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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난관을 돌파하는 기도 - 믿음이 두려움을 삼킨다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16년 10월
평점 :
언제나그랬다. 강준민목사님의 글은 참 잘 읽힌다. 술술 먹이는 글이다.
어려운 이야기가 없다. 아이들이 읽어도 참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억지를 쓰거나, 강권하시지도 않는다. 설득력이 있어 반감이 생기지 않는다. 겉으로는 잔잔하지만 강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읽기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목사님의 묵상에 공감이 되고, 그 묵상을 함께 나눌 수 있음이 참 기뻐진다.
동시대에, 같은 고백과 묵상을 글로써 만난다는 것은 오랜만에 막역한 벗을 만나는 설레임과 같다.
그렇게 큰 기대감으로 가을여행을 떠나듯 난관을 돌파하는 기도를 잡았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말씀과 접촉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랑과 접촉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명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p29>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이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였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더니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고, 그 바닥에서 사명을 발견하였더니 정복이 되었던 얼마전의 내 삶 속에서의 간증을 책을 통해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진한 감동이 밀려들어왔다...
하나님의 임재, 평정심을 품고 기도하는 것,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
이러한 순서로 하나님은 나에게도 일하셨는데 모든이에게 그렇게 일하시는 것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말씀, 사랑, 사명의식, 하나님을 신뢰함, 사랑함, 사명을 맡겨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기도를 받으심과 동시에 그의 일하심...
히브리어는 광야를 미드바르라고 표현한다. 광야를 미드바르로 표현한 유대인들의 사고에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유대인들의 애착과 설렘이 묻어난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바르라 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송소를 드비르라고 한다. 이 단어들은 광야의 미드바르와 어근이 모두 같다. 서양인들에게는 버려진 땅인 광야가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와 같은 개념으로 인식되는 것이다(류모세 열린다 성경 광야이야기 중에서)
삶이 광야다. 그 광야속에서 매일매일 하나님을 만난다. 아니, 만나지 않고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기에 그랬었지만, 지나서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그 보다 더 큰 축복은 있을 수 없음을 고백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그 광야를 선택할 자신은 아직도 없다. 그러나, 주어졌을 때 요동함은 예전보다 좀 덜할 수 있게 되었다. 광야의 넓이만큼, 수렁의 깊이만큼 나를 품으시고, 깊은 은혜를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조금 알게 되었다.
사람이 미숙하면 원망하고, 성숙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미숙한 사람은 근시안적이지만, 성숙한 사람은 시야가 원시안적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전체를 보고, 멀리 보고,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성숙한 사람은 사람과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p48)
사람의 믿음이 성숙하였다는 것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이다. 주님이 인도하신 흔적, 주님이 말씀하신 것에 사람의 반응의 결과, 순종의 결과가 성숙일 것이다.
난관을 돌파하는 기도, 그것을 끌어가 주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성숙이다.
그러므로 이는 곧, 복이다. 깊은 평안이다. 삶의 비밀을 발견함이다. 하나님의 열정이다. 하나님의 주목하심을 받는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본다. 이보다 더 가슴이 뛰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광야, 난관을 돌파하는 기도를 통해, 인생을 통해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함이 되어지는 매이매일이 기도와 더불어 이어지길 갈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