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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KG짜리 바벨을 양쪽에 달면 5KG이 된다
방현일 지음 / 좋은땅 / 2024년 4월
평점 :
오면서도 무수히 생각했지만, 문득 아주 가끔 '왜'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결국 왜 왔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입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면 자유로울까?
이 책에는 12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첫 번째 작품인 <2KG 짜리 바벨을 양쪽에 달면 5KG이 된다>의 주인공은 빈민촌 아파트에 산다. 고물 차와 고물 컴퓨터 그리고 강아지 '해피'가 전 재산이다. 주인공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맞선에 실패하고, 회사에는 자주 고장 나는 컴퓨터와 눈치 봐야 하는 상사가 있다. 한 마디로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주인공이, 결국 강아지를 잡으려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귀'는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싶은 작가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이 책의 제목은 우연한 계기로 발견한 공통된 숫자로 음절과 음절의 획을 그때그때 맞춰 사칙연산과 한자 사(死)와 결합했을 뿐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그냥 사칙연산을 대입해 보았다.
2KG + 2KG = 4KG -2KG = 2KG × 2KG = 4KG ÷ 2KG = 2KG
여기서 2KG가 7개 4KG가 2개이다. 그래서 7-2=5KG.
2KG짜리 바벨을 사칙연산으로 계산해 보면 5KG이 된다. 결국 소설의 주인공도 사칙연산의 사(死)로 끝나는데, 세상의 논리를 아무리 더하고 빼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닐까?
<컵>에는 치매인 아버지가 썼던 곰돌이 컵, 그리고 요양원에 가기 전에 들렸던 놀이동산에 있는 회전 컵이 등장한다. 고모에게서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욕창으로 고통받다가 숨을 거둔다.
처음에 곰돌이 컵에는 우유가 담겼었고, 그다음에는 아버지의 소변이 담겼다가 다시 평범한 컵이 된다. 컵은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이제 아버지를 용서한 주인공은 엄마가 서랍장에서 꺼내 주던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아버지 산소에서 내려간다.
불에 달구어진 <석쇠>는 서로에게 낙인을 찍을 수도 있지만 노가리를 맛있게 구워주기도 한다. 주인공은 남들과 똑같은 시간을 투자하고 삼류 대학, 삼류 학과를 나와 수많은 시간을 아픔과 싸워왔다. 그런데 얻은 결과는 삼류 인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노가리 호프집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창업을 한다. 노가리가 먹음직스럽게 익자 석쇠를 뒤집으며 석쇠의 손잡이는 석쇠와 한 덩어리지만 뜨겁지 않다고 느낀다. 뜨겁지 않은 석쇠의 손잡이와 같은 면을 보며 살았던 주인공의 인생 승리담 같은 이야기다.
어쩌면 <다리>는 생명이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이다. 흐르면 생명이고 빠지면 죽음인데 현수막 일을 하는 주인공은 다리가 불편하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수평이 맞지 않는 나무 사다리, 등갈비 집에서 일했던 아내가 죽고, 아들은 결혼해서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다리도 심으면 꽃이 필까?'라는 아내의 말에 주인공은 정원에 사다리를 심었다. 사다리 칸마다 작은 화분에 꽃이 피었다. 사랑이 흘렀다. 현수막 일을 했던 주인공이 사다리에 꽃을 피웠다. 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켜낸 사다리는 아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사랑이었다. 어느 날, 사진을 공부하며 여행 중인 며느리가 사진을 보내왔다. 며느리가 전국을 돌며 찍은 현수막이었다. 전국의 현수막 속에는 작은 행복과 사랑과 기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오십 보 백 보>는 사람을 다루는 의사나 복어를 다루는 요리사나 그게 그거라고 한다. 즉 의료 사고를 내서 사람을 죽게 한 것이나 복어 독으로 죽인 것이나 오십 보 백 보다.
<혹돔>은 예술에 진심인 주인공이 성전환 수술을 하고, 모성을 겸비한 여성으로 완성된다는 이야기다. 몸 안에 있던 혹이 사방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왔다가 서서히 녹아내리고 무대의 조명이 꺼진다.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같이 있는 우리의 시간. 우리 속의 타인의 시간이 아니라, 온전히 아내와 나만의 시간이었어야 했다. 아내가 재산의 반을 가지고 다른 남자에게 가 버린 뒤, 그랬어야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주인공. 인생 별거 없는데. 이쪽 아니면 저쪽, 이거 아니면 저거인데. 여전히 두 개 중에 하나 고르는 것이 어렵다면서.
<가려진 세상>은 현실과 꿈을 섞어 놓은 듯해서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컵 받침 속에 끼어 있는 10차원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다. 창고와 라디오와 그림과 흰 블라우스와 단추 어떤 것이 현실 이야기일까? 현실에 있는 가려진 세상 이야기.
<번개탄>의 주인공인 동혁은 무명 작가이다. 안정된 직장이 없는 그에게서 은영, 숙희, 도희, 진희 모두 다 떠나간다. 그래서 의류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회식 다음 날 꽃다발을 받는다. 이제까지 결혼을 안 한 것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한 부장님이었다. 아예 술 속에 빠져 죽고 싶다는 동혁. 스스로를 번개탄도 못 되는 불발탄이라며 자조한다.
<행정실 사람들>에서는 돈 세는 풍경과 월급봉투가 신기했다. 옛날의 서무실이 행정실로 바뀌었다고 한다. 교무실은 가 봤는데 행정실에서는 월급과 비품관리 외에도 하는 일이 엄청 많았다.
주인공 민재형은 일상이 힘들고 선배들이 괴롭혀서 억울할 법도 한데, 컵을 뺏기면 종이컵을 쓰고, 낙엽과 눈을 쓸며 다양한 길 내기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하다 보면 정말 재밌다면서. 행정실의 머슴처럼 일하지만 불평하지 않고 무지개를 본다. 창문 밖 스프링클러 위로 무지개가 떠오르는 장면이 너무 아름답다. 일상을 기쁨으로 바꾼 주인공 때문이다.
<모조(模造)>의 주인공 강찬은 3년째 단역 배우를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 배우의 상대역으로 된다. 기쁨에 들떠 계약서에 사인을 했는데 그 계약서가 장기 기증에 동의한다는 서류였던 것. 알고 보니 유명 배우의 상대역이 아닌 장기 제공자로 뽑힌 것이었다. 서류를 꼼꼼히 읽지 않고 사인부터 한 것이 화근. 사기꾼들은 이렇게 사람의 약점을 이용한다.
<탈피>는 4명이 참가한 <오징어 게임>같은 느낌의 소설이다. 가상 공간에서 직업을 구하는 실험에 참가한 4명은 경력이 단절되었거나, 사기를 당했거나, 퇴학 당하는 등 좋은 직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모욕 당해도 참아야 하고 이의 제기도 필요 없고, 중도 포기도 불가능한 원하지 않는 삶. 탈피는 없다.
감동적이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12가지 이야기 속 여행이었다. 아직도 책 겉 표지 바벨 봉에 적혀 있는 "소설은 창작/ 49= 77"이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7은 행운의 숫자니까 앞으로 좋은 일이 따블로 생길 것같다.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425/pimg_791333153427208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