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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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설의 화자 혜숙을 좋아한다. 이 사람은 너무 많이 슬퍼본 적이 있기에 많이 슬프지 않고 조금 슬픈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사람이고, 그리하여 어느 날엔 누군가의 작은 인사와 함께 자두 두 알이나 쿠키 하나를 받고 웃음을 나누는, 소소하게 기쁜 날들을 보내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 소설을 쓸 때 나는 그런 사람의 작은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보다 큰 그리움에 대해 생각했다. 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꽉 찬 사랑,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면 ‘너무 작은데‘라고 할 것만 같은, 그런 사랑과 여전한 그리움말이다. 누군가 조금 슬프다고 말할 때는 분명 어떤 류의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작가의 말 - P9

지금 난 오인환씨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을 최대한 오래 기억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미 끝난 사이이기 때문에 내가 실제로 바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고 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내 시간은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아니고 단지 현실이라고 반복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난 오인환씨 앞에서 문득 내 미래에 대한 다짐과 약속을 했던,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신고를 할거라고 소리치던 정원을 바라본다. 지금 미래에게 생겨난 저 마음이, 언젠가는 내게도 다시 찾아올 날이 있을까 생각하면 이미 겪은 일도 지금 겪고 있는 일도 아닌데 조금 슬프다.

이주란, 겨울정원 - P43

스티글리츠는 사진만의 독창적인 예술성을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바친 미국의 사진작가야. 그때까지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어. 그저 어떤 장면이나 사람을 그림처럼 예쁘게 찍으면 된다고 여겼지. 스티글리츠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 사진작가가 어떻게 찍느냐에 따 - P104

라 사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은 거야. 하지만사람들의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그는 점점 나이가 들어갔지. 그리고 말년의 스티글리츠는 그날그날의 구름을 찍기 시작했어. 예쁘지도 않고, 제멋대로인 하늘 사진들이었지. 사람들은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가 왜 그런 무의미한 사진을 찍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그는 계속 구름을 찍어.
매일매일의 구름 앞에서 우리 인간은 말이야, 무기력한 존재야. 구름의 모양은 제멋대로 펼쳐지지. 우리는 구름의 모양을 만들거나 옮길 수 없어. 언뜻 보면 스티글리츠의 구름 사진은 그런 인간의 삶을 은유하는 것 같아. 매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불규칙하고 우연적인 인생의 풍경을 찍은 것처럼 말이지. 그런데 그거 아니? 계속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구름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스티글리츠가 매일매일 찍은 건 구름만 있는 건 아닌 풍경인 거야. 모든 사람이 구름만 보고 있을 때, 스티글리츠는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는 구름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찍었어. 그 사진들 이후로 사진은 하나의 예술로 자리를 잡았지.
모두가 끔찍하다고 말해도 끔찍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다른 걸 보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 하는 일이야. 이 현실에는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다른 것에 집중할 때, 너는 네 인생을 바꿀 수 있어. 그 다른 것이 바로 꿈이야.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어. 알겠니?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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