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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학교 요리 수업
양영하 지음 / 나비클럽 / 2022년 11월
평점 :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조금 의아했다.
‘지리산학교’는 무얼까. 그 학교가 무엇이기에 ‘요리 수업’이 있는 것일까.
처음엔 ‘대안학교’의 일종이라 추측했다. 내가 알고 있는 대안학교를 들면, 간디학교, 지구촌학교, 해밀학교, 이우중학교, 지평선중학교 등이 있는데, 지리산학교도 왠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의문은 책을 읽다가 풀렸다.
“지리산학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생활과 문화 학교로 2009년 5월에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 389번지에 문을 열었다.”(p14)
이 학교는 일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수강생이 되어 생활 문화 교육을 수강하는 곳이다. 수강반이 참 다양하다. 글쓰기반, 기타반, 가죽공예반, 목공예반, 민화반, 브런치반, 숲길걷기반, 사진반, 산야초반, 서예반, 옷만들기반, 야생화탐사반, 인문학명상반, 인형만들기반, 프랑스자수반, 퀼트반, 태극권반, 도자기반, 그리고 발효산채요리반.
이 책의 저자인 양영하 님은 이력이 자못 특이하다. 혼자 산을 개간하며 농사짓는 남자의 연애편지를 받은 걸 계기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결혼하였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속에서 두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다가, 지리산 자락 하동으로 이사하였다. 그리고 남는 방에 민박을 하면서 밥상을 차렸는데, 어느 시기부터는 밥을 먹으러 민박을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집 밥상은 일반적인 가정식도 아니고 식당에서 흔한 백반도 아닌,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에서 채취하는 자연을 머금은 식재료에 양영하 님의 손맛이 어우러진 ‘자연식’이었기에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으리라.
이게 소문이 나서 2011년 지리산학교 발효산채요리반이 신규 개설될 때 요리반 선생님으로 초빙된 것이라 한다.
양영하 작가에게 있어서 요리는 ‘치유의 시작’(p28)이라고 한다. 가족 간의 온정으로 행복했을지 모르나, 전기도 들지 않는 산골생활 자체만으로도 울적한 날이 적지 않았으리라.
민박을 할 때도 들른 사람들과 그새 정이 들었다가 헤어질 때도 늘 서운하고, 본인도 모르게 울컥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던 차에 마음의 상처가 되는 일을 겪기도 했고, 이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런 상황 끝에, 발효산채요리반은 작가 본인에게 치유였다.
또한 “지리산학교 요리 수업을 시작할 즈음 귀농 붐이 일었고, 도시에서 온 귀촌인이 많이 신청했다. 도시에서 몸과 마음이 지치도록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는 단순하게 살고 싶어 자연의 품에 안긴 사람들이었다. 그분들에게 자연에서 난 것들로 소박한 밥상을 차리는 법을 선물해주고 싶었다.(p28)” 라고 작가님은 말한다. 이처럼 수강생들에게도 요리는 치유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요리반을 이끌어오고 있다. 그만큼 발효산채요리반은 인기 강좌이다. 발효산채요리반의 강의는 ‘3가지의 주요한 테마를 가지고 진행’(p16)된다.
“기다림”, “그리움”, “설레임”
기다림은, 된장, 고추장, 간장, 발효주 등의 ‘발효식품’이다.
그리움은, 어머니의 손맛이 살아있는 요리, 천연조미료 만들기 등의 ‘산채요리’와 관련된다.
설레임은, 제철에 나는 산야초를 밥상 위에서 누릴 수 있게 만드는 ‘장아찌’ 요리들이다.
진행 방식은,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고 가끔은 함께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자연에 있는 것 슬쩍 빌려 지리산 한자락을 밥상 위에 올려요!”이다.(p16)
이렇게 3개월 과정 한 학기 동안, 기다림과 그리움, 설레임을 느끼고, 만들고, 나누고, 누리는 시간은 수강생들에게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굉장한 기쁨이자 즐거움, 쾌감, 보람된 추억거리였을 것이다.
게다가 각종 요리를 수업 중에 만들어서 집으로 가져가면 가족이 좋아하고 더욱 요리수강하는 것을 지지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수강 신청은 일찍 마감되었다”(p16)고 한다.
그렇게 지나온 10여년 세월 동안, 쌓인 여러 사람들과의 추억들만큼 쌓여간 요리 수업 중의 레시피들. 양영하 님은 그 만의 노하우라면 노하우인 저자만의 발효산채요리 레시피마저, 이 세상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여러 사람이 함께 음식을 통해 보다 정겹고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 <지리산학교 요리 수업>에 한가득 담아 냈다.
“나의 요리 수업 교과서는 자연이었다.(p12)”라고 말하는 양영하 작가님의 자연 레시피가 4계절별로 사진들과 어우러져 책속 마디마디마다 정갈하게 구성되어 있다.
- 봄 : 김장아찌, 치자열매차, 능개승마장아찌, 봄나물물회, 뽕잎나물, 봄나물부각, 앵두잼 등
- 여름 : 오디정과, 양파김치, 깻잎구이, 매실퓌레, 목이버섯피클, 상추김치, 다슬기장 등
- 가을 : 알배기배추단호박백김치, 달빛차식혜, 버섯조청, 감자부각, 맨드라미청, 꽃부각 등
- 겨울 : 생강청, 당근차, 잣고추장장아찌, 꾸지뽕정과, 야생갓피클, 한라봉껍질정과 등
위에 나열한 다채로운 레시피들을 보라.
너무도 생소한 요리들이 이 책 <지리산학교 요리 수업> 곳곳에 숨어 있다가 페이지를 펼치는 족족 사람을 놀래킨다. 세상에 이런 요리들이 존재했더란 말인가!
분명 생소한 요리 이름들인데, 왠지 정감이 가는 요리 이름들이다. 산에서, 들에서, 강에서 나고 자란 싱그러운 식자재들이 자기 자신의 본연의 이름을 그대로 딴 요리라서 그럴까.
저 요리들 중에는 처음 들어본 식재료 레시피들이 꽤 많다. 그 요리들의 향기와 맛이 너무도 궁금하다. 아무래도 시간을 내어 작가님이 운영한다는 민박집에 찾아가 봐야하나 싶어진다.
요리들 중에 놀라운 점은 또 있다.
매우 정형화된 반찬으로 흔히 식탁에 올라오곤 하는 ‘김’, ‘양파’, ‘당근’, ‘상추’, ‘감자’, ‘깻잎’, ‘봄나물’, ‘버섯’ 등과 같은 일반적인 식재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요리로 탈바꿈되어 있어 무척 놀랐다.
모든 요리 레시피 중에서 내가 가장 놀라웠던 요리는, ‘한라봉껍질정과’이다.
한라봉은 ‘한라봉 속알맹이’를 먹는 거 아닌가? 그렇다보니 흔히 껍질은 버려지기 마련인데, 이것을 이용하여 정과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기가 찼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레시피를 곱씹어 읽어낼수록, 상상할 수 있는 식자재 본연의 맛이 요리로 재탄생되었을 때 '도대체 어떤 맛을 자아낼까' 너무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할 그 ‘맛’이 내 구미를 자극하여, 내 입안에 침이 고이는 듯 했다.
이 책엔 다양한 사진들이 풍부하다. 그래서 상상하지 못하는 ‘향’, ‘맛’을 사진 속 이미지들을 통해 ‘눈’으로나마 간접적으로 요기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
책에 담긴 사진들을 보면, 상당히 감각적이다. 아기자기 잘 배열되어 있고, 색색이 예쁘기도 하고, 피사체를 담아낸 구도도 좋다. 분명 전문 사진작가가 동행했을 거라 생각될 정도인데, 양영하 작가님이 손수 찍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아, 기가 차다.
'향'에 '맛'에
‘멋’까지 가득한 책이라니.
이렇듯 이 책 <지리산학교 요리 수업>은, 흔한 레시피 책이나 흔한 요리책에서는 전혀 달리, 읽는 내내 다양한 감각을 일깨우고 감탄을 자아내게도 하며 깜짝 놀래키기도 한다. 여러 가지 다양한 요리들이 한 가득 계절별로 등장하며, 맵시있고 감각적인 사진들이 책 구석구석에 고루고루 배치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 보는 재미, 감상하는 재미, 따라서 만들어 보고 싶어지는 욕망, 얼마나 맛나고 향긋할까 하는 상상까지...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너무도 독특한 경험과 감각을 선사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