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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국 신화 2 : 세상의 처음, 대별왕과 소별왕 - 어린이를 위한 우리 인문학 ㅣ 만화 한국 신화 2
박정효 지음, 권수영 외 그림, 이경덕 기획 / 다산어린이 / 2023년 6월
평점 :
제2권 <세상의 처음, 대별왕과 소별왕>
우리나라에 ‘신화’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단군 신화’다.
그리고... 또 있나?
나는 학창시절에 한국 신화를 제대로 배웠다거나, 연구되어 출판된 일반인을 위한 한국 신화 관련 도서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한국 신화가 무척 어색하다.
당신은 ‘한국 신화’를 알고 있는가?
오히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알고 있다. 시중에 관련 서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뭘까?
2000년 11월에 발매된 가나출판사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아동들이 보기 쉽게 만화로 그려놓은 판타지학습만화인데, 본편은 20권과 특별판 5권을 합쳐서 총 25권으로 완결되었다.
신비롭고도 자극적인 신화 속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서술되면서도 신들이나 영웅들 등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순정만화 같은 예쁜 그림체로 그려지며, 이 두 가지가 함께 조화롭게 어우러진 덕에 아동들의 흥미를 자극하여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빠를 이용해서, 이 시리즈가 이 작품의 캐치프레이즈인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필독도서 0순위’라는 점을 어필하고 강조하여 아이들에게 책을 사 주는 부모들에게 홍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한국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널리 알린 작품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학습만화의 원전은 토머스 불핀치(Thomas Bulfinch)의 「신화의 시대(The Age of Fable)」이다. 미국의 문학가, 역사가, 신화학자로 잘 알려진 그는 일반인들에게 서구 문명의 뿌리를 소개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유럽의 고대 신화를 영어로 저술하는 작업에 들어가, 1855년에 이 책을 완성하였다. 「신화의 시대」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당시 지식계층 독자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불핀치는 고대 시인들이 저술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들을 집대성하여 「신화의 시대」를 완성하였는데, 고대 시인들은 누구일까?
우선 기원전 8세기의 호메로스(Homeros)와 헤시오도스(Hesiodos)를 들 수 있다. 이때 그리스 신들의 구체적인 계보와 신성, 행적 등을 서술하기 시작하였는데,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의 저자 호메로스와 「신통기」의 저자 헤시오도스는 그리스 신화 서술의 기반을 확립한 시인들이다. 특히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는 그리스 신들의 전반적인 계보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기원전 2세기경 헬레니즘 시대의 신화 서술로는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가 있다. 아테네 출신 문법학자인 그는 다양하게 전승된 기존의 그리스 신화들을 수집해 선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한데 모아 정리했는데, 「서가(書架)」라는 저작은 그리스 신화의 대성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필사본 형태로 전해지는 아폴로도로스의 신화집이다.
마지막으로 기원후 8세기 제정 로마 시대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가 있다. 서사시 형태로 신화를 집대성한 「변신이야기(Metamorphoses)」는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예로부터의 신화와 전설 속의 변신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후세에 그리스로마 신화의 ‘원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신화’는 있는가? 무엇이 있는가? 어디에 있는가? 있다면, 무슨 내용일까?
“말 안 듣는 아이는 삼신할미가 잡으러 온다.”라는 말을 어릴 때 할머니께 들어본 적이 있다.
어릴 땐 그냥 그런 존재가 있나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삼신할미’가 대체 누구란 말이냐.
알아보니 “인간이 태어나도록 아이를 점지해주는 탄생신으로, 창조신 ’마고할미‘나 천신 ’환인‘과 함께 한국의 전통신격 중에서 매우 유명한 한국 신화의 여신”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도깨비>에도 삼신할미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주호민 작가의 판타지웹툰인 「신과 함께」에도 다양한 한국 신화적 존재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콘텐츠는 한국 신화의 요소들을 가미한 창작콘텐츠이기에, ‘한국 신화’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한국 신화’에 관심을 갖고 알아본다면, 창세신화, 고대국가 건국신화 등 꽤 많은 한국 신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토머스 불핀치의 「신화의 시대」처럼, 가나출판사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국 신화’를 집대성하여 전하는 유명 출판물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마침맞게 도서출판 다산어린이에서 「어린이를 위한 우리 인문학 – 만화 한국 신화」를 기획하여 출판하였다.
이 책을 기획하고 감수한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의 이경덕 교수는 ‘펴내는 글(서문)’을 통해 다음처럼 말한다.
“오늘날 K-팝, K-드라마를 비롯한 한국 문화 또는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세계인이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박수를 치며 함께하고 싶어 한다는 현상이겠지요. ... 이런 한국 문화는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의 경험과 생각에서 유래한 것이고, 바로 그 뿌리에서 신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p4)
특히 한국 신화는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와 같은 서양 신화와 달리 여성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다툼이나 경쟁, 분리가 아닌 조화와 환대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현대적입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한국 신화를 뿌리로 삼은 K-문화에 세계인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p5)”
여기서 ‘한국 신화를 뿌리로 삼은 K-문화’라는 말이 매우 인상적인데, 그래서인지 이 책 「만화 한국 신화」는 ‘경쟁보다 조화, 다툼보다 배려 –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뿌리 인문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뒷표지)
현재 2권까지 나왔다. 제 1권은 <신의 아들 단군>이고, 이번에 읽은 책은 제 2권 <세상의 처음, 대별왕과 소별왕>이다.
「만화 한국 신화」의 기획 의도는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한국 신화가 더 낯선 어린이들을 위해 쉽고 재미있는 만화로 우리 신화를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신화학자 이경덕의 검증을 거친 스토리와 세련된 만화 스타일로 누구든 순식간에 한국 신화에 빠져들게 하고, 우리에게도 훌륭한 신과 아름다운 신화가 있음을 알고 자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책소개를 하였는데, 주인공인 ‘단군’이 곳곳에서 인간과 더불어 사는 신들을 만나러 가면서 우리 이야기로 모험하고 성장하는 위대한 여정이 시작된다.
제 2권 <세상의 처음, 대별왕과 소별왕>는, “세상의 시작”에 관한 신화인 ‘천지왕본풀이’ 신화의 저승의 신 ‘대별왕’과 이승의 신 ‘소별왕’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단군은 신시를 떠나 호랑이 범범과 여정을 떠났고, 아버지 환웅의 “무녀의 조상을 찾아가라”(p11)는 말대로 하여 ‘바리’를 만났다. 바리는 환웅의 요청으로 ‘단군이 떠날 여행의 안내자’가 되기로 아주 오래전 약속되었던 것이다.(p19~20) 또한 환웅은 신들에게 “신시 밖에서 펼쳐질 단군의 모험에 여러 신들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p18)라면서 신들의 도움과 지혜를 나누어 줄 것을 부탁하여, 단군이 어려움에 처할 때 신들이 몰래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단군은 환웅에게서 ‘비밀’을 간직한 ‘허리띠’를 하사받았는데, 단군이 절벽에서 그 허리띠를 떨어뜨리는 사고가 났을 때 풍백, 운사, 우사가 몰래 도움을 주었다.(p26-51)
다음 여정에서 하늘의 신 ‘천지왕’과 ‘총맹부인’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대별왕과 소별왕을 만나, 각자 저승과 이승을 다스리게 된 이야기, 하늘에 두 개씩이었던 해와 달을 하나만 남기게 된 이야기 등을 듣게 되고, 단군은 대별왕에게서 “해 하나를 떨어트릴 때 썼던 화살촉”(p134)을 받는다. 그런데 그 화살촉이 단군의 허리띠에 스며들었다.
이는 ‘환웅이 내준 숙제’라고 하였는데, 페이지 141에 그 숙제 내용이 나와 있다. 허리띠의 비밀은, ‘신의 시계를 모험하는 데 꼭 필요한 열쇠’였던 것이다.(p142)
단군의 다음 여정은 “생명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탄생의 신 ‘삼승할망(삼신할미)’을 만나러 간다.[p160 제 3권 예고]
막상 이 책을 읽고 나니, 무척 흥미로웠다. ‘천지왕본풀이’ 신화를 처음 접하여 생소하긴 했으나, 이렇게 만화로 엮은 이야기를 읽어보니 무척 재밌었다. 또한 [이경덕의 한국 신화 특강]이 책의 말미에 상세하게 실려 있어서 ‘천지왕본풀이’ 신화의 원전 내용을 비롯하여 관련 참고 내용을 알아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각기 다를 법한 ‘한국 신화’의 내용들을 “단군의 모험 여정”으로 한 데 엮어 낸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또한 만화 속 캐릭터들이 생동감 넘치고 친근하다. 이 책을 그대로 디지털 셀로 그려 넣어 애니메이션화 해도 손색이 없을 거 같다.
1900년대 중후반에 일본 만화의 신,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데즈카 오사무’는 다양한 만화 소재의 개발과 왕성한 활동, 출판만화와 매스미디어의 결합, 만화 캐릭터 산업의 개척 등을 통해 일본 만화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올려놓은 만화가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자란 어린이들은 훗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었고, 경제대국 일본을 견인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처럼, 앞서 ‘펴내는 글’에서 “세계인이 지지를 보내는 K-문화의 뿌리는 한국 신화”라고 하였듯이, 우리가 한국 신화를 손쉽게 접하여 재미있게 읽고 보고 느끼고 이해하며 열광할 수 있다면, 세계인이 열광하는 K-문화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지 않을까?
도서출판 다산어린이의 「어린이를 위한 우리 인문학 – 만화 한국 신화」는 ‘한국 신화의 집대성’으로써 우리 한국 신화를 손쉽게 재밌게 열광하며 접할 수 있게 하는 ‘뿌리 인문학 원전’이 될 것이고, 이를 보고 자란 우리의 어린이들은 훗날 ‘세계 문화대국 대한민국’을 견인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만화 한국 신화」 속 단군이 펼칠 모험! 이제 다음엔 어떤 모험담이 펼쳐질지, 또 어떤 한국 신화 이야기가 펼쳐질지 무척 궁금해진다. 다음 권이 기대된다.
하나 덧붙이자면, 「만화 한국 신화」의 기획을 「어른들을 위한 우리 인문학 - 한국 신화 바이블」(가제)로 확장해서 선보이면 어떨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토머스 불핀치의 「신화의 시대」에 견줄만한, ‘한국 신화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 신화 이야기의 집대성’이 하나 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다.
* 이 서평은 도서출판 다산어린이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