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공간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전화로 "지금 어디야?"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눈앞에 없는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구체적인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대개 학교는 공부하는 곳, 시장은 장보는 곳, 집은 쉬는 곳으로 여겨집니다. 저는 라디오를 즐겨 듣습니다. 만약 방송에서 "마침내 아무개는 화성에 도착했다"라는 말이 나오면, 청취자들은 우주 공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할 겁니다.
장소와 공간이란 말을 나눠서 생각해보죠. 장소는 ‘여러 요소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양이나 상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병원은 진찰실, 병실, 약품, 장비 등의 요소들이 배열된 ‘장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병원을 장소로 이해할뿐만 아니라 ‘공간‘으로도 경험합니다. 공간은 장소에 시간과 움직임이 포함된 개념입니다. 의료법이라는 제도에 의해 규정된, 즉 장소로서의 병원은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실천에 의해 공간으로 전환됩니다. 사람들은 병원의 여러 요소들을 이용하고, 그것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로 인한 연속적인 행위들, 만남들, 상황들은 교차하며 복합적 이야기를 구성하죠. 이런 관점에서 공간은 사람들의 경험과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 P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