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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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평을 너무 많이 한다 싶으면, 아빠는 세네카의 이 문장을 인용하곤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 몸의 여러 기능 중의 한 가지라도 말썽이 나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긴 한다! 우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 구협염 초기에, 내 몸엔 오로지 목밖에 없었다. 아빠는 이런 말도 했다. 사람은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모든 문제는 거기서 생겨나는 거란다! 사람들 눈엔, 틀을 벗어난 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아들아, 넌 그 틀을 깨기 바란다. - P45

두려워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무슨 일이든 당할 수 있는 거야! 그렇다 해도 신중할 필요는 있지. 아빠가 말했었다. 신중함이란 지성을 갖춘 용기란다. - P67

사람이 살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서로 싸우느라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지.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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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말이 될 때 - 우리의 세계를 넓히는 질병의 언어들 맞불
안희제.이다울 지음 / 동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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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편지가 왜 재미있는지, 왜 질병의 이야기가 편지로 나와야 하는지 느꼈다. 우리는 다르고, 생각보다 많이 다르고, ‘질병‘이라는 같은 단어 안에서 묶이는 데에 끊임없이 실패한다. 편지에서는 이 실패를 감추기가 특히 어렵다. 나와 상대방이 자신을, 또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어떻게든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반박하거나 질문하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는노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다. 오랜 시간 주고받는 편지에서 나타나는 그런 실패들은 오해뿐 아니라, 노력도 함께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 P8

왜 몸이 아픈지 이유를 모르는 것은 성가심을 넘어 커다란 공포로 작동했습니다. 저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검열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동안 제가 너무 열심히 살아서 몸이 아픈 것이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제가 너무 나태하기 때문에 몸이 아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욕망을 줄이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감추어둔 욕망을 분출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모든 말은 걱정이 담긴 진심 어린 조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모든 진심 앞에서 종종 열이 받았습니다. 저의 모든 과거는 과오가 되었습니다. - P46

제가 요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2인칭의 글쓰기, 혹은 2인칭의 대화입니다. 물론 대화 안에서 ‘나‘가 꺼내는 말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주어진 언어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1인칭과 3인칭의 영향을 제거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인칭은 초점의 문제라서, 그럼에도 저는 ‘당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화나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나의 경험이나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지식에 충돌하는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당신을 만났을 때, 내가 원래 알고 있던 것들을 잠시 괄호에 넣어두고 우선 당신의 말에 담긴 구체적 맥락을 들어보는 것이 바로 2인칭의 대화입니다. - P59

문득 희제 님의 두 번째 책 《식물의 시간》에 담긴 이야기가 생각나요. 희제 님이 문화인류학 강의의 일환으로 간 현장 연구fieldwork에서 한 ‘아저씨‘를 인터뷰하며 그를 도구로 보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나 인터뷰가 깊어지면서 녹음기를 켜둔 사실을 잊은 채 아저씨와 희제 님이 서로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지요. 그날 희제 님은 "존엄이 서로를 존엄하게 대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을 떠올리며 "우리가 서로 주고받은 건 존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호혜적인 존엄‘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셨지요. 아마도 그러한 경험들이 희제 님으로 하여금 새로운 대화방식을 고민하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 P69

김원영은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장애나 질병과 같은 취약한 몸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단차를 용기 있게 드러내고, 어긋난 이음새는 기꺼이 견디는 역량", "덜컹거림을 감수하며 그 틈새로부터 예상치 못항 곳으로 기꺼이 뻗어가는 역량을 가진 존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픈 몸을 드러내는 것은 실제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지금껏 겪은 상처와 소외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저자 또한 조심스레 밝히듯 다소 낭만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82

주로 생활상 조사를 통해오키나와를 연구한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연구 참여자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범주나 사건들을 되묻거나 의심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실재reality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며, 연구자가 우선해야 할 일은 이야기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자를 비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세계 안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전제해야 한다고도 말하지요. - P119

하지만 아픈 사람들의 현실에서 적극적인 환자가 되는 일은 자신의 몸에 고나해 의사보다 더 정확한 지식을 갖게 될 가능성, 자기 돌봄의 다양한 방법을 알게 되는 일, 그래서 자신의 일상이 의료화되는 것에 대항하여 질병을 자기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함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적극적인 환자가 되는 일이 언제나 질병의 개인화로 수렴되지만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우리에게 당장 가능한 생존 전략이지, 마땅히 우리의 책임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잘 인지한다면 말이에요. - P141

앞서 언급한 퓨워의 책에는 백인 남성의 몸을 기본 값으로 전제하는 영국 의회에서 여성과 흑인의 몸이 의회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공간 침입자‘가 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 - P180

Winston Chuchil은 하원에 여성 의원이 들어왔을 때의 느낌을 남자 화장실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 여성이 ‘쳐들어온 것에 비유했다는데, 이는 여성이 의회에서 소수자라는 사실과 함께 그들이 존재만으로도 무언가를 위협할 수 있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픈 사람이 자신의 몸을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범위까지 드러내고, ‘아픈 사람‘에 대한 상상력을 넓히는 일은 한편으로 우리를 제한하고 납작하게 누르는 사회를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이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생산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은 이질감, 거슬림, 의구심과 같은 ‘노이즈‘에서 생기니까요. 건강과 질병의 안팎에서 헤매는 저를 질문하는 공간 침입자로 만든다는 점에서, 질병이야말로 저에게는 정보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답장을 쓰다 보니 아픈 이야기를 끈질기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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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이여, 안녕 마카롱 에디션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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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입을 연다. "나는요, 인생을 이렇게 봐요. 누가 내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느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아니다.‘예요. 분명 나는 그렇게 대답했을 텐데, 단지 아무도 내게 그걸 묻지 않았지요.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에요. 내 일생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사건들은 내가 의도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나는 내 자신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답니다. ‘너는 네가 부탁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은 네가 아니다. 네 지금의 모습도 네가 만들지 않았다. 그러니 네 자신을 괴롭히지 마라. 그저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너는 그럴 권리가 있잖느냐? 너는 세상을 이 꼴로 만든 죄 많은 자들 중 하나가 아니니까. 우리가 부자도, 힘 있는자도, 권력 있는 자도 아니라면 우리는 죄 지은 자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이 돌아가는 대로 그냥 수용하고, 능력껏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지요." - P82

사람들은 행복한 인생에 대해서 말하지. 그러나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에 더는 관심이 없을 때, 그게 바로 행복한 삶이야.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그리고 많은 불행을 거치고 난 후에 우리가 그런 걱정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수도 있어. 그런데 그런 행복한 상태에서 오래 살 수 있게 누가 그냥 둘 것 같아? 결코 그런 일은 없어.
무관심의 천국에 도달하자마자 우린 또 거기서 끌려나오게되는 거야. 천국에서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지. 우리가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가 될 때, 즉 죽은 존재가 될 때, 세상이 그때 우리를 구해 주지. 구해서 어떻게 하냐고? 아주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어버리지.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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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이여, 안녕 마카롱 에디션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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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들은 항상 내 능력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내가 가는 길은 결코 다른 길로 연결되지 못한다. 항상 막다른 골목이다. 문들은 늘 닫혀 있다. 나는 안다…. - P41

누운 관 뚜껑의 마지막 못이 꽝 소리를 내며 박혀 버렸다. 이제나는 사랑받기 원하지 않으며, 아름답기를 원하지도 않고, 행복이나 성공을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한 가지다. 나를 가만히 놔두는 것. 내가 사는 방의 문을 발로 긁지마, 문을 열고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마, 그저 나를 가만히 놔둬..….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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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R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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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벌이는 먼지와 햇빛과 모래를 상대로 하는 싸움, 행복하고 두려운 삶과 사랑과 불안이 겹치는 어쩔 수 없는 슬픔, 세상에 다가가면서도 멀어지려 하는 애증과 어디서나 오도카니 자신을 지켜가는 시린 고독이 눈에 보였다. 자기 것이 분명한 여자, 타인과 자신의 것을 절대 섞지 않는 여자, 세상과의 구분 속에서 외로움과 달콤한 우월감을 느끼는 여자. R과 정반대지만, 그녀 역시 어딘가 R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해변에서 옥수수를 구워 파는 노파가 그렇듯이. 나는 모든 여자에게서 R의 일부를 발견했다. 호연도 처음부터 R과 같은 부류였다. 삶의 표면 위로 튀어오르는 섬광 같은 기쁨과 심연으로 가라앉는 영원한 그늘 사이에서 모든 여자의 불안과 외로움, 좌절과 질투와 결핍과 우울, 가난과 사치와 슬픔과 공허, 그리고 상실과 해독되지 않고 쌓여만 가는 독은, 같은 것을 나눈 듯 서로 닮아 있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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