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다고 고대 사상가들은 주장하였다. 그리스 철학자들에 따르면 학문, 예술, 정치 같은 자기개발 활동에 시간을 투여할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된다. 실제로 학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school‘은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scholea‘에서 나온 것이다. 여가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곧 학문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 P21
사람들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의 사회적 활동 영역에 시간을 엇비슷하게 투입한다. 첫째 영역은 안면이 없는 사람, 동료, 급우로 채워진다. 이 ‘공적‘ 영역에서는 한 사람의 행위가 남들의 평가를 받게 되고, 또한 한정된 자원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든가 아니면 협조적 공생 관계가 맺어지기도 한다. 한 사람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 공적 행위 영역이라고사람들은 흔히 강조한다. 위험 부담도 크지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둘째 영역은 가족이다. 아이에게는 부모와 형제이며 어른에게는 배우자와 자식이다. 요즘 들어서는 뚜렷한 사회적 단위로서의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고 사실 가족의 정의를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구성 형태로 못 박기도 어려운 노릇이지만, 사람에게는 유달리 끈끈한 정을 느끼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며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강한 책임감을 느 - P23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 오직 그의 행동에만 무게를 두면서 행동주의 심리학자처럼 구는 반면, 스스로를 돌아볼 때는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행동보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더 중시하면서 마치 현상학자처럼 구는 모순된 자세를 종종 보이곤 한다. - P28
의도의 경우는 에너지가 단기간에 투입되는 반면, 목표는 좀 더 장기적으로 투입된다. 우리가 도달하려는 자아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다. 테레사 수녀와 마돈나라는 가수의 삶이 판이하게 다른 것은 두 사람이 평생토록 자신의 주의를 투입하는 목표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일관된 목표의추구 없이 일관된 자아를 만들어나가기는 어렵다. 뚜렷한 목표의 의식을 가지고 에너지를 제대로 투입해야 한 사람의 경험에 질서가 생긴다. 예측이 가능한 행동, 감정, 선택에서 드러나는 이 질서는 시간이 흐르면 개성 있는 ‘자아‘로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 P35
당신에게 스키가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면 그 장면에 당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넣어보라. 그것은 성가대에서 부르는 합창일 수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일일 수도 있고, 춤이나 카드놀이, 독서일 수도 있다. 혹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처럼 당신도 일을 좋아한다면 까다로운 외과 수술이나 피가 마르는 거래처와의 상담에 몰입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또는 좋아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엄마와 아기와 놀 때처럼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순간에 완전히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순간의 공통점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그런 경험을 맛보기가 어렵지만 그 순간에는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것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 P42
목표가 명확하고 활동 결과가 바로 나타나며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몰입은 정신력을 모조리 요구하므로 몰입 상태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몰두한다. 잡념이나 불필요한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티끌만큼도 없다. 자의식은 사라지지만 자신감은 평소보다 커진다. - P45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암벽을 타는 산악인이 고난도의 동작을 하면서 짬을 내어 행복감에 젖는다면 추락할지도 모른다. 까다로운 수술을 하는 외과의나 고난도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가는 행복을 느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 P46
그러므로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가장 보람찬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루의 활동을 설계해야 한다. 말은 쉽다. 그러나 습관과 사회적 관성의 압력이 워낙 크게 작용하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스트레스를 주는지, 어떤 일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밤에 일기를 적거나 하루 일과를 반성하는 버릇을 들이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과연 무엇인지를 차분히 추려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활동이 명확히 드러나면, 바람직한 활동은 빈도를 늘리고 그렇지 못한 활동은 빈도를 줄이는 새로운 실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 P54
목표가 없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차츰 의욕과 집중력을 잃기 시작한다. 마음은 자꾸만 흔들리고, 불안감만 조성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붕괴되는 이런 최악의 무질서 상태를 피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불안의 샘을 의식에서 지워주는 자극에 의존하게 된다. - P85
대부분의 직업은 반복적이고 일차원적인 활동으로 바뀌었다. 매일 하는 일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슈퍼마켓 진열대에 물건을 쌓거나 단순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라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활동이 이루어지는 전체 맥락을 늘 염두에 두고 자신의 행동이 전체에 미칠 영향을 이해한다면, 아무리 사소한 직업이라도 세상을 전보다 살 만한 곳으로 탈바꿈시키는 인상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 P134
삶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면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을 통제하는 힘이다. 바깥에서 오는 자극이나 도전이 나의 관심을 앗아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흥미도 자연스럽게 늘어나서 둘 사이에는 피드백 관계가 형성된다. 어떤 대상에 흥미를 가지면 당연히 관심도 더 쏟게되고, 거꾸로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히 흥미도 높아지게 마련인 것이다. - P166
즐거움을 주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력이 쌓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관계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의 태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자가 되기 위해 기도를 하고 훌륭한 이두박근을 얻기 위해 운동을 한다면 활동의 의미는 반감된다. 활동 그 자체를 즐길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대수롭지 않으며 나의 관심을 다스리는데서 희열을 맛보면 그만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관심의 방향을 좌우하는 힘은 유전 명령과 사회 관습, 우리가 어릴 적에 익힌 버릇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되고 우리 의식에 어떤 정보가 들어올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역은 나 자신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우리는 봐야 하는 대로 보는 타성, 기억해야 하는 대로 기억하는 타성,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신을 숭배하는 사람에 대해서나 박쥐나 국기에 대해서 느껴야 하는 대로 느끼는 타성에 젖어 있다. 인생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그런 타성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생물학과 문화가 정해놓은 교본을 점점 더 그대로 따라간다는 점이다. 삶의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다. - P169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자기의식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어수선한 주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느냐다. 불가에서는 그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이처럼 진지한 유희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근심과 겸손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람은 어딘가에 전념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지혜를 익힌 사람은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성패와는 무관하게 우주의 질서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시도 자체가 그에게는 보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사람만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선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열을 맛보게 된다. - P1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