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두 얼굴
폴 존슨 지음, 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식인의 두 얼굴'은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책의 말미에 있는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니 이 책의 옮긴이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필자가 이 책을 읽기 쉽지 않았던 것은 첫째로, 이 책에는 필자가 잘 알고 있는 지식인도 있지만 절반 가까이는 이름을 한 번도 못 들어 본 지식인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이 책에 소개된 퍼시 비시 셸리, 헤르톨트 브레히트, 에드먼드 윌슨, 빅터 골란츠 그리고 릴리언 헬먼과 같은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데, '지식인의 두 얼굴'에서 그들의 사생활을 가감 없이 폭로하니 필자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의 사생활을 솔직히 털어놓은 것을 듣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보다도 이 책을 읽는 게 필자에게 어려웠던 이유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위대한 정신병자인 장 자크 루소, 더럽고 게으른 혁명가인 카를 마르크스, 호색한이었던 톨스토이와 같은 유명인의 사생활을 아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러 의문을 마음속에 품고 힘겹게 책을 읽은 필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서야 폴 존슨이 이토록 두꺼운 책을 쓴 목적을 알 수 있었다. 폴 존슨은 단순히 지식인의 흥미로운 사생활을 까발릴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게 아니었다. 저자는 지식인을 항상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우리는 그들을 권력의 조종간에서 멀찌감치 떼어 놓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들이 집단적인 조언을 내놓으려 들 때는 그들을 특별한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야만 한다. 지식인들의 위원회를, 회의를, 연맹을 경계하라. 그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박힌 성명서를 의심하라. 정치 지도자와 중요한 사건에 대해 내린 그들의 평결을 무시하라. 집단을 이룰 경우, 지식인들은 자신들에게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승인을 내려 줄 사람들이 결성한 동아리에 극도로 순응적인 경우가 잦다. 한통속이 된 그들이 그토록 위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집단을 이룬 지식인들은 여론과 압도적인 정설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그런 여론과 정설 스스로가 비합리적이고 파괴적인 행동 경로를 창출해 내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602쪽)

 

 

이 책에 소개된 지식인은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가짜뉴스 유포자'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체적 진실에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유리한 날조된 진실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마르크스인데, 이 책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핵심 저작인 '자본론'은 그가 직접 노동 현장을 찾아가거나 통계자료를 작성해서 만든 책이 아니라고 한다. 마르크스는 공장이나 노동자를 만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자료를 근거로 '자본론'을 집필했다. 심지어 그 통계자료는 영국정부가 자본주의의 병폐를 스스로 고치기 위해 만든 통계자료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정부의 통계를 축소, 은폐, 왜곡해서 자신이 원하는 주장의 근거로 마음껏 활용했다. 그렇기에 폴 존슨은 마르크스를 지식인이 아닌 '시인'이나 '문학가'로 평가했다. 마르크스는 일평생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을 강조했지만, 실제 그의 작품에서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마르크스 자체가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니었기에 지난 20세기에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인물들은 실상 신기루를 쫓아다니는 무리와 다를 바 없었다.

 

 

만약 폴 존슨이 한국의 지식인을 대상으로 '지식인의 두 얼굴'이란 책을 쓴다면 이 책에 들어갈 인물은 과연 누가 있을까? 여러 후보가 있겠지만 필자는 조국과 유시민이 한국판 '지식인의 두 얼굴'에서 주인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2019년에 보여준 행태는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데 전혀 관심 없고 자신에게 유리한 날조된 진실을 마치 진실인 양 호도했던 전형적 가짜 지식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폴 존슨이 경고했던 것처럼 그들은 진영논리에 빠져 '우리가 남이가'라는 의식으로 진실을 거짓으로 덮는 데 급급했다. 2019년에 그들의 이중성이 만 천하에 폭로되자 20대 사이에서는 586지식인을 향한 거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향후 이 분노가 한국사회의 재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폴 존슨의 '지식인의 두 얼굴'을 읽으면서,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 그들이 태어난 게 어찌 보면 그들의 진정한 행운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들이 아무리 똑똑했다 하더라도 이 책에 소개된 그들의 악행이 실시간으로 소셜미디어에 공개되었다면 그들의 책은 바로 절판되었고 그들의 명예는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짓밟혔을 것이다. 공적인 말하기와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지식인은 항상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려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처럼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체는 별 볼일 없는 위선자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폴존슨 #윤철희 #을유문화사 #유시민 #조국 #알릴레오 #가짜뉴스 #장자크루소 #마르크스 #marx #좌파 #입진보 #강남좌파 #톨스토이 #헤밍웨이 #버트런드러셀 #사르트르 #카이노스카이로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