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나라는 통증 - 비로소 나아가는 읽기, 쓰기
하재영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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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세계에서도 나는 종종 언어의 타자였기에, 두 언어의 경계에서 말을 찾아 헤매는 일은 낯선 경험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기억에 목소리를 부여하기까지, 나는 얼마나 오래 말을 잃었던가? 욕망의 장소를 마련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지배자의 언어를 흉내냈으며, 여성의 경험을 주변화하는 관습을 의심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세상이 정해놓은 문법을 내면화했던가? 세상은 누구의 말을 듣는가? 세상이 들어주는 말을 하려고 나는 얼마나 오래 내가 아닌 채로 살았던가? - P9

스스로를 이해하고 벗어난다는 것은 힘을 지니는 일이었다. 힘은 단순한 능력이나 역량이 아니며,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소유한 자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여성이, 특히 외상기억을 가진 여성이 힘을 얻으려면 언제까지나 머무르고 싶은 안온한 세계를 스스로 부수어야 한다. 타자가 파괴한 자신을 복구하고, 식민화된 몸과 정신으로부터 탈주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헐벗은 땅에 헐벗은 벽을 세워 올리는" 일인지 모른다. - P21

"아이들이 나를 부르기 전, 이른 아침에 글을 썼다"라고 회고한 토니 모리슨처럼, 돌봄과 가사노동이 여성의 몫인 사회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의 투쟁만큼이나 치열한 싸움이었다. 그들에게 욕망의 장소는 찰나의 순간에, 하루의 끝에, 모두가 잠든 밤에,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잠시‘ 나타나는 일시적 틈새였다. - P52

그러므로 "여자는 욕망"이라는 뒤라스의 전제, "여자가 욕망의 장소에서 글을 쓰지 않는다면 표절을 하는" 것이라는 그의 단언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의 장소란, 여자가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혹은 발명)함으로써 세계의 질서에 저항하는 자리라고, 그 자리를 떠나서 쓰는 글은 세계가 이미 정해놓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고. 욕망이 결여된 문장은 타인의 질서에 편입된 문장이다. 뒤라스가 말한 표절은 기존 언어에 대한 답습이자 자기 언어의 부재다. - P58

적당한 취기는 효과적인 사회적 가면이다. 나는 상대의 말에 적절히 반응하고, 대화가 끊기지 않게 질문을 이어가며,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게 미소 짓는다. 술잔이 비어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나를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가면을 유지하는 일이 더 중요하기에 알코올이 필요하다. 호감 가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쓸수록 알코올 사용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에 털어넣고서야 자리를 떠난다. 그러면서 상대가 나의 알코올 사용장애를 눈치채지 않기를 바란다.
……
술을 마시면서도 어떤 일들을 이루어냈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지지만 내가 상처에 취약하고 두려움에 지배당한다는 사실, 내면의 큰 면적을 열등감과 외로움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맡겨진 일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지만 그 책임감이 버거울 때 술을 찾는다는 사실도 변함없다. 정신과 의사는 나의 완벽주의 성향, 높은 긴장도, 잦은 불안감이 알코올사용장애에 영형을 미친다고 말한 적 있다. 그렇다면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을 견디기 위함일까? - P88

산발적으로 자리한 점과 점을 연결해 선으로 가득찬 지도를 만드는 일은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주제나 발화자에 따라 나뉘지 않는다. 우리의 목록은 분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겹치는 지점을 찾아내고 억압의 뿌리를 드러내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목록은 함구하거나 묵살당한 모든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며,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만든 세상을 향한 저항이다. 우리에게는더 많은 목록이 필요하다. - P127

전의령의 말처럼 지배와 애정, 통제와 사랑, 권력과 돌봄은 명확히 나뉘는 것이 아니다. 얽히고설켜 구분할 수 없는 모순이다. 소유와 지배의 욕망을 절제하고, 존엄한 생명체로서 대우하기. 이 명제는 중요하지만 그 사이에서 언제나 균형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결국 그 모순을 끌어안은 채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되묻는 경험만이 관계를 사유하게 만든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닿아 있으며,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뿐 아니라 비대칭적인 힘의 모든 관계에서 질문되어야 한다. - P155

해러웨이는 우리의 본바탕이 반려종임을 선언하며 "소중한(중요한) 타자성significant otherness을 확산시키는 데 보탬이 될 윤리와 정치를 배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질문한다. 그에게 "소중한 타자성"이란 조화롭지 않은 행위 주체와 어울려, (불가능에 가깝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동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삶의 방식을 ‘적당히 꿰맞추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실현하려면, 다시 말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창발된 실천‘과 ‘존재의 호명‘이 필요하다. ‘창발된 실천‘이란 타자와의 얽힘이 예기치 않게 만들어내는 윤리적 상황에 반응하며, 자기 자신을 갱신하는 반복적 행위이다. ‘존재의 호명‘은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를 관계 안으로 불러들임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오늘날의 동물들은 이데올로기가 충만한 서사를 통해 우리를 호명해 들임으로써 그들 및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체제를 설명한다. 우리는 그들을 자연과 문화라는 우리의 구성물 속으로 호명해 들인다. (......) 이야기는 이데올로기보다 허용 폭이 넓다. 우리의 희망은 여기에 있다." - P158

서사적 완결은 자아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스스로의이중성을 대면할 때 가능해진다.
이 가능성의 전제는 정직함이다. 그러나 정직함이란 삶에서도, 글에서도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가치인가?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은 욕망, 나를 미화하고 싶은 욕망,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상징이나 은유로 대체하고 싶은 욕망, 정직함이란 이 모든 욕망과 내전을 벌인 뒤에 도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망설이다 끝내 쓰지 못한 문장, 썼다가 지운 문장,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한 문장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모든 페이지에서 그 유보의 흔적을 지목할 수 있다. 나에게 회고록은 완성할 수 없는 이야기이자 도달할 수 없는 문장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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