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을 정원으로 빼다니, 흥미롭습니다. 정원에 있으면 자연도 보이고, 아파트도 보이고, 호스피스 2층과 3층의 병실과 복도 창문도 보입니다. 게다가 정원은 1층 로비와 연결되는 곳입니다. 사람들의 동선의 중심에 정원이 있습니다.
정원은 환자뿐 아니라 호스피스를 오가는 사람들의 위치와 관점을 움직이게 합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산책이나 운동을 하면 문제가 달리 보이듯이, 자신의 위치와 관점을 바꿔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죠. 무엇보다 정원에서 사람들은 호스피스가 일상과 분리되지 않고,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곳‘이라는 점을 느낄 것 같습니다. - P53

최대한 환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방법을 찾았군요. 특히 다학제팀에서 그러한 논의를 여러 차례 했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확실과 불확실의 이분법을 넘어, 환자가 처한 상황을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는 점에서요.
제 생각에 그 방역 지침에서 빛을 발한 것은 동백 성루카병원이라는 ‘군집herd‘의 변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군집은 바이러스라는 외부의 적에 대한 자기방어 전략을 세운 게 아니라, 애초에 바이러스와 함께 지낼 수밖에 없는 인간 삶의 조건을 질문했습니다. 서로의 몸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에 응답하려고 했습니다. 코로나19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그저 환자를 격리하는 게 아니라, 엄중한 상황을 직시하되 환자가 겪을 수 있는 불안함, 외로움, 차별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군집, 즉 ‘공동체‘를 변화시켰습니다. - P56

앞서 말기 환자들의 시간이 ‘선형적이지 않고 장소와 인간관계에 의해서 비선형적으로 구성된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그것과 이 연구는 맥이 닿아 있습니다. 즉 말기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들의 시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선형적 경험보다는, 타인에 의해 구성되어 만들어지는 기억의 총화에 가깝습니다.
이 이론을 호스피스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환자·보호자들은어떻게 해야 호스피스에서 잘 지냈었다고 기억할까요? 얼마나 더 오래 살았는지 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호스피스 입원 이후 환자의 심한 고통을 경감시키고, 또 마지막에 좋은 기억이 남도록 환경을 조성하면, 결과적으로 환자와 보호자들이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환자의 재원 일수, 더 나아가 이전 투병 기간에 겪은 고통들에 대한 해석마저 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호스피스에서 사별가족들과의 마무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 P61

계속되는 삶의 이야기

김호성 : 말기 돌봄에서는 환자가 삶의 서사를 구성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학제팀 팀원들이 늘 노력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현실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죠. 하지만 환자의 서사가 갖는 중요성과 가치를 알고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 영역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건강 증진·예방영역, 질병 치료 영역, 재활 영역, 그리고 완화의료 영역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고 돈을 쓰는 곳은 건강 증진 · 예방 영역일 겁니다. 고가의 건강검진은 물론, 다양한 약물이나 기능식품까지 시장이 넘쳐납니다. 또 사람들은 치료 영역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치료 목적을 가진 한국의 이른바 빅5 대형 상급병원의 요양급여비 규모가 4조 원 가까이 됩니다. 다음으로, 재활 영역은 최근 10년 전부터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근골격계 질환도 늘어나고, 퇴행성 질환이 부각되었죠. 여기저기 재활병원을 쉽게 볼 수 있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완화 영역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이 없는 듯합니다.
말기 환자를 어떻게 돌봐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일반 사람들은 요양원, 요양병원, 호스피스, 급성기 병원 등을 모호하게 떠올립니다. 어떤 시설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불분명하게 다가오죠. 생의 끝자락에서 누구나 타인의 돌봄을 받게 됩니다. 삶의 마지막 공간이 반드시 의료기관일 필요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마지막을 의료기관에서 보내는 현실을 고려해볼 때, 말기 돌봄 공간에 대한 논의가 시급합니다. 물리적 시간만이 아니라 삶의 서사가 가진 중요성을 이해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삶의 서사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삶의 서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그런 공간 말입니다.

송병기 : 저는 파리에서 퇴행성 신경질환을 겪고 있는 노인들이 모여 있는 요양원에서 현장연구를 했습니다. 두 개의 다른 세계가 빈번하게 충돌하더군요. 예컨대 입소자 그 누구도 벽걸이 시계를 보지 않는데 곳곳에 시계가 걸려 있었습니다. 의료진과 요양보호사에게 그 공간은 업무 시간표를 기준으로 작동하는 곳이었지만, 어르신에게 시간은 그렇게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입소자에게 아침은 시계가 지시하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둡고 조용하고 느린 감각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어르신은 파자마를 입고 천천히 거실에 나오거나 침대에 그냥 머물 수도 있습니다. 거실에는 블라인드를 치고 조명을 따로 켜지 않습니다. 정 날씨가 흐리면 반만 켰습니다. 점심이나 저녁과 달리 음악이나 라디오 소리도 없습니다. 입소자는 아무 말 없이 지정석에 앉아 커피나 차를 마시고, 비스킷이나 토스트를 먹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옆 사람의 식기를 챙겨주며 한마디를 건네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깨끗한 식탁보를 쓰다듬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하루의 시작은 어떤 옷을 입는 것,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 것, 어떤 장소에 가는 것, 어떤 소리를 듣는 것, 어떤 이와 만나는 것, 즉 총체적 감각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들이 기억을 잘 못한다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고, 배회한다고,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그 삶의 가치가 없어지는 걸까요? 이들을 제정신이냐 아니냐로 판단하는 게 맞을까요? 오히려 이들은 다른 감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간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삶이라는 게 관계성에 의해서 지지되고, 편집되고, 새롭게 읽힐 수 있잖아요. 어떤 곳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시간을 보내는가에 따라 질병이 삶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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