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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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우리는 산다는 것과 경제가 격리되어 있는 듯한, 거대한 허구의 세계 시스템에 우리를 맞추며 살아가는 것 같다. ‘현대스러움‘과 근원적인 경제의 논리가 인류사적으로 교차하고 있다.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미래 인류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이들, 공유• 연결• 특이점singularity • 기본 소득basic in come에 관심을 두는 모든 이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들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호수성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과 생활 보장 구조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 P31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다들 자신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어", "타인의 인생은 타인의 것이야"라고 말하며 남이 살아가는 방식에 그다지 참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마"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우연히 만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이를 기꺼이 집에 머물게 한다. 믿지 말라고 내게 충고했던, 바로 그 인물과 서로 식사를 한턱 내고, 서로 돈을 빌려주고, 때로 다른 입장에서는 "그는 신용할수 있는 사람이야"라고도, "믿었는데 배신당했어"라고도 한다. 겉으로 드러내고 하는 사업과 내놓고 할 수 없는 사업, 표면상의 얼굴과 뒷모습, 페르소나와 민낯이라는 이분법적인 인간관에 따라 ‘신용‘을 설명하는 것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타자를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은 서로 별개의 일이다.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서도, 또다른 얼굴에는 전적으로 신뢰가 결여되어 있어도, 특정한 얼굴은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다. ‘우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신뢰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무관심이 아니라 다양한 사정을 감안하여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기로 결심한 배려이기도 하다. - P59

카라마를 비롯한 조합원들과 생활하다 보면 조합 활동에 대한 실질적인 공헌도, 특정한 어려움, 궁지에 빠지게 된 ‘원인‘을 거의 불문하고, 마침 홍콩에 있는 그 타자가 처한 상황(결과)에만 응답하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원해주는 태도가 폭넓게 관찰된다. 이는 죽음이라는 특별한 사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또한 조합 활동과 타자에 대한 세세한 규칙이나 규범을 가능한 한 만들지 않는다/애매한 채로 둔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얘기한 사례가 보여주듯이 이들의 집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데, 최종적으로는 ‘여러 사정이 있으니 세세하게 따지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한다-무임승차자 문제도, 기부금을 상황에 따라 달리 받자는 제안도 다시 문제삼지 않았다.
…… 이들은 조언을 요청받지 않는 이상 타자의 비즈니스와 행위에 끼어들지 않기에 그 사람의 ‘사정‘을 자신이 속속들이 알 수 없음을 이해하고 있다.
…… 두 번째 배경으로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인간관・주체관이 있다. 어디까지가 ‘자기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불운‘의 영역인지를 묻는 것은 원래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들은 애초에 개별적인 실천· 행위의 귀결을 타인에 대한 인물 평가 -‘노력이 부족하다‘, ‘생각이 안이하다‘, ‘별로 착하지 않다‘ 등 -와 연결 지어 말하는 것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다.
…… 이는 ‘본성‘,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사업‘을 몰라서 그런다기보다 누구나 처한 상황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인다. …… 즉, ‘페르소나‘와 그 뒷면에는 ‘민낯‘이 있는데 ‘민낯‘을 모르니까 신뢰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일관된 불변의 자기 같은 건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세 번째 배경은 난민으로 거주하지 않는 조합원들은 유동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오가기 때문에 구성원 사이의 엄밀한 호수성을 고려/계산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 말하자면 이들은 ’서로 돕는 인간을 구별, 평가하는 기준을 명확화하기‘와 ’상호 부조의 기준 규칙을 명확화하기‘ 어느 쪽도 하지 않는다. - P88

이들의 일상적인 상호 부조의 대부분은 ‘겸사겸사‘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2017년 1월경 카라마와 동료들은 불법 체류가 적발돼 3개월간 교도소에 수용되었다가 나온 마바야를 돌봐줬다. 카라마는 마바야가 무일푼이 되었다는 걸 알아서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에 우연히 마주치면 밥을 사줬다. 하지만 딱히 더 신경을 써서 밥 먹자고 부르지는 않았고, 마주치지 않으면 한턱 내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날 장사가 잘된 누군가가 우연히 그와 마주치곤 했기에 -그들이 식사를 하러 가는 레스토랑은 항상 똑같다- 마바야는 늘 식사를 했다. 상대가 안내해줬으면 하는 곳이 목적지로 가는 길 도중에 있다면 데려가고, 침대가 비어 있으면 머물게 해준다. 아는 일이라면 친절히 가르쳐주고, 겸사겸사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흔쾌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상담은 선선히 거절하고, 자신의 상황에 따라 약속을 연락도 없이 어기며, 부끄러운 - P94

기색도 없이 "어이, 재패니즈!" 하고 웃으면서 찾아온다.
앞서 설명한 국경을 초월하는 ‘연계 플레이‘도 이 ‘겸사겸사‘의 논리로 작동한다. 마침 우연히 중국에서 홍콩으로 온 사람이 연락 담당을 맡고 기부금을 모은다. 상품구매를 마치고 모국으로 귀국하는 사람은 홍콩과 중국에서 모인 기부금과 텐트를 나른다. 이 ‘겸사겸사‘의 연계는 시신 운구에 한정된 일이 아니다. 홍콩에 난민으로 거주하는 탄자니아인은 모국에 있는 가족에게 줄 물건을 마침 귀국하는 교역인에게 맡기고 그 교역인은 ‘겸사겸사‘ 전달한다. 자금이 없어 홍콩에 건너오지 못하는 사람은 교역인에게 캐리어의 남는 공간만큼 자신의 상품도 ‘겸사겸사‘ 구매해 달라고 부탁한다. 누구나 ‘무리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에 이 상호 부조는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과도한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고 말한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에 솔깃해 앞선 이가 준 종잇조각 하나를 ‘길 안내‘ 삼아 중국과 홍콩에서 장사를 시작한 그들에게 ‘궁지에 빠진 경험‘을 물으면 다들 수없이 겪어본 인생의 위기를 들려준다. 그 위기들을 극복할수 있었던 것은 집회에서 조합원들이 말했듯이 우연히 만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분명 누군가가 도와준다‘라는 신념은 ‘동포에게 친절히 대해야 한다‘는 기대가 아니라, 각기 다른 인간들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가능성에서 주고받기 give and take의 기회를 발견해내는 각자의 ‘지혜‘에서 비롯한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카라마의 휴대폰에는 정부 고관이나 대기업 사장, 사기꾼, 도둑, 전과자까지 온갖 사람이 등록되어 있다. 이들과의 네트워크는 ‘겸사겸사‘에 의해 구축되어왔다. 상대를 불문하고 돕는 까닭은 자신이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카라마가 내게 물었다. "사야카, 사기를 당했을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정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내가 "음... 경찰이나 변호사?" 하고 대답하자 "아니지. 그야 사기꾼의 친구인 게 당연하잖아. 누가 나중에 도움이 될지 모르는 거야. 왜냐하면 미래는 아무도 모르거든. 성공한다면 대기업 경영자인 동료가 중요해질 수 있어. 하지만 체포당하면 수감자인 동료가 중요해지는 법이야. 일본에 가는 날이 온다면 일본인인 사야카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겠지만, 어쩌면 태국에 가게 될지도 모르지. 중요한 것은 동료의 숫자가 아냐. [유형이 다른] 이런저런 동료가 있는지야"라고 말한다.
이처럼 타자의 ‘사정‘에 개입하지 않고, 구성원 사이의 엄밀한 호수성이나 의무와 책임도 불문한 채, 무수히 확대 증식하는 네트워크 내 사람들이 각자 ‘겸사겸사‘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열린 호수성‘을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이들은 부담 없는 ‘서로 돕기‘를 촉진하고 국경을 초월하는 거대한 안전망 safety net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 ‘열린 호수성‘은 구성원 간의 신뢰와 호수성을 키움으로써 ‘선한 사회‘를 목적 지향적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시민 사회 조직‘의 논리보다 ICT나 사물인터넷 IoT, AI등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주목받게 된 공유경제나 공짜경제 Freeconomics 사상과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즉, 이들의 조합을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나 숙소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 또는 불특정 다수 유저의 게시물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무료로 이용하는 여러 사이트 같은 ‘플랫폼‘ 이라고 생각하면 논리가 통한다. 조합 활동은 이들이 비즈니스를 위해 구축한 SNS상의 경매 시스템이나 전자화폐가 오가는 크라우드 펀딩과 밀접하게 연동된다. - P94

어떤 인물을 다른 수많은 타인보다 ‘신뢰‘할 수 있다고 느끼는 핵심적인 순간은, 역시 자신 외의 누군가가 "그때는 정말 큰 도움을 받았어", "네가 없으면 재미없네"라는 댓글을 남김으로써 적어도 가장 최근의 상황에서 그가 많은 사람의 호감을 얻고 있음을 알게 되는 때다.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사는 데 동행하거나 홍콩 각지를 안내하고, 장례와 모국으로의 시신 운구 같은 탄자니아 홍콩조합의활동에 적극적으로 공헌하고, ‘겸사겸사‘ 낯모르는 젊은이에게 길 안내를 해주거나 집에 머물게 해주는 등의 친절은 반드시 당장의 ‘이익‘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TRUST라는 구조가 있으면 그러한 친절이 돌고돌아 언젠가 ‘새로운 장사‘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정도는 할 수 있게 된다. 즉, 전문적인 사이트가 아닌 SNS 그 자체를 활용하는 행위가 비즈니스상의 이익과 사회적인 실천을 극히 자연스러운 형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렇게 비즈니스에 관한 이기적인 관심과 타자에 대한 이타적인 행동을 분간하기 어렵게 맺어져 있는 구조가 구축되면, 누군가가 내게 베푼 친절에 직접 갚아주지 못하더라도 이게 그 사람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제공한 친절에 상대방이 직접 갚지 않더라도 나는 이미 기회를 붙잡았을지도 모르는 세계가 구축되어간다. 즉, 여기에도 ‘부담‘을 애매하게 만들며 자발적인 도움을 촉진함으로써 ‘분명 누군가가 도와준다‘라는, 국경을 초월한 거대한 안전망을 형성하는 장치가 있는 것이다. - P172

탄자니아인의 플랫폼은 어디까지나 엄밀한 호수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해진 형태가 없고 이질성이 강한 멤버십 속에서, 누군가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은 채 무리하지 않으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 돕기 위한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구축된 것이며, 시장 교환의 논리가 그 위에 올라타고 있을 뿐이다. 즉 ‘닫힌 호수성‘을 ‘열린 호수성‘으로, ‘증여 교환‘을 ‘분배‘로 조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구조가 나중에 시장 교환 쪽에서도 활용된 것이다.
게다가 ‘효율성‘을 추구하여 이들의 플랫폼을 시장교환에 적합한 형태로 세련화 · 제도화해 나간다면, 본래의 목적이었던 ‘인심을 쓰는 기쁨‘, ‘동료와의 공존‘, ‘놀고 싶은 마음과 장난치고 싶은 마음‘, ‘자영업의 자유로운 정신‘의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우선하게 만드는 모순을 낳는다.
친절한 행동은 타자에게 공감하고 동료와 공존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이 ‘장사‘에도 연결된다면 기쁜 일이고 행운이다. 그러나 ‘장사‘를 위해 동료에게 등급을 매기거나 평가하고, 동료를 늘리려는 경쟁이 목적이 되면 친절한 행동 자체가 따분한 일이 된다. 동료를 웃길 수 있는 웃긴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거나 많은 동료에게서 칭찬받는 자신을 찍은 동영상을 올리는 것은 ‘놀이‘이자 ‘즐거움‘ 그 자체이며 겸사겸사 ‘일‘에도 활용하고 있을 뿐, ‘일‘을 위해 인터넷을 뒤지거나 자신을 찍은 동영상을 올린다면 모처럼의 즐거움이 시시해지고 귀찮기 짝이 없는 시간이 되고 만다.
생각해보면 ‘즐겁지 않다‘, ‘귀찮다‘ 같은 매우 자연스러운 실천적인 감각, 거래 실적이나 능력으로 친구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평범한 공정함을 지니고 굳이 ‘카오스‘ 상태로 남아 있는 데에는, 시장 교환과 증여 교환이나 분배의 가치가 역전되지 않는 접속 형태가 있는 것 같다. - P176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앙스파크Mark Anspach는 『다음엔 내가 갚을 차례A Charge de Revanche』‘라는 저서에서 "상대도 같은 것을 한다는 조건"으로 성립하는 상호성(호수성)에 대해 논한다. 서로 돕기는 ‘그를 돕는다면 내가 어려울 때 상대방도 똑같이 나를 도울 것이다‘라고 서로 기대하는 선순환의 호수성이다. 하지만 ‘당한 만큼 갚아준다‘라는 복수의 연쇄, 악순환의 상호성도 존재한다. 앙스파크는 선순환하는 상호성을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자발적으로 증여(빌려주기)를 하고 상대방과의 미래 관계를 믿고 여기에 ‘베팅할‘ - 처음에는 리스크를 받아들일 - 필요가 있으며 더불어 선순환을 유지하려면 서로가 상대방에게 "빚을 졌다"라는 감정을 계속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앙스파크의 논의는 이러한 선순환의 호수성이 얼마나 쉽게 악순환의 호수성으로 전락하는지 설명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문자메시지도 친절도 곧바로 답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빚을 남겨두는 것이 걱정이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내가 준 것과 상대방이 준 것이 등가인지, 매 순간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셈해서 딱 맞아떨어지는지 신경 쓰인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화轉化한다. 현대 일본에서 ‘나만 애쓰고 있다‘,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과 이것이 낳는 두려움- 예를 들면 혐오 발언 - 이, 친구나 부부 사이 등과 같은 인간관계를 맺기 성가시다는 감각부터 연금, 기초생활보장 등의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 P258

마찬가지로, 스스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인간, 완벽한 인간이 되게끔 노력해서 자신의 가능성에 베팅하거나 또는 가치관과 자질이 서로 비슷한 동질적인 소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이에 따른 호수성 및 응답할 의무에 확실히 응답해가는 대신에, 능력, 자질, 선악의 기준, 인간성이 다른 사람들과 가능한 한 많이 느슨하게 연결되고 타자의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우발적인 응답‘의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은 ‘이질성과 유동성이 높고 누가 응답해줄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불합리한 전략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나름대로 해내는 제너럴리스트인 동시에 어떤 인간과도 나름대로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타자의 사정에 깊게 발을 들이지 않고 멤버 상호 간의 엄밀한 호수성이나 의무 혹은 책임도 불문한 채, 무수히 증식 확대되는 네트워크 내 사람들이 각자 ‘겸사겸사‘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열린 호수성‘을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부담 없이 서로 돕기를 촉진하고, 홍콩, 중국, 마카오, 태국, 두바이, 아프리카 국가에 걸친 거대한 안전망을 만들어냈다 - P264

사실 나도 다양한 창업가의 아이디어가 넘쳐흐르는 공유경제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한다. 타자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잉여 자원을 가져 더 선한 사회 실현에 공헌 가능한 ‘시민‘과 밀접하게 관련된 공유경제에서누락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예금 0원, 주소 불명, 직업은 사기꾼, 취미는 방랑입니다"라고 회원 가입란에 써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강조한 ‘겸사겸사‘는 그 사람이 가진 정신적/재정적/능력적/시간적 여력이다. 그런데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유휴 자원이나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목적 지향적인 경제 논리로 ‘겸사겸사‘를 조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겸사겸사‘, ‘무리하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사람이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는 ‘낭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단치않음‘이야말로 각자의 인생을 찾아 홍콩에 와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개별 인간의 자율성, 서로 간의 대등함을 저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를 돕는 이유는 시민 사회, 환경 지속적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연일지라도 ‘함께 있게‘ 된 정체를 알 수없는 타자에게 ‘나는 당신의 동료다‘, ‘당신은 나의 동료다‘라고 표명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즉, 새로운 경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의 논리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동료 간의 증여와 분배를 위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경제의 논리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보츠먼과 로저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인류학자와 사회경제학자들은 "당신이 나에게 좋은 일을 해주면 나도 당신에게 좋은 일을 해줄게"라는 직접 호혜주의 reciprocity의 원리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 친척끼리, 이웃끼리, 작은 마을 주민끼리 거래하던 시절, 서로 얼굴을 맞대고 주고받던 시절, 누가 누구와 어떤 교류를 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서로 돕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 또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주고받는 커뮤니티에서는 어떨까?
소셜 네트워크에서 상호 부조는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간접 호혜주의). 이곳에서는 더 이상 ‘내가 널 도우면 네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단순한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제 상호 부조의 구조는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나를 도와줄 것이다‘로 바뀌었다.

이 ‘내가 널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원칙은 내가 홍콩 탄자니아인의 사회적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있는 원칙이다. - P266

카라마와 동료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종종 이상한 기분에 빠진다. 이들은 하나같이 "누구도 신뢰하지 않아", "누구도 신뢰해서는 안 돼"라고 말한다. 딱히 성격이 비뚤어진 것도 아니고 지나친 경계 태세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제5장에서 언급했듯이 홍콩 탄자니아인들은 모두 배신당한 경험이 있기에 이는 타자를 이해하는 현실적인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주 "나는○○에게 사랑받고 있어", "OO는 나를 좋아해"라고 단언한다. 참여하고 있는 네트워크에 대수롭지 않게 올린 자신의 요구나 아이디어에 우연히 응답하는 자가 나타나면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해"라고 말한다. 누구도 신용하지 않는 할 수 없는 세계에서 나에게 베팅했으니 ‘저 사람은 분명 나를 좋아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듯하다. 그런데 반대로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해", "나는 ㅇㅇ가 좋아"라는 말은 좀처럼 들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올린 요구나 아이디어에 우연히 응해준 타자야말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응하지 않은 타자 때문에 속을 끓이는 것은 애초에 ‘밑져야 본전‘이거나 ‘우연한 상황‘이었으니까 의미가 없는 데다,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또한 내 활동의 성패와 거의 관계가 없다.
물건이나 서비스, 정보가 그때그때 필요한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시스템, 누군가에게 과도한 부담이나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돌아가는 분배 시스템이 시장경제 한복판에서 형성되어가기를 나는 기대한다. 제5장에서 다룬, 내가 잠시 경험한 것처럼 서로 나누어줌으로써 동료가 되고, 그럼으로써 동료가 마침 우연히 소유한 자원 - 무임승차 멤버십과 팔다 남은 상품 - 을 계속 나누어주는 시스템이 넓은 네트워크로 실현된다면 어떨까. 이에 따라 딱히 뛰어나지 않고 때로는 불성실하다 해도 누군가의 변덕 덕에 반드시 살아갈 수 있는 분배경제의 유토피아가 구축되어가는 것을 몽상해본다. 인공지능이든 전통적인 종교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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