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 Daytime Drinki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 술 마시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어디론가 여행에 가서 술을 마시고 싶다.
연탄불에 조개구이를 먹어도 좋고.. 시원하게 회 한접시에 곁들여도 좋고..
심지어 겨울바다 해변가에 걸터 앉아 컵라면에 소주 한 잔 이면 인생 뭐 있어 라면서 미친척 한 여덟시간 쯤 발랄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낮술 마시고 싶다.
여행 가고 싶다
취해서 비틀비틀 걷고 싶다
엉망으로 취해서 웃기지도 않는 막춤을 추고 싶다
펜션 놀러가고 싶다
기차타고 싶다
혼자 여행 가보고 싶다
혼자 술마시고 싶다
컵라면에 소주 먹고 싶다
회 먹고 싶다
.
.

 

영화 '낮술' 의 후유증인지 며칠 째 내 머릿 속은 이 생각으로 가득하다.

 

 

  중앙극장

 서울에 있는 수 많은 멀티플렉스들의 호화로움 속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관이다.
'발렌타인데이때 뭐해요?' 라고 물어보는 직장 동료들의 질문에 '중앙극장에서 낮술이라는 영화를 볼거예요' 라고 이야기 했을 때 사람들은 얼굴에 물음표를 백개쯤 띄운 채 의아해 했다.
'에? 그게 어디예요?' 부터 '왜 하필 거길?', '거기 없어지지 않았어요? 아직도 영화를 해요?' 라는 반응들도 있었는데 그럴 때 마다 그들에게 중앙극장 강추를 외치며 나름의 매력을 느껴 보라 권하곤 한다.

요즘 영화관들은 10개도 넘는 상영관에 24시간 영화를 틀어대고 느끼해 죽을것만 같은 팝콘냄새에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갖가지 개봉예정작들의 마케팅으로 관객들을 현혹시키기에 혈안이다. 
젊고 싹싹한 알바생들은 발랄한 색상의 유니폼을 입고 도레미파솔'라' 정도 되는 목소리로 '어서오십시오~' 이라며 손님을 맞는다.
'어떤영화 예매를 도와드릴까요 손님? 좌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틀에 박힌 앵무새소리로 영화 티켓에 적혀 있는 좌석번호를 빨간 색연필로 굵게 찍 찍 그어대며 자리를 잘못 찾으면 하늘이라도 무너지는 양 편집증 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상영관과 좌석번호를 혼동하지 말라는 의미의 친절한 서비스인 것을 알고는 있지만 과도한 친절은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까지 비치기도 한다.

중앙극장에는 낡음과 무심함이 있다.
예매던 현매던 영화관 제휴 신용카드가 별로 없어 곧이 곧대로 8천원을 내고 영화를 봐야 하고, 미칠것 같은 팝콘냄새 보다는 영화를 기다리는 몇몇 사람들의 작은 웅성거림과 많이 정비를 했지만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는 낡은 시설들이 있다.
영화 예매를 도와주는 직원들은 두꺼운 유리벽에 가려져 있어 무심한듯한 목소리로 '무슨 영화요? 뭐 보실거예요?' 라는 짧고 기계적인 멘트와 티켓을 내주기 위해 유리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익숙한 손놀림이 전부다.
직원들은 대단한 서비스를 해주려고 노력하지 않고 영화표를 끊는 내 입장에서도 그저 티켓만 잘 받으면 그뿐이다.
단지 영화 한 편 보러 왔을 뿐인데 영화 외에 다른 것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아직 내게는 더 익숙하다.
영화관에 들어설 때...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세월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낡은 시설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영화의 기대감과 설레임을 느끼며 지나쳤을까 라는 생각에 중앙극장에 갈 때면 설레임이 배가 되는 것 같다. 

 

영화 낮술.


 

영화의 '홍상수 스러움'(?)에 대해 많은 이들이 평가했던지라 기대 반 두려움 반인 마음이었는데 영화는 생각보다 아주 괜찮았다.
감독이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1인 7역을 맡았다고 하는데, 몇 몇 장면은 참 많이 고민했던 흔적이 보이기도 했고 몇 몇은 촬영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조금 미흡함이 보이기도 했다.


영화 낮술은 실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한 한 남자의 로드무비이다.
지하철 역 어느 곳에 내려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하고 소심한 청년이 어느날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게 되고, 술자리에서 그를 위로해주던 친구들이 강원도 여행을 가자고 조른다. 여행 날짜는 얼떨결에 다음날로 잡히게 되지만 술에 뻗은 친구들 덕에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홀로 여행을 하게 되고 여행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그렸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리얼리티' 이다. 

술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리얼'하지 않겠지만 술자리에 익숙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법한 디테일들이 영화에 숨어있다.
특히 술 마시는 장면에서의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 대사 들은 마치 내가 직접 술집에 앉아 술을 마시는 데 옆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말을 엿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감독이 술을 아주 좋아하거나.. 술집을 경영하고 있는 것 둘 중 하나 일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주된 촬영지는 강원도 삼척이지만 영화는 지역색을 그다지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바닷가는 딱 한번 시시하게 화면을 비출 뿐 주인공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에서 조차 그 흔한 차창 밖의 바닷가 장면은 볼 수 없다.
오히려 그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시한 시골풍경과 국도의 전경이 전부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과 인물들 속에 이야기는 의외로 흥미진진하다.
실제 평범한 사람들이 여행을 했을 때 주인공 청년 같은 경험을 하기는 쉬우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 다가올 불확실한 상황을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의 능력이 탁월하다. 

 

 

 
낮술이 즐거웠던 또 다른 이유는 영화 음악의 힘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이 영화 전반에 흐르고.. 얼마 전 '타인의 취향'을 봐서인지 팻메쓰니의 음악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크레딧 올라갈 때 보니 영화 음악도 감독의 작품이었다.
'낮술' 공식 블로그에서 들을 수 있고 저작자인 노영석 감독이 저작권 완전 배포 되었기 때문에 무료 MP3 다운이 가능하고 사방팔방 뿌려도 된단다.
OST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뽕끼 그 자체다.
지금 듣고 있는데 그냥 좀 취할 것 같다.

트랙리스트.
01. Alcohol dance (작,편곡 노영석)
02. Express bus (작,편곡 노영석)
03. Road (작,편곡 노영석)
04. Blue Sea (MR) - 작,편곡 노영석

OST는 공식블로그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http://blog.naver.com/notsool2009 

 

 

리뷰를 쓰면서도 마치 내가 낮술을 한 번도 안 마셔 본 사람들에게 낮에 마시는 소주의 맛을 묘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냥 답은 하나다.

2월이 3월이 되는 이번 주말. 당신도 TRY 낮술~
온갖 별이 충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난 별 4개이상은 본듯 ㅋㅋ 

 

 


댓글(6)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낮술 [Daytime Drinking]
    from 컬쳐몬닷컴 2009-03-05 17:01 
    사진출처 : Daum 영화정보 낮술 [Daytime Drinking] 감독 노영석 출연 송삼동, 김강희, 이란희, 신운섭, 탁성준 등 제작 스톤워크 2008. 한국. @ 하이퍼텍 나다 체인질링, 워낭소리, 발키리, 벤자민..., 다우트, 더리더 등 최근에 본 영화들의 대부분이 진지한 영화들이었던 탓일까, 아니면 현재 나의 개인적 취향이 '코믹'에는 조금 거리가 있는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재밌고, 웃기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 은근 기대를 했던 것일까..
 
 
몬스터 2009-03-0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낮술 포스팅 올리고 블로거뉴스 들어갔더니 글이 올라와있길래 들려봤습니다.
중앙시네마를 좋아한다니 괜히 반갑네요 ^^
저도 종종 거길 찾는데, 최근에는 잘 못갔지만요...

좋은 글 읽고,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쟈끌린 2009-03-06 08:54   좋아요 0 | URL
중앙시네마, 시네코아 제가 참 좋아하던 극장들인데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에 의식적으로라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댓글과 관심 감사합니닥

지나가다 2009-03-06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한 번 꼭 보고싶은 영화입니다.

저도 그런 느낌 좋아하거든요? 중앙극장이라고 하셨지만
예전에 극장 가면 꼭 느낄 수 있던 느낌이죠. 팝콘과 담배냄새 + 각종 냄새가 버무려진 "극장냄새"가 나고
어딘지 모르게 후줄근하고 시큼한 냄세가 날 것 같은 그런 낡은 분위기.
전 그런 생각만 해도 70년대-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 듭니다. 게가 아직 어렸던 시절...

지금 그런 모든 낡은 것들이 없애버려야만 하는 공공의 적으로 설정된 듯해서 웬지 서운하고 아쉽습니다.
마치 박정희때 고유의 초가집과 한옥을 부수어버리고 스레트지붕의 개량가옥을 짓고 흐뭇해하는 자들을 보는 듯
입맛이 쓰고 떨떠름합니다.
제가 너무 구식인지도 모르지만...

전에 들은 얘기인데 중국인학자들이 일본 동경대에 갈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앞길에 늘어선 낡은 건물들을 본 중국인들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왜 저런 낡은 집들 싹 허물어버리고 깨끗하고 현대적인 건물을 짓지 않느냐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닐텐데..
일본인은 각 건물에 깃든 역사를 알려주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고 합니다.
저 건물은 어느 유명한 문인이 학창시절에 무슨무슨 일을 했던 곳이고, 저기서는 어느 학자가 무엇을 했고...

한국은 아직 그 중국인들의 문화수준에서 별로 나아간 것이 없어보입니다.
유럽에서 고집스럽게 옛것을 지키는 것을 봐도 전혀 느껴지는 것이 없는 것인지.
요즘 선진국들에선 근대문화재도 잘 가꾸고 살리기 위한 노력이 벌어지고있고, 심지어 중국도 그걸 인식하고있는데
한국은 지금도 빨리 허물지 못해 안달을 하고있으니 갑갑하고 답답할 따름이죠.

쟈끌린 2009-03-06 09:03   좋아요 0 | URL
낡음의 미학을 아시는 분을 이렇게 뵙다니 !
낡은 것도 충분히 조화를 이루며 멋질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획일적인 사고방식 (싹 다 밀고 싹 다 올려버렷!) 진저리가 납니다.
도시의 빽빽한 아파트숲을 보고 있으면 답답함에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오래됐어도 정비가 잘 되어있는 대안적인 주거공간이 없다보니 억지춘향으로 대세에 끌려가는 제 모습이 서글퍼지기도 해요.
유럽여행에서 봤던 낡지만 멋스러운 건물 하나 하나에 문화적 쇼크를 받았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점차 나아 지겠지요.. ^^
매번 중앙극장을 지나갈 때 마다 행여 없어질까 약간의 조바심까지 들곤 하는데요, 유물같은 도심의 이런 극장들이 없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녹두 2009-03-07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디스페이스는 정말 추운거 빼면 좋은데 ㅜ ㅜ;;



난희 팬이 되어보시는건 어때요 ㅋㅋ?

낮술 언넝 보고 싶네요~

쟈끌린 2009-03-11 09:59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언니 무서워요
포스작렬이던데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