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앞에서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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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내 발로 그 관계에서 걸어나왔을 때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외로움에 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로 내가 그런 관계 안에서 피해자였다고 주장하는 것도, 상대를 탓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어떤 관계였든 나의 선택이었고 관계를 깰 자신이 없어서 눈감고 있던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였으니까. 다만 이 글을 쓰면서 그런 나의 마음을 돌아볼 뿐이다. 그토록 취약하고 수동적이었던 모습 뒤에 숨겨진 내 두려움을.
두려움. 더 정확히 말해 버려지리라는 두려움. 당신이 나를 더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내 가슴에 차오르던 감정. 그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두려움은 커져갔다. 버림받으리라는 두려움은 오랜 시간 동안 내 의식의 뒤에만 있었다. - P56

나는 내가 행복하기보다는 덜 상처받기를 바랐고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그 기쁨이 사라질 순간의 고통을 피할 궁리를 했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기대치를 바닥까지 낮추고자 했고 언제나 덜 다치고 빠져나갈 수 있는 퇴로를 확보하려 했다. 사람들 앞에서 쉽게 경직됐고 그때그때 가면을 썼다. 진짜 내모습은 철저히 가려야만 그나마 덜 거절당할 것 같아서였다. 타인이 싫어할 만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데 에너지를 썼다. 그런 노력을 해도 떠날 사람은 떠난다는 걸 알면서도.
관계의 문제를 모두 나의 문제로 치환하여 해석했던 건 자기 파괴적인 습관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합리적이지 않은 생각이었다. 관계는 무의식의 얽힘이다. 상대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그저 서로 잘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 P61

당신이 나를 떠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더라도 나는 받아들일 것이다. 당신이 내게 준 마음과 우리가 나눈 시간에 대한 감사를 나는 버리지 않을 거니까. 당신이 내게 준 반짝이는 순간은 내게 영원히 남아 있을 테니까. 그후에도 나는 여기에 남아 여전히 나인 채로, 나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 내가 되어 살아갈 것을 안다. - P65

나는 어디까지가 내 영역인지도 모르면서 경계를 존중받지못한 후에 씁쓸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상대가 그 경계를 넘도록 ‘허용‘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경계 설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울 수 없어.‘ ‘아니, 그건 네 문제야.‘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 ‘약속을 어기지 마.‘ 그 말 한마디를 할 자신이 없어서 타인의 욕구에 휩쓸리듯 내 경계를 흐린 것은 나였다. ‘누군가의 괴로움을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는 한 나는 뻔뻔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왜곡된 자기 인식 또한 문제였다. ‘착한‘ 사람, 희생하는 사람이라도 되지 않는다면 나는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근본적인 자기부정이 그 밑바닥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나 스스로 상대가 경계를 넘도록 허용해놓고서 나는 절망했다. 왜 미안해하지 않아? 어떻게 이렇게 뻔뻔해? 어떻게 이렇게 나를 존중하지 않을 수 있어? 그 절망감은 내 마음을 부식시켰지만 나는 그 감정마저도 억압하여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경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모든 관계가 결국에는 같은 방식으로 어그러질까봐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가 힘들어졌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끼던 문제였지만 가까웠던 사람과의 관계가 그런 식으로 깨진 후에야 나는 내 패턴을 대면하게 됐다. 경계를 흐리고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나, 경계를 침해당하고 분노하는 나, 그 분노를 다시금 마음 깊숙이 억압하는 나. - P121

언제쯤 삶은 결코 통제할 수 없으며 삶의 사건들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제쯤 모든 규칙을 깨고 펼쳐지는 삶의 불규칙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연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 P125

「씬짜오, 씬짜오」에서 ‘나‘가 투이에게 "아무것도 몰랐던거, 미안해"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그 대사 후에 "그 말이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라고 썼다. 우리가 사과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아니다. 그러나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않는다면, 최소한의 회복조차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P210

우리는 죄악이 우리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똑바로 바라봐야만 하고 또 알려야만 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우리가—또는 다른 사람들이 다시 희생자가 되는 일을 막을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후 기억은 침묵에 의해 주입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이야기를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이야기 속에 담아 말하는 것, 자신이 겪은 일들을 말하고 다른 이들이 겪은 일들을 듣는 것이다. 이것은 제한된 과거 속에 우리를 구속하는 대신, 자유롭게 상상하는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드러날 수 있게 하는 바탕을 만든다.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이야기 속에 담아 말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의 경험을 듣는 것. 그런 일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감지한다.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낙인을 찍고 경멸하고 조롱하는 정서가 어느 때보다도 만연한 요즘인 것 같다. 프리모 레비는 어떤 사회라도 대화를 포기하고 파시즘으로 흐를 때 언제든 수용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더 대화해야 한다.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우리가 겪어온 시간에 대해서 말하고 들을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과거를 바로 세울 때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무책임한 비관주의로 기우는 것을 경계하면서.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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