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평범한 청소부와 허물없이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 너와 나는 단지 하는 일이 다를 뿐 똑같이 소중한 하나의 인격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문화. - P284
독일은 메르켈 집권기에 유럽 정치의 심장이기도 했습니다. 메르켈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나라를 완벽하게 리모델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는 독일인 모두의 총리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교정하는 능력과 서로에 대한 존중, 연대와 신뢰 위에서 번창합니다. 무엇보다도 팩트를 신뢰하고, 음모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과 출신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편견을 조장하고 분노를 선동하는 이들에 맞서야 합니다." 메르켈의 연설은 격정적이지도 않았고, 영웅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우직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말이 앞서는 정치를 늘 경계했습니다. 위기의 리듬을 바꾸고, 위기가 정치의 박자를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 언제나 메르켈의 목표였습니다. - P277
보수의 낙태 반대는 ‘무고한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원칙에서 출발합니다. 반면 사형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중범죄자의 생명은 정당하게 박탈될 수 있다’라는 논리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개인의 행위에 따라 생명의 가치를 달리 평가하는 관점과 연결됩니다. 태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무고한 존재이지만, 사형수는 자신의 선택과 행위로 인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책임이 다르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낙태에 관한 의문은 언제나 이런 것입니다. 만약 태아의 삶이 산모의 삶을 희생하도록 예정되어 있다면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 선택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태어나지 않은 태아보다 먼저 존재했던 자기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여성의 입장은 비난받아 마땅한가? 국가나 사회가 선택을 강요해도 되는가. - P239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노력도 타고나는 거다’라는 게 아니라, 노력과 만능주의가 저성과자들을 패배자로 낙인찍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난할 여지를 준다는 것입니다. 개인에게 닥친 문제를 구조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오직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항상 문제입니다. 아무리 음치라도 노래방에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노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입니다. 우리 공동체도 이제는 그 정도쯤 해 줄 만한 충분한 능력이 됩니다. - P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