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지지자를 책임 있는 임원의 자리에 두면서 장기적으로 역량을 키우는 일, 그렇게 해서 든든한 구조를 빚어내는 일, 이 모든 작업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 P27
오늘날 개인은 "유일한 경험", 곧 쉽게 하기 힘든 "고유한 문화가치"를 약속해주는 집단이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고 설명한다. 놓치면 다시 하기 힘든 일이 벌어질 때 그 일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겨난다. 그리고 독특하고 유일한 경험은 대중 시위와 같은 아주 특별한 사건에서 맛볼 수 있다. 레크비츠는 이런 경험을 하는 대중을 "독특한 단일 집단"이라 불렀다. "독특한 단일 집단은 실천 전략뿐만 아니라, 스토리와 상상력도 함께 공유하며 밀도 높은 감정을 맛본다." 함께 노래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면서, 악당을 비난하고, 영웅을 숭배하며, 좋은 미래를 상상하는 꿈을 서로 나누면서 우리는 가슴 뜨거워지는 감격을 경험한다. 이 꿈이 조금이라도 현실에서 실현될 때, 우리는 그 감격을 절대 잊지 못한다. 성공적인 저항, 확실한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역사책에 기록되거나 최소한 일간지 전면을 채운 저항에 동참했다는 기억은 이 저항을 "유일무이한 사건" 단 한 번뿐인 특별한 사건으로 만든다. - P47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개인이 집단에 가지는 소속감이라고 대다수 연구는 확인해준다. 흥미롭게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행동할 거라는 확신이다. 특히 주변의 가족, 친구, 이웃, 동료가 함께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간은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 안에서 편안하면서도 고양된 기분을 맛본다. 홀로 저항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결실을 거두기 힘들 뿐 아니라, 고립되어 쉽사리 공격받을 수도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 뭔가 이뤄낼 때의 기분, 자신이 속한 집단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확인, 그리고 정당한 방법으로 올바른 일을 한다는 확신을 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은 자신이 아는 누군가가 함께할 때 흔쾌히 행동에 나선다. - P59
여기 제시된 성공적인 저항 사례들이 처음에는 절망적이고 극도로 암담했던 것은 그냥 우연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사회를 지탱해주는 기둥을 흔들려 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돌덩이에 부딪혀야만 한다. 기존 제도 안에서 작은 성과를 거두는 데 만족하지 않고, 기존 제도를 싹 뒤엎는 거대한 변혁을 이루려는 사람은 처음에는 (겉보기로는) 실패해야만 한다. 제한적인 힘으로 되도록 많은 기둥을 가능한 한 꾸준하게 흔들려고 하는 사람은 저항운동의 초기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드문 성공에 조바심이 나고 속이 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란 두꺼운 널빤지에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말에 빗대 말하자면 저항운동이 뚫어야 하는 두꺼운 널빤지는기둥들이다. 기둥을 흔드는 지난한 작업에서 겪는 패배, 정치적이든 사법적이든 문화적이든 실패와 좌절은 저항이 애초부터 희망이 없다는 경고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패배는 일종의 시험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결과로 우리는 어떤 기둥(그리고 사안에 따라 어떤 운동가)이 어느 정도 불안정한지, 어디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지, 상황이 달라지면 누가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보일지,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변하지 않을지 등의 소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 P91
관심의 생태를 의식해야만 하는 저항은, 제아무리 도발적이고 대담하다 할지라도, 문제가 되는 사안을 놓고 토론하기 위해 되도록 정밀하게 사회체계의 언어와 매체에 적응해야만 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저항은 사회체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문제가 되는 사안을 해석할 스토리(누가 무엇을 주장하는가? 누가 그 적수인가?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가?)를 제공하지 못하는 저항은 사회 구성원의 공감을 얻어낼 수 없고, 집단의 마음속에 희망을 심어줄 수 없으며, 결국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저항운동이 관심의 생태와 관련해 풀어야 하는 중요한 물음은 이렇다. 저항은 그 목적과 대상을 어떤 이야기에 담아 들려주어야 할까?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악당은 누구인가? - P142
오로지 자본이라는 가치에만 매달리는 통에 인간이 수동적이며 일차원적으로 전락한다고 마르쿠제는 냉철하게 진단한다. 그런 인간은 오로지 "부족해"와 "더 많이"만 되뇐다. 인간은 부족함을 걱정하며 과잉을 추구한다. 인간은 부자를 질투하고 빈자를 경멸한다. 이런 물질주의의 기준을 넘어선 다른 세계, 훨씬 더 나은 세상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약속해주는 내일을 떠올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마르쿠제의 글을 읽으며 나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설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정확한 진단임을 깨달았다. 변화하려는 힘과 이 변화를 막으려는 힘의 충돌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우선, 평화 저항은 세상을 빠르게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지금 당장은 부족할 게없는 괜찮은 상황이기에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려 하지않는다. 기후 위기가 코앞에 닥쳐왔음에도 기름을 펑펑 쓰면서풍요를 만끽하고 있는 탓에 우리는 투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늘날 민주사회의 대다수 국민이 갈등으로 얼룩진 정치를멀리하는 이유는 이미 풍요와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풍요와 자유는 숱한 갈등을 피하지 않고 해결하려 노력한 선대의 정치 투쟁 덕분임을 우리는 잊고 있다. 이렇게 비유할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파업과 시위와 점거 같은투쟁으로 마련해준 미지근한 욕조에 누워 있다. 아직은 나가서싸울 만큼 물이 차갑지는 않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이제 곧 이런 호사가 끝날 거라는 사실을 잘 안다.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물은 차가워질 뿐만 아니라, 아예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점을. 자신에게 닥칠 위기에도 나서지 않고 수수방관만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우리를 심각하게 좌절시킨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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