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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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동등성을 전제하므로, 우정을 만드는 모든 교환은 두 사람 사이의 균형을 깨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P178

결국 가족을 우정의 원리에 따라 재조직하려는 현대의 기획은 우정이 부딪치는 것과 동일한 장애물에 부딪친다. 타인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의지하여 물질적인 필요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그것이다. 그들이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고 평등하며 타산적이지 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의 지위를 법적이고 의례적 측면에서만 -즉 형식적인 관점에서만- 규정하고, 사람 노릇을 하는데 필요한 물질적 자원의 문제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할수 없다. 우정의 조건에 대한 논의는 이렇게 해서 우리를 증여와 환대의 관계에 대한 고찰로 이끈다. - P189

고래들의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이 고대의 코즈모폴리스를 조직하는 원리는 열린 커뮤니케이션 -누구나 제약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하지만 그것이 열려 있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고래들은 아무 매개 없이 동시성 속에서, 모두가 모두에게 직접 연결되어 있다. 동일한 소리의 장 안에 갇혀 있기에, 그들은 교신 대상을 선택할 수 없으며 침묵 속으로 물러날 수도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서로에게 청각적으로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데, 이는 언제나 상대방을 침범할 수 있고, 또 상대방에 의해 침범될 수 있음을 뜻한다. 반면 도서관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영혼들은 책을 매개로 서로에게 접근한다. 그들을 연결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소통 가능성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지평 전체를 감싸는 소리의 궁륭이 아니라, 도처에서 조용히,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교류들이다. 이 교류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혼자 책 속으로 침잠하는 것을 모두 포괄한다. 독서와 대화 사이에는 아무런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독서는 또 다른 대화 -비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 이기 때문이다.
- - P200

하지만 절대적 환대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즉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환대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환대는 실로 우정이나 사랑 같은 단어가 의미를 갖기 위한 조건이다.
그러므로 환대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동학대방지법을 만드는 일,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하는 일, 집 없는 사람에게 주거수당을 주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일은 모두 환대의 다양한 형식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현대적 이상은, 생산력이든 자본주의의 모순이든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떤 자동적인 힘에 의해 앞으로 굴러감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러한 공공의 노력을 통해 실현된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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