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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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일어난 일의 반대는 무엇일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일어난 일의 반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아버지는 말했다.
"일어난 일의 반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14년쯤 지난 후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티베리아스의 작은 생선 요리 식당에서 야르데나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나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야르데나는 대답 대신 빛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즐기는 여자아이들만이, 어떤 가능성이 있고 어떤 불운이 있는지 잘 아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야르데나가 대답했다.
"일어난 일의 반대는 거짓말과 두려움이 아니었다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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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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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은 아직은 될 수 없지만 어떤 것은 아직은 될 수 있다. - P229

선배도 참 지겨웠겠구나.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다움을 잃어 가는 하루하루가, 저마다 피해자의 얼굴로 가해자의 얼굴을 감춘 채 무리의 습성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못됨을 처먹어 가는 일상이. 무엇보다도 타인의 불행 앞에서 다행을 챙기는 다행하지 않은 자신의 마음과 자꾸 마주해야 하는 공포가. - P246

고독사 워크숍을 시작하며 이수연이 깨달은 단순하고 분명한 진리는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고독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독의 코어를 단련해야 한다는 거였다. 고독이란 단순히 마음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균형과 근력의 문제였다. 친절과 배려가 탄수화물에서 나오듯 고독할 수 있는 힘 역시 강인한 체력과 단련된 근육에서 나왔다. 타인의 고독을 지켜 주는 힘 또한, 일 분이라도 혼자 플랭크 자세를 해 본 사람은 알게 된다. 혼자 버티며 산다는 건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 수연 역시 반복된 훈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의 고독은 대체로 단련될 수 있다는 걸.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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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가학은 친절과 배려의 옷을 입고 온다고 알리스는 생각했다. - P127

알리스가 부러운 것은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원하는 것을 소장할 경제력 이전에 그들의 취향이었다. 모든 게 그렇듯 취향의 세계 역시 일부에게만 너그러워서 이미 가진 자들만이 취향을 탐색하고 키워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다듬어진 취향은 곧 또 다른 능력이 되었다. 알리스의 경우에는 취향 없음을 숨기기 위해 타인의 취향을 훔쳐보며 다수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 정도가 유일한 취향이었다. - P129

가끔 높이 뛸 때의 감각, 좋아하는 주희 선배에게 아주 가깝게 다가간 듯한 친밀감, 세상이 이해 가능한 반경 안에 들어온 것만 같은 충만감이 그리울 때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열망은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넨다는 건 허공의 높은 곳에 위태로운 선을 긋고 그만큼 높이, 아주 높이 뛰고 싶다는 마음과 유사했다. 그것은 추락과 부상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 낼 때만 가능한 도약이기도 했다. 한번 거부된 마음을 돌려받은 후 알리스는 겁쟁이가 되었다. 그걸 부정하거나 뛰어넘고 싶은 마음은 다시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좋았다. 그 후에는 누구도 그렇게 높이 뛰어야 할 만큼 좋아지지 않았다. 장대 없이도 넘을 수 있는 높이의 사랑만 했고 떨어져 다치더라도 치명적인 부상으로 남지 않는 연애만 했다. 어른이 되면서 중요한 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 보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였다. 평정심에서 나오는 상냥한 태도, 사려 깊은 경멸과 친절로 가장한 경계심. 그것이 알리스를 직업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사람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지켜 주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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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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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초보자와 아마추어인 상태로 남는 거란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완성되지 않으면 그게 포기나 실패라고 생각하죠. 그건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짜 도달해야 하는 건 사실 매번 하던 걸 엎고 새로 시작함에 두려움이 없는 성실한 초보자이자 아마추어, 실패자이자 구도자인 상태를 유지하는 거다 이 말입니다. 트랙에 수많은 출발선을 긋다 보면 결국은 출발선이 결승선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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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멈추면 다시 회복될 걸 알면서도 우리는 멈추지 못합니다. 우리가 작동을 멈추는 동안 함께 멈추게 될 사람들에 대한 책임과 돌봄의 무게가 우리를 실종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또한 그렇게 멈춘 결과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성취와 스펙의 고리에서 영영 낙오될까 봐 우리는 두렵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동안 누군가는 영원히 실종되고 누군가는죽음에 이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강제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아주 작은 비겁함과 다정함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영원히 멈추지 않게 도와준다면 우리는 더 비겁해지고 더 다정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고독사 워크숍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이란 밍기적뿐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잠시 멈추고 증발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건 대체 불가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대체 가능한 인간이란 걸 공유된 고립의 훈련을 통해 체득해야 한다 이겁니다." - P26

9만 9000원의 보증금을 내고 12주간의 고독사 워크숍을 시작한 참가자들은 무인 세탁함에 자신이 고독사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올리곤 했다. 가장 많은 조회수와 포인트를 얻으면 최종 우승자가 된다는 소문 때문인지 다들 적극적으로 자신이 고독사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파했다. 타인의 고독사에 댓글을 달며 누군가는 안도하고 누군가는 공감을 하고 누군가는 타박을 했는데 중요한 건 조언의 유용함이 아니었다. 타인의 고독에 충고나 조언이 가능할 리도 없었다. 다만 서로 ‘관여‘하고 있다는 것, 나의 고독사에 타인이 관여되고 타인의 고독사에 내가 ‘관여‘하고 있다는 분명한 실감과 소소한 실천들이 중요했다. - P61

특별한 날은 점점 드물게 왔다. 건강에는 좋은 일이었다. 무탈하게 어제와 같이 시시한 일상을 반복하는 나날이 실은 특별한 하루의 연속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P67

결국은 다 우는 판다가 자초한 일이라고 양이는 생각했다. 가끔 양이도 우는 판다의 나쁜 소문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다른 커뮤니티에 말을 보태어 옮기기는 했지만 다수의 무심한 악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 없어도 그만. 그러니까 있어도 그만. 우는 판다를 거리에서 쫓아내기 위해 등을 떠민 5000명의 손이 있다면 그중에 양이는 한 손바닥도 아니고 한 손가락 정도의 힘밖에 없지 않았다. 그러니까 양이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었다. 그러면 다른 5000명은? 그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다른 5000명에 비하면 자신의 악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므로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우는 판다만 없었다면 다수가 가만히 있다가 가해자가 되거나 죄책감을 느낄 일도 없었을 거였다. 결국은 모두 우는 판다의 잘못이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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