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라는 단어 자체의 뉘앙스와 제가 하는 행동 사이에 괴리감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후생노동성 사회지원국 지역복지과에서는 "자원봉사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는 ‘자발적 의지에 기반해 타인 또는 사회에 공헌하는 행위‘를 가리켜 자원봉사 활동이라고 일컬으며, 활동의 성격으로 자주성(주체성)‘, ‘사회성(연대성)‘, ‘무보상성(무급성)‘ 등을 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설명을 읽어보면 ‘타인 또는 사회(공)‘와 ‘자신(사)‘은 과연 명확하게 구분될까라는 의문이 샘솟습니다. 도시에 살던 무렵에는 임대한 집과 그 부지 안쪽이 ‘사‘, 바깥쪽이 ‘공‘이라는 느낌이 또렷해서 공사의 경계가 명확했던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학교가 휴교했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도 왠지 모를 비난의 시선을 느끼고 집에 있어도 "아이 목소리가 바깥까지 들립니다"라는 쪽지를 받는다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변화 탓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을 거치며 공사 구분에 대한 잠재의식이 강화된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공적인 장소에 사적인 것이 나오는 경우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 공과 사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살다 보니 그 경계에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집만 해도 툇마루와 현관 앞, 봉당까지는 다른 사람이 덜컥덜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일상이고, 큰 방을 개방하면 모임을 열거나 관혼상제를 치르는 공적인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사적과 광장, 신사 같은 공적인 장소를 청소하며 관리를 하는 것도 대개는 동네 사람들이니 공과 사의 범위가 그때그때 바뀌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종 이용자로서만 어떤 공간과 관계를 맺는 경우가 드문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자발적 의지에 기반해 타인 또는 사회에 공헌하는 행위‘ 인가 하면, 그와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이러한 시골 생활이 반영되었는지, 어느새 루차 리브로도 공과 사를 넘나드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개관일이 한 달에 열흘 정도이니 시골 사람이 자신의 장소를 공유하는 감각과 도시 사람의 공과 사에 대한 감각의 중간쯤이겠지요. 평소에는 사적인 공간으로 쓰는 집의 3분의 2를 개방해 찾아오는 사람들과 거실과 서가를 공유합니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단순한 이용자라기보다 ‘공‘을 함께 만들어주는 이들로 느껴집니다. 어떤 이는 저희 도서관의 간판과 책장을 만들어와 루차 리브로의 공간을 꾸미는것을 도와주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빌려간 책에 대한 감상을 다양한 시선에서 이야기해 장서에 대한 저희의 이해가 깊어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 시리즈가 루차 리브로에 1권밖에 없어서 뒤편은 직접 사서 읽었어요. 재밌었으니까 기증할게요" 하며 속편을 가져와준 이도 있었습니다. 공과 사가 넘나드는 장소를 최종 이용자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손닿는 곳에 있는 ‘공‘을 함께 만들어나갑니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이 ‘공‘에 대한 무력감을 무너트리고 사회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첫걸음이 되기를, 산기슭 도서관에서 꿈꾸고 있습니다. - P46

문화인류학자 쓰지 신이치의 『로이즈 뷰티풀』을 읽었을 때의 일입니다. ‘슬로‘, 즉 느림을 키워드 삼아 음식과 거주지, 노동과 여가, 과학기술, 신체,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을 저자의 매력적인 시선에 가슴 두근거리며 읽어나가다가, 어느 한 구절에 강하게 마음이 끌려 몇 번이나 그 부분을 따라 쓰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습니다. 그 구절은 프랑스 라르자크 지방의 몽트레동이라는 마을에 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한 블루치즈 ‘로크포르‘의 생산자이자 트랙터로 건설 중인 맥도널드 건물을 파괴해 체포당한 반핵·환경운동가 조제 보베에 관한 이야기 중 그가 사는 마을에서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시장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 이러한 사태에 대해 취재한 도넬라 메도즈와 할 해밀턴은 보베가 사는 마을을 방문해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사항을 보고했다. 불과 예닐곱 가구가 사는 이 작은 마을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장이 열리는데, 인근 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농산물이나 공예품을 가지고 모여든다. 사람들은 각자가 가져온 음식과 와인으로 함께 요리하고 먹고 마시면서 노래를 부른다. 연극 공연도 펼쳐진다. 여기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다. 하나의 공동체가 있을 뿐이다.
쓰지 신이치, <슬로 이즈 뷰티풀>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마침 플리마켓 같은 마을 장터 운영에 가끔 참여하던 중이어서, ‘이런 시장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는걸‘ 하고 소박하게 동경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했더니 "뭐? 그럼 장터에서 돈으로 물건값을 치르는 게 아니라 물물교환을 허용하겠다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어쩐지 현실적인 방법은 아닌 듯했고, 또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결국 그 시점에서는 저희가 놓인 환경과 문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그런 시장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알지 못한 채로 어느새 장터 운영에서도 멀어졌습니다.
몇 년 뒤에 문득 생각이 나서 이 책을 집어 들고 이 구절을 다시 읽었을 때, 장터라는 형태는 아니지만 루차 리브로가 조제 보베의 마을 시장처럼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는 일상 속 생각을 ‘오므라이스 라디오‘라는 인터넷 라디오로 방송하거나 책으로 쓰는 것 외에도 저희가 읽어온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생활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수확물이 너무 많아서 나눠주고 싶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며, 저희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나가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라디오 청취자들이나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저희에게 무언가를 되돌려줍니다. 시를 지어서 보내주고, 수확한 야채를 가져다주고, 루차 리브로의 간판을 만들어주고, 시간을 함께 보내주고, 길에서 주운 소형 라디오를 가져와주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청소를 도와주고, 자신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주는 등 실로 다채로운 방식의 답례를 날마다 받고 있는 기분입니다. 이는 조제 보베의 마을 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 없이 각자가 수확하고 만들고 생각한 것이 순환되는 모습과 닮은 데가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런 순환이 생겨난 걸까요. 이와 관련 있어 보이는 기억이 하나 떠오릅니다. 처음으로 취직해 가나자와에 살면서 대학도서관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 도서관 카운터에 앉아 있는데, 학생 하나가 "볼펜 좀 빌려주세요" 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때 카운터의 연필꽂이에는 매직펜과 샤프 밖에없어서 제 필통에서 볼펜을 꺼내 건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은 "개인 물건을 빌리는 건 좀......" 하며 뒤로 물러났고, 볼펜을 받아 들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것이어도 그 볼펜이 카운터의 연필꽂이에 꽂혀 있었다면 분명 학생은 기꺼이 썼을 것입니다.
이 일은 왠지 모르게 제 마음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서비스라면 기꺼이 받을 수 있지만 일시적인 나눔에는 뒷걸음질을 치는 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과도 무관하지 않겠지요. ‘폐를 끼치지 말자‘의 정도가 심해져서 서비스나 계약을 통하지 않으면 타자와 관계를 맺지 못할 정도의 강박관념이 잠재의식에 마다 받고 있는 기분입니다. 이는 조제 보베의 마을 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 없이 각자가 수확하고 만들고 생각한 것이 순환되는 모습과 닮은 데가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런 순환이 생겨난 걸까요. 이와 관련 있어 보이는 기억이 하나 떠오릅니다. 처음으로 취직해 가나자와에 살면서 대학도서관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 도서관 카운터에 앉아 있는데, 학생 하나가 "볼펜 좀 빌려주세요" 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때 카운터의 연필꽂이에는 매직펜과 샤프 밖에없어서 제 필통에서 볼펜을 꺼내 건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은 "개인 물건을 빌리는 건 좀......" 하며 뒤로 물러났고, 볼펜을 받아 들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것이어도 그 볼펜이 카운터의 연필꽂이에 꽂혀 있었다면 분명 학생은 기꺼이 썼을 것입니다.
이 일은 왠지 모르게 제 마음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서비스라면 기꺼이 받을 수 있지만 일시적인 나눔에는 뒷걸음질을 치는 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과도 무관하지 않겠지요. ‘폐를 끼치지 말자‘의 정도가 심해져서 서비스나 계약을 통하지 않으면 타자와 관계를 맺지 못할 정도의 강박관념이 잠재의식에 가지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나 원예 가위를 보내주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니 조제 보베의 마을 시장 같은 순환이 루차 리브로에 생겨난 계기는 저희의 ‘할 수 없음‘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그 ‘할 수 없음‘을 모두에게 공개한 것이 오히려 윤활유가 되어주는 듯합니다. 『로이즈 뷰티풀』의 저자 쓰지 신이치가 슬로, 즉 느림을 ‘속도 부족‘으로 치부해버리지 않고 거기서 가능성을 발견했듯이, ‘할 수 없음‘ 에서 시작되는 순환이 사회 여기저기에서 생겨나는 모습을그려봅니다. - P66

그날 밤에는 도쿄 나가노부의 ‘옆 동네 커피’에서 남편과 함께 『1층 혁명: 사설 마을회관 ‘카페 런드리‘와 마을 조성』의 저자 다나카 모토코 씨와 대담을 했습니다. 다나카 모토코 씨는 길에서 커피를 무료로 나눠주는 ‘취미‘에서 착안해 ‘마이 퍼블릭(사설 공공시설)‘, 즉 필요한 공공시설은 직접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낸 분으로 업무용 세탁기와 건조기를 두고 시작한 ‘카페 런드리‘도 이 아이디어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대담 도중 다나카 씨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 가게의 직원 모두가 어떤 손님에게든 늘 같은 어조, 같은 분위기로 ‘어서오세요‘라고 인사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저는 바로 이것이 낮에 나눈 규칙 이야기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나카씨는 다른 가게에서는 누구에게나 항상 같은 어조로 "어서오세요" 하고 말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카페 런드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변화를 허용한다는 이야기를 이어서 했습니다. 이 내용은 그의 저서에도 있습니다.

직원들이 각자의 개성을 전면에 드러내며 일하기를 바라기에, 결국 나는 손님을 포기하게 만들기로 했다. 돈을 냈으니 이곳에서는 신처럼 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의 모든 서비스가 완벽할 것이며 언제나 판으로 찍어낸 것처럼 일률적으로 빈틈없는 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을. …………나는 직원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우리 가게는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니까 흔들리는 게 당연해. 컨디션이 안좋을 때도 당연히 있고, 손님이 지난번에 왔을 때와는 뭔가 다르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는게 원래는 당연한 일이지.
다나카 모토코, <1층 혁명: 사설 마을회관 ‘카페 런드리‘와 마을 조성>

이는 공간의 규칙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피하고 싶은 사태를 방지하고, 원래 생각했던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완벽한 규칙을 준비해 둘 필요는 없습니다. 규칙을 정하는 것도 활용하는 것도 그 규칙이 적용되는 공간에 모이는 것도 사람이므로, 서로 흔들리거나 변화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런 흔들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에서야말로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규칙에 대한 저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 자신감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걸 하고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다나카 씨의 책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여기는 다른 곳과 다릅니다. 모쪼록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세요.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당신답게 있으세요. 나는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이 문장을 그대로 써서 가게에 걸어두는 멋없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멋이 없다는 것만으로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은 닫히고 만다.
- 같은 책

그러므로 역시 루차 리브로 관내에는 이용 규칙을 붙여두지 않을 것이고, "이런 식으로 규칙을 정하는게 좋아요" 하고 조언하기보다 루차 리브로라는 공간이 운영되는 방식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 최고라는,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 P93

문장을 쓸 때 떠올리는 광경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회의실의 긴 책상에 둘러앉아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말로 화이트보드를 채워나가는 광경입니다. 이는 제가 2018년에 참여한 인지행동치료의 접근법을 따른 그룹 활동인 자존감 회복 프로그램SEP의 한 장면입니다. 이 활동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참가자 중 누군가의 일상 속 고민에 대해 그 사람의 마음이 편해지는 부적 같은 말을 모두 함께 제안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온 몇가지 후보 중에서 당사자가 하나를 골라 수차례 소리 내어 말하며 몸에 스며들게 하는 것까지가 한 세트입니다.
예컨대 ‘주위 사람들은 모두 완벽한데 나만 엉망인 것 같아서 괴롭다‘는 고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화이트보드를 채웠습니다. "딱히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실은 모두가 완벽하지 않아", "당신은 엉망이 아니야" 등등. 내일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을 이렇게 다채롭게 여러각도에서 제안받는 경험은 흔치 않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저도 이 활동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인생이 막연히 불안하다‘는 고민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말을 건네받았습니다. "지금을 소중히 여기면 돼", "기댈 수있는 사람을 찾자", "긍정적인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등등 저 혼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잔뜩 만났고, 그것은 지금도 마음 든든한 경험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또 참가자들의 배경이 저와 비슷해서 다른 사람의 고민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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