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려도 혼자 고민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힘드니까 도와달라고 목소리를 내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가족은 물론,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전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족에게 상담하기 어려워도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말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그런 파트너를 하나씩 늘림으로써 평범한 생활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간병인이 아니라 같이 뭔가를 하는 파트너이자 불가능해진 것을 도와주는 활동 지원자인 셈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돕고 할 수 있는 것은 같이한다." 이것이 치매인으로서 내가 세상에 바라는 것입니다. - P20
처음 가는 장소나 강연회장에 갈 때도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길 안내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회식 때도 가게 이름만 알면 갈 수 있습니다. 혼자 쇼핑을 하러 가면 헤맬까 봐 걱정이지만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안심합니다. 이렇듯 스마트폰은 치매인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도구입니다. 다만 내가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치매가 되기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치매 진단을 받은 뒤에 사용법을 배우려면 쉽지 않습니다. 치매가 되기 전에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둬야 합니다. 그러면 치매에 걸려도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평범한 일상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 P84
카드를 가지고 있을 때와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다릅니다. 카드를 보여주기만 해도 이해한다는 표정이 돌아옵니다. 그런 경험 덕분에 앞으로는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이 카드를 사용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낯선 사람들도 도움을 청하면 모두 다정하게 알려줍니다. 이름을 잊어버려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했을 때 옆에 앉은 여성이 "저도 그 역에서 내리니까 같이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남을 도와주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없는지 알려줘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또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이 병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 P92
불안, 공포, 동요, 불쾌감 등으로 마음이 안정돼 있지 않으면 실수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여기서 ‘환경‘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 P116
질문할 때에는 단답식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열린 질문이라고 영업 때 자주 사용했던 방법을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열린 올림픽 야구 경기를 보셨나요?"라고 물으면 "봤어요"나 "안 봤어요"로 끝나지만 "옛날에는 어떤 스포츠를 하셨나요?"라고 물으면 "야구를 했죠"처럼 이야기가 확대됩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은 전골이 좋지요?" 라고 물으면 "네" 하고 끝나지만 "겨울 음식은 뭘 좋아해요?"라고 말하고 "전골이나 군고구마, 정말 많지요"라고 덧붙여 먼저 얘기합니다. 상대가 "전골이 좋아요"라고 말하면 "어떤 전골이 좋아요?"라고 묻고 "두부전골"이라고 답하면 "아! 두부전골을 좋아하는군요" 하고 마지막은 확인하는 의미에서 예나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게 합니다. 영업에서는 되도록 고객의 얘기를 끌어낼 수 있도록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없게 질문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치매인에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의외로 이야기가 잘될 겁니다. 치매인 중에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쉽게 대답할 수 있도록 예, 아니오로 대답하게 하면 유도 심문이 돼버립니다. - P239
이제까지 오렌지도어는 안식처가 아니라 ‘입구‘라고 얘기해왔습니다. 입구라는 말을 계속하지 않으면 즐거우니까 모두 이곳을 안식처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머물고 맙니다. 오렌지도어는 즐거운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즐거우니까 오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 오렌지도어는 첫걸음을 내딛기 위한 입구이고일본워킹그룹은 국가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입니다. 그 점을 명확하게 해두지 않으면 근간이흔들립니다. 그럼 왜 지역 워킹그룹이 필요할까요? 가까운 곳부터 바꿔야한다는 것을 스코틀랜드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나라가바뀝니다. 국가가 바꾸려고 해도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필요로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역을 바꾸는 것이 바로 국가를바꾸는 것입니다. - P244
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갈까요? 다른사람과 만나면 즐겁기에 가는 겁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나 장소가 있으면 시간을 내서라도 가고 싶은 게 당연합니다. 강연회도 굳이 시간을 내서 가는 것은 뭔가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잡지도 자신에게 좋은 정보가 있을 것 같아 돈을 내고 삽니다.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갔는데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는 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치매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해당할 겁니다. - P251
자립을 생각할 때는 ‘자기 결정‘을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생활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호를 받는 게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생활 지원자의 힘을 빌려 과제를 수행하는 겁니다. 보호를 받아 기능이떨어지는 것보다 어느 정도의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이게 더 즐겁게 생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P255
일본의 케어 매니저도 지역지원센터 사람도 왜 치매인에게 직접 묻지 않고 가족에게만 질문할까요?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면서 그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선은 그 사람에게 무엇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같이 할 수 있을까, 치매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그야 당연하지!‘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당연한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치매인 여덟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얘기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케어 매니저를 아세요?"라고 물었더니 모두 "알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지만 얘기를 나눈 적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케어 매니저 대부분은 치매인에게 살짝 인사한 뒤 "건강은 어때요?"라고 묻는 게 다입니다. 다음은 가족과 상담하니 치매인과 가까워지거나 신뢰가 쌓일 리가 없죠. - P261
스코틀랜드의 치매 카페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축구만 얘기하는 축구장 미팅룸 같은 곳도 있습니다. 잉글랜드 북동부의 요크시 교외에 있는 아로마 카페에도 가봤습니다. 여기도 치매 카페였습니다. 특이하게도 이곳들은 처음부터 치매인만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아주 평범한 카페였다고 합니다. 치매인 대여섯 명이 여러 카페를 돌아보고 치매에 친화적이라고 판단되는 곳에 ‘치매 친화시설(Dementia Friendly)‘이라는 마크를 붙여 선정하는 방식입니다. 치매에 친화적인 시설인지 아닌지를 당사자가 결정하는 겁니다. 물론 카페에는 치매를 공부한 사람과 자원해 일하는 치매인도있는데 도대체 왜 치매 카페인지 모를 정도로 평범해 보였습니다. 클래식한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치매인이 일반인과 섞여 평범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일본처럼 간병인이 데리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동행한 야마사키 선생님이 "이곳에는 한 달에 치매인이 몇 명이 오나요?"라고 책임자에게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런 걸 알면 이걸 하는 의미가 없어요. 모르니까 좋은거아닌가요?" 여기서는 누가 치매인지 묻지 않습니다. 또 알 필요도 없습니다. 치매인이 곤란하면 도와준다, 그 정도입니다. 그래야 치매인이 안심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카페와 같으니까치매인도 느긋하게 커피라도 마시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치매가 아닌 사람도 옵니다. 그런데 일본은 반대입니다. 치매인만 모이게 합니다. 이상하죠. 그러니까 재미가 없습니다. 안식처가 재미있지 않기 때문에 가족도, 치매인도 가고 싶지않은 겁니다. 하지만 가족은 치매인이 집에 있으면 힘드니까 간병보험을 이용해 데이 서비스를 보냅니다.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교적인 사람은 그래도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일반사람이 가서 재미있으면 치매인도 재미있습니다. 치매인들의 안식처가 정말 치매인이 가고 싶어하는 장소인지,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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