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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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융이 말했듯이, 악인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그 악인을 길들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설계할 때 항상 윤리를 염두에 두도록 노력해야 한다. 윤리를 염두에 두는 방법 중 하나는 과학사를 읽는 것이다. 윤리 위반에 관한 비행의 충격적인 결과를 실제로 느끼는 이야기의 힘은 강하다. (p.434)


좋은 인성이 없으면 과학은 미래가 없으며, 비윤리적인 과학자들은 나쁜 결과를 너무 자주 초래한다. 작은 비행도 다른 사람의 삶을 망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인성이야말로 과학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보장책이다. (p.437~438)


이 책에는 의학과 과학의 잔혹하고 비도덕적인 12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다. 과학사의 어두운 면까지 제대로 알아야 어떤 일을 시작할 때부터 윤리를 염두에 두고 부정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가 수월하다.


프롤로그에는 인간의 희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착에 사로잡혀 잔인한 실험을 한 클레오파트라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역사책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잔혹한 유산을 놓고 고민한다.  장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1장 : 해적질 - 윌리엄 댐피어William Dampier

댐피어는 영국의 해적이자 박물학자다. 그의 연구는 그 당시 거의 모든 과학 분야에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해적질을 하다 4년간 고립생활을 하던 선원을 구조해 영국으로 데려간 일이 있는데, 여기에 영감을 받아 대니얼 디포는 <로빈슨 크루소>를, 조너선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를 썼다. 찰스 다윈도 댐피어의 연구를 발판으로 삼았다. 댐피어의 연구는 획기적이었지만 경멸 받을 짓을 많이 했고, 노예제도와 식민주의의 길을 여는 데도 일조했다.

2장 : 노예무역 - 헨리 스미스먼Henry Smeathman

박물학자인 스미스먼은 서아프리카에서 흰개미집을 연구하고, 카리브해 불개미도 연구했다. 불개미 떼는 하룻밤 사이에 말과 소를 뼈만 남겨서 개미 폭풍이라고 한다. 스미스먼은 그의 연구에 원주민들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이 너무 잔인했다. 왕립학회 회원이 되는 꿈이 무산되자 지은 죄를 속죄 하려는 듯, 대중에게 개미 탐사 모험을 들려주며 노예 제도 철폐 운동에도 참여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흑인 자유를 위한 운동에 지지를 얻으려고 파리까지 가기도 했다. 

3장 : 시신 도굴 - 윌리엄 헤어William Hare 와 버크William Burke

연쇄 살인범 윌리엄 헤어와 버크는 시신을 팔기 위해 죽어가는 사람을 살해했다. 목뼈가 부러지지 않게 얼굴과 가슴을 눌러 질식사 시켰다. 존 헌터라는 해부학자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수천 마리나 해부했는데, 처형당한 시신이 턱없이 부족해서 시신 도굴꾼과 몰래 거래한다. 헌터와 헌터의 집을 모델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책이 나왔다. 헌터 이후로는 로버트 녹스가 시신을 샀다. 살인을 계속하던 두 사람 중, 버크는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고 헤어는 스코틀랜드를 떠나 사라졌다.

4장 : 살인 - 존 화이트 웹스터Dr.John White Webster

1849년 하버드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하버드 대학교의 화학자 웹스터가 고리대금업자 조지 파크먼을 통나무로 내리쳐 살해하고 시신을 절단해 태운 사건이다. 웹스터의 연구실에서 파크먼의 유해가 발견되었고, 결국 버크처럼 교수형에 처해지며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때 해부당한 시신은 고통을 느끼진 않았다.

5장 : 동물 학대 -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에디슨은 경쟁자인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 기술을 부정하기 위해 말과 개를 전기로 고문하고, 사형수 윌리엄 켐러에게 최초의 전기의자에서 역사상 가장 섬뜩한 죽음 중 하나를 경험하게 했다. 결국 에디슨의 직류는 패배했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동물 실험 중에는 개를 탁자 위에 못으로 박고 산 채로 해부한 기록도 있다. 미국에서만 해도 2000년까지 희생된 쥐와 새가 약 5억 마리나 되고, 개와 고양이, 원숭이까지 있었다.

6장 : 비열한 경쟁 - 오스니얼 찰스 마시Othniel Charles Marsh와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Edward Drinker Cope

오스니얼 찰스 마시와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의 상호 간의 비열한 경쟁에서는 공룡을 지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동물로 만든 배경을 알 수 있다. 서로 상대를 앞서려는 옹졸한 감정과 분노 때문에 마시와 코프는 새로운 공룡과 그 밖의 종을 수백 개나 발견했고, 그 표본으로 박물관들을 가득 채웠다. 이 책에서 다친 사람이 없는 유일한 이야기다. 

7장 : 의사들의 연구 윤리 위반 - 나치와 미 공중보건국 존 커틀러John Cutler

나치 의사들은 저체온증을 실험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일부러 저체온증에 걸리게 해서 뜨거운 물에 담가 빨리 온도를 높이는 것이 효과적임을 알아냈다. 나치뿐 아니라 미국 터스키기에서도 흑인 남성 400명을 대상으로 매독 생체실험을 했다. 미 공중보건국 의사 중 하나였던 존 커틀러는 과테말라의 수용소에서 의도적으로 수감자들과 매춘부를 성병에 감염시켜 연구했는데, 2003년 자신의 연구가 폭로되는 것을 못 보고 눈을 감았다. 

8장 : 명성에 눈이 멀어 - 에가스 모니스Egas Moniz와 월터 프리먼Walter Freeman

신경학자 모니스는 원숭이 베키의 전두엽을 제거하니 온순해졌다는 것에 착안, 전두엽을 제거하는 대신 전두엽과 변연계 사이의 연결 부위를 절단한다. 모니스는 데이터가 모이자 백질 절단술에 관한 책을 출판했고, 월터 프리먼은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엽 절개술을 대중에게 확대한다. 그러다가 얼음송곳을 보고 탐침을 개발한 프리먼은 경안와 뇌엽 절제술을 개발한다. 그러나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약이 개발되자 프리먼은 자신의 업적을 공고히 하는데 그쳤다.

9장 : 간첩활동 - 해리 골드Harry Gold

소련에 원자폭탄 설계도를 넘긴 화학자 해리 골드. 클라우스 푹스, 테드홀은 소련을 위해 간첩 활동을 했다. 생물학자 트로핌 리센코는 소련에 기근을 초래했고 소련의 생물학 발전을 50년이나 지연시켰다. 해리 골드는 체포되자 간첩 활동을 자백하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루이스버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재소자들의 건강을 회복하도록 간호하는 일을 돕다가 1966년에 가석방되었다. 

10장 : 심리적 고문 - 테드 카진스키Theodore Kaczynski

IQ 167의 수학 천재 테드Theodore(=Ted) 카진스키는 하버드에서도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우연히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헨리 머리Henry Murray의 비윤리적 실험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실험을 견디다가 결국 폭주하게 된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폭탄 16개를 폭발시켜, 3명이 죽고 여러 사람이 불구자가 되었다. 대학교와 항공사를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를 유나바머Unabomber라고 불렀다. 귀족 출신 머리는 태평스럽게 젊은이들에게 한 심리적 학대 행위를 싹 잊었지만 카진스키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11장 : 의료 과실 - 존 머니John Money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대학교수 존 머니는 유명한 성 과학자이다. 그는 음경이 훼손된 브루스라는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로 만든다. 부모는 브랜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여자아이로 키우려 하지만 브랜다가 자살까지 결심하자 결국 다시 남성성을 찾아준다. 결국 브랜다는 여자에서 데이비드라는 남자로 살게 됐지만 쌍둥이 형제가 자살하고 아내마저 떠나자 자살로 자신의 고통을 영원히 끝낸다.

12장 : 증거조작 - 애니 두컨Annie Dookhan

애니 두컨은 보스턴의 마약 분석 연구소에서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실험하지 않고 추측한 분석 결과를 적고 모든 시험 절차를 거쳤다고 인증하는 서류에 서명을 해 그것을 경찰에 제출했다. 이 증명서는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두컨은 반복적으로 위증을 한 셈이었다. 게다가 슈퍼우먼의 명성에 흠집이 날까 봐 실수를 인정하는 대신, 자신의 사기 행각을 숨기기 위해 증거까지 조작해 체포되었다.


금연, 유기농 같은 건강에 좋다는 개념은 '순수성'을 강조한 나치 의사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비윤리적인 실험으로 나치가 저체온증을 연구한 결과 윤리적인 모포로 체온을 올리는 것보다 따뜻한 물에 담가 올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만약 당신의 부모나 아이가 강의 얼음 사이로 빠졌다면 어떤 소생 방법을 쓰겠냐고 묻는다. 


나는 무조건 살려 낼 수 있는 나치의 방법을 쓸 것이다. 불법 증거는 채택하지 않는다. 불법 의학 연구도 채택하면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이 먼저가 아닐까?


이 책은 과거뿐 아니라 현대의 이야기와 미래의 범죄까지 다룬다. 1970년에 일어난 얼음 섬 캠프 살인사건이나, 무중력 상태에서의 식품 관련 살인사건, 독재자를 꿈꾸는 사람이 산소 농도를 낮추어 전 우주 기지를 지배하려고 한다면? 스마트 홈을 이용해 원격으로 화재를 일으키거나 반려 로봇을 해킹하여 살인을 한다면?  


저자는 마지막 부록에 디스토피아를 주장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실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모든 혼란을 가정하고, 기술이 남용될 수 있는 방식을 미리 생각하라는 것이다. 


세계에 새로운 힘을 도입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완화시킬 도덕적 의무가 있다.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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