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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밍크이불
김철수 지음 / 좋은땅 / 2024년 4월
평점 :
어머니는 공군 군목으로 백령도에 들어가던 해에 북쪽이라 춥겠다며 밍크 이불을 사 오셨다. 밍크 이불은 결혼 후에는 교회의 수도 계량기를 덮어 줌으로써, 겨울에도 동파 사고 한 번 없이 물 공급을 하는 온돌 역할을 했다. 밍크 이불은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이불이다.
저마다 부모님을 생각나게 하는 물건이나 음악, 장소 등이 있을 것이다. 물건인 경우는 남들에게는 쓸모없어 보일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삶의 기록이 된다. 저자에게는 어머니가 사 주신 밍크 이불이 그것이었다.
나는 밍크코트는 아는데 밍크로 이불도 만들었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밍크코트 같은 느낌의 이불이었다. 그냥 털 느낌이 나는 따뜻한 이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왜 부모님을 회상하면서 책 제목을 <어머니의 밍크 이불>로 했을까? 부모님의 사랑, 헌신, 힘겨웠던 삶 같은 단어들보다 훨씬 더 따듯함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 책 제목이 '부모님의 사랑'이나 '부모님의 농촌 60년 인생' 이었다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이 책에서 나는 2가지가 참 새로웠다.
첫째는, 책 속에 부모님을 모시는 것도 의미 있단 것이다. 나는 만나본 적 없는 작가님의 부모님을 책 속에서 만난다. 작가님과 함께한 추억 여행은 마치 내가 그 시간들을 지나온 것처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9남매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아들 하나 키우기도 힘들었던 나는 작가님의 부모님께, 그리고 우리 엄마에게도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다고 전하고 싶다.
둘째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9형제가 아이들 데리고 1년에 2번 기일 때마다 함께 모이는 풍경이 참 보기 좋았다. 나도 가족끼리 1년에 한 번이라도 만나서 여행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엄마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엄마를 추억하는데 가족끼리 함께 모이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우리에게 평안을 선물해 준다. 선풍기가 없던 시대도 있었다. 부채만으로 여름을 어떻게 지냈을까? 형제들끼리 서로 부채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정겹다. 지금은 에어컨이 있는 편리한 세상을 사는데, 왜 우리의 마음은 불편해졌을까?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지혜는 뭘까?
유년의 모든 사물에는 각각의 이야기와 추억이 숨어있다. (p.157)
하물며 평범한 설탕에도 있었다. 60년 전에 설탕을 훔쳐 먹은 것을 이제야 고백한다는 저자. 엄마 몰래 훔쳐 먹는 맛이 꿀맛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10kg짜리 설탕이 있나 싶어 찾아보니 지금도 이렇게 대용량을 판다. 설탕을 그냥 퍼먹어도 맛있었다니...
수박 서리는 다들 알겠지만 감 서리란 것도 있다. 감 서리를 하다 걸렸는데 솔직하게 먹고 싶어서 땄다고 말했더니 용서해 주셨다고, 솔직함이 문제를 해결하고 용서를 받는 길이 되었다고 한다. 진실은 감나무 주인과 부모님을 웃게 하고, 하나님을 웃게 하고, 자신이 자유롭게 된다면서.
우물에서 빨래도 하고, 몸도 씻고, 닭 잡은 것도 씻고, 쌀도 씻었다. 고구마 줄기 벗기기는 나도 어릴 때 한 번 해 본 적이 있어서 금방 이해가 됐다. 펌프 물도 아니고 일일이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렸단다. 더운물도 당연히 아궁이에서 데워야 했고. 나는 갑자기 싱크대의 수도와 화장실이 너무나 감사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매일 막걸리를 드시며 술기운으로 5천 평 이상의 농사를 지으시고, 9명의 자녀를 기르고 대학에 보냈다. 그러던 분이 하나님을 믿고 막걸리에서 커피로 바뀌었다.
나는 벼가 자랄 때 잡초를 뽑아야 한다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 잡초 이름이 '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머리는 들어봤는데 물뱀은 금시 초문이다. 논에 뱀까지 있었다니. 허벅지까지 오는 긴 고무 부츠가 있으면 거머리나 물뱀에게 물릴까 봐 고민 안 해도 됐을 텐데...
멍석에 벼를 말리는 풍경도 소나기가 오면 다음날 다시 말려야 하는 수고로움에도 마음은 왜 편해지고 넉넉해지는지 모르겠다. 비닐이 나오자 멍석 대신 비닐 위에서 말리다가, 그 이후로는 방앗간에서 건조기에 말리게 되었다.
시골집 마당은 하늘을 보는 마당이다. 한여름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별을 헤는 일, 너무 낭만적이다. 식구가 많아서 칼국수와 수제비를 가마솥으로 끓인다. 온 식구가 매달려서 칼국수를 밀고 마당에서 칼국수를 먹는다. 게다가 개울에는 다슬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다슬기 칼국수도 해 먹는다. 함께 만들고 함께 먹으며 함께 살게 한 음식인 칼국수. 어머니가 주관하던 어머니의 음식.
저자는 어머니 덕분에 아침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고, 9년째 25층 아파트 계단을 하루에 4번씩 오르면서 건강관리를 하신다. 책을 읽으며 정신의 시원함을 느끼고, 은혜를 받으며 영혼의 시원함을 느끼며 산다. 국민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정치인이 많았으면 좋겠다며, 한 알의 알곡 같은 인생을 살다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으시다는 작가님은 말한다.
'이제 부모님은 책 속 활자 속에 영원히 살아 계시게 될 것이다.' (p.206)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504/pimg_791333153428257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