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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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과 상담하다보면, 들고양이 감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느낌이 내 몸에 깃들 때가 있다. 나는 그 느낌에 꽤 익숙하다. 그것은 상담중인 환자가 스스로는 쉽게 느끼지 못하는 모종의 육체적 상태를 무의식중에 내게 전달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꽤 재미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난데없이 졸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한창 활기차게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뭐라고 뚜렷하게 설명하기 어렵고대화내용에서도 이유를 집어낼 만한 부분이 없지만, 하여간 미묘한 느낌이 공기를 통해 당신에게 전달되어 눈 녹듯이 활력이 사라지고 무기력해진다.
정신분석가는 그런 갑작스러운 기분 및 감정 변화를 단서로 활용한다. 상호 기분전이는 깐깐하게 따져볼 만한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치료사가 환자와 마주 앉아 있다가 제 몸에서 난데없는 기분변화를 감지한다면, 치료사는 그 의미를 알기 위해 머릿속으로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해본다. 우선 치료사는 자신을 연구대상처럼 객관적으로 점검한다. 환자가 내게 어떤 자극을 주었나? 내가 왜 그때 긴장을 했나? 환자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을 뿐인데 왜 내가 갑자기 슬퍼졌나? 환자가 뭔가 내 개인적인 감정을 건드렸나? 치료사가 경험하는 그런 감정상태를 역전이라고 한다. 치료사는 역전이된 감정들을 포획해서 곰곰이 반추해본다.이 불협화음은 치료사에게 바로 이 대목에 뭔가 까다로운 문제가 있음을 경고한다. 치료사의 몸과 감정상태가 흡사 청진기처럼 환자의 어긋난 부분을 감지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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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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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신체적 감각을 발달시키는 데는 어릴 때 경험한 신체접촉과 그 어머니가(혹은 다른 보호자가) 스스로 품었던 육체적 자의식이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몸은 DNA의 청사진이 충실히 이행된 결과 이상의 무엇이다.
우리의 몸짓, 몸을 움직이는 방식, 고상하거나 천박한 태도, 육체적 자신감이나 거북함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자란 나라와 지역의 문화를 반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머니나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몸짓들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드러낸다. - P89

성인들은 경험을 통해 신체접촉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성적접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껴안고, 다독이고, 쓰다듬는 행동은 받은 사람만큼이나 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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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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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싶어합니다. 신나게 차려입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즐거운 일이어야 합니다. 치명적인 일로 만들지 맙시다. 자신의 몸이 별로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지 맙시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그대신 우리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노력해봅시다.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다양성,
우리의 독특함입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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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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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는 슬픔과 기쁨, 그리고 용서로 가득한 길이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그 길이 필요하다. 우리 이전의 모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다. "슬픔"과 "용서", 이 두 단어는 이제 내게 길을 따라 걷는 삶과 동의어가 되었다. 성지순례는 유대감이다. 청년들은 노인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그 길을 처음 걸었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역시 그 길은 필요하다. - P55

나 자신이 모든 것의 바깥에 있음을 발견했어요. 나와 풍경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나는 걷고 또 걸었어요. 나는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었어요. 마치 하루에 몇 시간씩 명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죠. 처음 4주 동안은 발바닥이 부르트고 물집이 생겨 매우 쓰리고 아팠지만, 이내 상태가 좋아졌어요. 나는 생각했지요. 걷고 또 걸어라. 이게 바로 인생이라고.
길은 모든 것을 의미했어요. 내가 온종일 바라보는 게 바로 그것이었죠. 어느 날, 그것은 눈으로 덮여 있었고, 또 어느 날은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전혀 없을 때도 있었어요. 또다른 날에는 온종일 돌길만 걷기도 했죠. 그러면 발바닥은 엉망이 되고 말아요. 그런 길은 정말 싫었어요. 나는 속으로 ‘이런 빌어먹을 길! 더이상 걸을 수 없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그러고 나면 또 며칠 동안은 넓고 평평하고 돌이 전혀 없는 길이 이어졌어요. 그러면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이렇게 말하곤 해요. "오늘은 길이 참 다정하네요." - P64

개울과 길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둘 다 동일한 작동 원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개울은 힘들이지 않고 지형을 헤치며 나아간다. 그리고 똑바로 일직선을 그리며 흐르지 않는다. 또한 가장 짧은 거리나 빠른 길을 골라 가지도 않는다. 개울은 저항을 최소한으로 받는 길을 따라간다. 물은 평형상태를 추구한다.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흐른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개울은 흐름을 멈출 것이다. 그래서 개울은 호수를 만나면 사라진다. 강 또한 바다를 만나면 흐름을 멈춘다. 물은 평형상태에 도달하면 속도를 잃고 더이상 흐르지 않는다. 평형상태에 도달한 물은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이것은 길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제껏 함께 걸었던 발걸음을 멈추고 저마다 자기 방향으로 흩어져가기 때문이다. - P105

세계적인 종교들은 모두 길을 은유로 사용한다. 힌두교에는 인간 해방에 이르는 네 개의 길이 있다. 불교에는 평온과 깨우침에 이르는 팔정도正道가 있다. 유대교에는 율법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할라카halacha라는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본디 "걸음걸이 또는 걷는 방식"을 뜻한다. 이슬람교의 다섯 개 기둥 가운데 다섯번째 마지막 의무인 핫즈hajj는 성지순례를 말한다. 성경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길에 대한 은유적 암시들은 의미하는 바가 명백하고 이해하기쉽다. 어느 면에서 인생은 모두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문제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날마다 우리가 붙들고 씨름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가 자식들에게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결국 선택이다.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길을 은유한 것들은 우리에게 다수가 생각하는 것들과 단절할 것을 요구한다.
성경(마태오의 복음서 7장 14절)에 따르면, "(・・・)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P125

걷기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언제든 한 발이 땅바닥을 밟고 있는 상태다. 반면에 달리기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사이에 두 발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걷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하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걷는 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힘들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인간은 태어나서 1년쯤 지난 뒤부터 죽을 때까지, 아니면 적어도 죽기 직전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걷기를 시도한다. 달리 말하자면,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평생토록 날마다 그 수익의 대가를 톡톡히 받을 장기 투자를 하는 것이다. 걷는 것은 특별히 운동을 하기로 결심할 것을 적극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존에 생활하고 있는 삶의 연장이자 날마다 이미 하고 있는 활동에 불과한 그런 유일한 운동 형태이다. - P176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은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가는 것이다. 여행을 위한 여행이다. 중요한 것은 이동하는 것, 우리 삶의 다양한 욕구와 문제들을 더욱 가까이 느끼는 것, 이 문명의 안락함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발밑에 밟히는 화강암을 느끼며 지구가 날카롭게 쪼개진 단단한 돌들로 뒤덮여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 P243

길은 그것의 본질적 특성이나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 측면에서 볼 때 옛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길은 어떤 한 사람이 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은 먼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닌 행동이 모두 모여 만들어진다. 그렇게 길은 이야기와 닮았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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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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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스스로 생겨났다. 길은 숨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산책로나 전시 공간으로 설계된 경치 좋은 통로가 아니었다. 길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길이 만들어질 때, 예비보고서나 타당성조사도 없었고 길의 등급을 정하거나 포장하기 위한 사전심사도 없었다.
길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길은 자연적으로 생겨나고 분해되며 자연환경에 순응하고 그것이 통과하는 바로 그 자연계의일부다. 길은 일시적이다. 그것의 용도와 존재는 상호의존적이다. 길은 누군가가 그 길을 다니기 때문에 거기에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 길을 다닌다. 따라서 길이 그대로 남아 있으려면 누군가가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길은 전설과 신화, 민요, 동화와 비슷하다. 그것들은 모두 집단창작을 통해 생겨나기 때문에 어느 특정 작가를 원작자로 지명할 수 없다. 그것들은 몸과 영혼이 일체다. 물질적이면서 동시에 비물질적이다. 길은 단순한 통로 이상을 의미한다.
길은 일직선의 반대다. 길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 반면에, 일직선은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이론적 구성체다. 일직선은 구체적인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물의 표면조차 일직선으로 평평하지 않다. 태양에서 발사되는 광선도 마찬가지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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