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쓰는 일 - 상실의 늪에서 오늘을 건져 올리는 애도 일기
정신실 지음 / IVP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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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늘 아침은 나의 출근과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으로 유난히 분주했다. 이제 아이 외투만 입히고 집을 나서면 되겠다 생각하던 그 순간, 아이가 응가를 누었다. 나도 아이도 외출복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이를 다 씻기고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르고 다시 외출복을 입혔다. 나도 다시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갖춰 입었다. 이미 시간은 10분이 훌쩍 지났었다. 부랴부랴 아이를 둘러메고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지각을 계획한 적은 없다. 그러나 오늘도 출근길에 지각을 피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계획된 일일까? 아니면 계획되지 않은 일일까?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보편적 명제가 우리 가족을 비껴가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가족의 죽음은 계획된 일이다. 그러나 가족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떠날지 계획하고 예측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족의 죽음은 아무리 이를 오래도록 예측하고 준비했다 할지라도 당혹스러운 일이다. 정신실 작가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고 집필한 ‘슬픔을 쓰는 일’에 이러한 당혹감이 묻어있었다. 정 작가는 분명 아버지가 38년 전에 죽고 나서 어머니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걸 항상 기억하며 ‘세상에서 가장 긴 장례식’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막연한 상상이 실제 현실이 되었을 때 정 작가는 심적으로 무너졌다. 그래서 자신이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쓴 글쓰기를 ‘미친년 글쓰기’라 이름 붙였다.

며칠 전,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슬픔을 쓰는 일’은 그 독서모임에서 10월에 읽기로 한 책이었다. 각자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어느 참석자는 자신이 목회자로서 이 책을 읽는 게 성도의 죽음과 장례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유익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애도의 계절을 함께 지내온 책’의 목록이 인상적이어서 여기 소개된 책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최근 자신이 겪은 장례의 경험과 작가의 경험을 연결하며 소감을 나누었다. 입관식에서 마지막으로 고인의 얼굴을 봤을 때 고인과 겪었던 여러 추억과 일화가 떠올라 울음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울음, 그게 바로 사랑의 다른 말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 독서모임에서 ‘슬픔을 쓰는 일’을 읽으며 느꼈던 여러 소감을 나누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과거에 읽었던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와 김명선 전도사의 ‘사랑이 남긴 하루’가 떠올랐다고 이야기했다.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박완서 작가는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는다. 이러한 슬픔을 박 작가는 ‘참척의 고통’이라 말했다. ‘사랑이 남긴 하루’는 ‘시선’과 ‘내 삶은 주의 것’을 작곡한 김명선 전도사가 자신의 남편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쓴 일기이다. 이 책들을 통해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미리 생각해 보고 그들의 눈물에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슬픔을 쓰는 일’을 읽다가, 우연히 지하철에 있는 대학병원 임상실험 광고를 보게 되었다. 대학병원에서 임플란트를 무료로 심어준다는데, 최근에 치과에서 어금니를 뽑은 엄마가 기억났다. 혹시 이를 통해 임플란트를 엄마가 심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엄마한테 대학병원 임상실험에 참여해 볼 생각 없냐고 물어봐야겠다. 계획대로 임플란트를 대학병원에서 심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들이 엄마의 치아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드려야겠다. 엄마가 세상에 없어도 엄마를 사랑하겠지만 세상에 계실 때 더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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