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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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감수성의 문제다. 상대방에게 입힌 손해의 명백한 증거가 있는 명예훼손죄와 달리, 모욕죄에 해당하는 언사는 그냥 기분이 좀 상했다는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둔감하기 쉽다. 성희롱도 예전엔 그러했다고 볼 수 있다. 성폭행처럼 눈으로 드러나는 해를 입힌 것이 아니기에 씁쓸한 웃음 한번 짓고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렇게 흘려보낸다고 해도 나쁜 기운은 침전물처럼 쌓인다. 그런 말들이 반복되면서 자존감을 떨어지고 남녀관계는 피상적으로 겉돈다.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농락의 대상으로 삼는 마음의 습관이 굳어지다 보면, 성폭행 등에도 둔감해진다.
그러한 정황을 모욕 일반에 확대 적용해볼 수 있겠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습관적으로 짓는 표정이나 눈빛에 대해 민감해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담론을 만들어가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역지사지로는 부족하고 역지감지,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대학에서 청소를 하는 어느 아주머니가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동승한 교수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해서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유심히 관찰해보니, 대학의 청소 아주머니들은 교수는 물론 학생들과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다.
그런 괴로움은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블랙 라이크 미’라는 책을 쓴 존 하워드 그리핀은 차별받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1959년에 특별한 피부과 시술을 받아 흑인의 모습을 하고 7개월 동안 미국을 횡단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백인으로서 당연하게 영위하던 일상사들에 생각지도 않은 장애물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 드나들던 식당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고 버스 휴게소의 화장실도 이용하지 못했다. 평소에 밝은 인사를 건네던 가게 점원은 굳은 얼굴로 자기를 대했다. 친절하게 대하는 백인이 있기는 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흑인을 멸시하는 태도가 금방 드러났다. 그는 "내가 가진 개인의 자질을 보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내 피부색을 보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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