 부모님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어떤 시인이 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맞은 사람은 쉽게 잊겠지만 때리는 부모는 평생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곤이가 돈을 훔친 범인으로 몰렸을 때 윤재가 무조건 친구를 믿어주었다면 곤이는 아빠와 조금씩 잘 적응을 해 갔을지도 모른다. 윤재는 너무 솔직하게 자기도 남들과 똑같이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족이든 친구든 무조건 내가 아는 사람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편을 무조건 먼저 들어줘서 그 사람이 적어도 이 세상에 한 명은 내 편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다음,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란다. 윤제는 이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곤이 편을 들어주지 못한 것 같다.

윤재 할머니가 사랑 애(愛) 자를 쓰면서 정의한 사랑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은 예쁨의 발견이라고 하셨다. 애(愛)의 윗부분을 쓴 할머니는 그다음에 있는 우리 가족을 나타내는 점이 세 개 박힌 愛를 완성시켰다던 윤제의 말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예쁨을 찾아내려 애쓰라는 말이 아닐까. 아무리 미운 사람도 억지로 막 찾다 보면 이쁜 구석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만나는 모든 사람의 예쁨을 발견하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윤재가 타고난 장애에도 불구하고 우정과 사랑을 찾았던 진심 어린 마음은 병의 회복은 물론 엄마뿐 아니라 많은 친구들까지 선물해 준다. 세상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해서 더 아름다운 것 같다.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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