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기 : 저는 바로 그러한 ‘사회적 상상‘을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 정상, 독립, 자율로 대표되는 몸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거기에 한 사람의 일상, 관계, 돌봄, 상호의존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로 증발했을까요? 또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치료라는 가능성, 그 불투명한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혀야 할까요? 의료가 이제껏 이런 방식으로 발전해왔고, 우리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재단한 측면은 없을까요? 지금도 각종 매체에서 ‘100세 시대‘ 운운하며 인간이 자연스레겪는 아픔, 의존, 나이 듦, 죽음을 리스크로 만들고 각종 의료기술과 금융상품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소리와 이미지가 넘쳐납니다. 거기에는 현재 삶의 위상을 발견하게 하는 과거도 없고, 총체적 삶이 전제된 미래도 없습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생명‘은 철저히 평가되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상적인 몸‘도 사라집니다. 이제, 다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 P75
호스피스는 ‘특이한 건축물‘이 아니라 환자의 삶을 통합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입니다. 환자의 삶에 관심을 갖고, 돌봄의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의료진이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할 수도 있지만, 환자가 목욕을 하고, 정원에서 바람을 쐬고, 가족 기념일을 챙기고, 여유롭게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죠. 그러고 보면 호스피스는 ‘미결정의 세계‘인 셈입니다. 확실과 불확실이라는 기준으로 환자의 몸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환자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고 실천하는 공간입니다. - P76
‘환자가 원해도 절대 안 됩니다‘도 아니고, ‘환자가 원하니 그냥 다 줍니다‘도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각 사례별로 세심한 판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환자 삶의 질은 숫자로 나타낸 지표가 아니라 다학제팀의 관찰, 관여, 숙의를 통해서 해석된 ‘가치‘라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여기서 가치는 생명 존중, 해악 금지, 환자의 자율성 존중 같은 ‘선언적 윤리로서의 가치 value‘로 요약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환자의 신체 상태, 성격, 경제력, 가정환경 같은 ‘세속적 평가로서의 가치worth‘로 환원되지도 않죠. 호스피스 다학제팀은 이 두 가치의 한계를 경험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가치를 상호보완적으로 다루는 한편, ‘호스피스 돌봄‘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고 순환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에 대한 이야기도 차근차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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