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 삶과 죽음에 대한 스피노자의 지혜
스티븐 내들러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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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고 모든 자연물을 관장하는 결정론을 이해하는 자유인은 모든 것을 운명이라 체념하고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일을 침착하게 견디고 세상을 잘 헤쳐나간다. 그는 자유와 사물의 우연성에 관한 잘못된 신념을 근거로 한 외부로 향한 욕망 때문에 발생하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롭다. 다시 말해 인식과 오성은 평온함과 자제력을 가져다준다. 이성적으로 유덕한 사람은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안다.
그러므로 자유인은 가장 참된 의미의 인간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진정 행복하다. - P106

"이성의 지도에 따라 사는 사람은 가능한 한 자신을 향한 다른 사람의 미움, 분노, 경멸을 사랑과 관대함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한다." (스피노자는 관대함(generositas)을 "각자가 오직 이성의 지시에 의해서만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들과 친교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욕망"이라고 정의한다.) - P115

미움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자유인은 시기와 질투에서도 자유롭다. 자유인은 타인의 행운에 기뻐한다. 설사 그로 인해 자신이 처음에 해를 입더라도 개선된 타인의 삶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도 유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이성적 본성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처럼 정념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유인은 자연과 자연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특히 자기 능력의 한계와 모든 사물을 관장하는 필연성을 잘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겨도 이를 침착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우리 이익의 원칙이 요구하는 것과 반대되는 일이 일어나도,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는 사실과 우리가 가진 능력이 그런 것들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연장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전체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질서에 따른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그런 일들에 침착하게 대처할 것이다." - P122

이성적으로 유덕한 인간은 자신이 어떤 인간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알 수밖에 없다. 자유인은 자신의 능력을 언제나 바르고 정확하게 판단한다. 그는 자기 능력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적정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본성과 이성의 힘을 통해 자신이 정확히 얼마나 유능한지 알 수 있기에 이것은 즐거운 인식이다. 그렇게 자유인은 이런 기쁨의 원천인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이성적인 자기애다. 이러한 자기애는 외부 의견에 그 근원이 있거나 외부 의견에 의해 강화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이성적인 자긍심이 주는 기쁨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라고 추정되는 데에서 얻는 자긍심과 달리 걱정이나 불안에서 자유롭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대중의 변덕스러운 평판에 따라 요동치지 않는다. 실제로 자유인은 대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무지한 자들 사이에 사는 자유인은 가능한 한 그들의 호의를 피하기 위해 애쓴다." 자유인의 자긍심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 즉 자신의 덕과 능력에 관한 인식에 근거한다. - P135

아크라시아는 이성적인 관념이 기대하는 선이 먼 미래에 발생하는 반면 표상의 관념이나 정념과 관련된 즐거움이 즉각적으로 존재하거나 적어도 이성의 선보다는 가까운 시간 내에 일어날 때 발생한다. 이를테면 이성은 학생에게 나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익하며 최선의 행동이라고 말하지만, 표상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보내는 즐거운 밤을 상상하게 만든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즐거움이 훨씬 가까운 미래에 발생한다는 사실로 인해 이 표상의 관념은 이성적 관념을 압도하는 더 큰 정서적 힘을 갖고, 그 결과 학생은 친구들과 나가서 노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선과 악에 대한 참된 인식에서 비롯된 욕망은, 이 인식이 미래에 관계되는 한, 현재의 즐거움을 향한 욕망에 의해 꽤 쉽게 억제되거나 소멸될 수 있다." - P147

나약함의 반대는 강함이다. 유덕한 사람, 곧 자유인을 의지가 약한 사람과 구분하는 특징은 정념에 저항하고 오로지 이성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내면의 힘이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포르티투도(fortitudo), 즉 정신의 힘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인식하는 한에서 정신과 관계된 정서에서 생기는 모든 활동을 나는 정신의 힘으로 간주한다."
정신의 힘은 다시 강인함과 관대함으로 나뉜다. 이 둘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위가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유지하고 증대하는 일인지 아니면 타인의 삶까지도 개선하는 일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강인함(animositas)을 각자가 오직 이성의 지시에 의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욕망으로 이해한다. 나는 관대함(generositas)을 각자가 오직 이성의 지시에 의해서만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들과 친교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욕망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나는 오직 행위자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강인함으로, 타인의 이익도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관대함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절제, 금주, 위험에 처했을 때의 침착성 등은 강인함의 일종이며, 예의, 자비 등은 관대하미 일종이다. - P153

그러므로 모든 조건이 동일하면 자유인은 미래에 발생하는 사물을 현재에 발생하는 사물을 볼 때와 동일한 정서로 바라보며, 현재의 선을 단순히 그것의 현재성을 이유로 미래의 선보다 더 욕망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피노자가 간결하게 정리했듯이 자유인의 정신은 "더 큰 미래의 선을 위해 더 작은 현재의 선을 필연적으로 무시하며, 현재에는 선일 수 있으나 미래에는 악의 원인이 되는 것을 절대 바라지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선한가 또는 더 선한가이지, 그것이 언제 발생하느냐는 관계없다. - P159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의 정서를 (가능한 한) 명석판명하게 인식하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신이 정서를 떠나 자신이 명석판명하게 지각하며 온전히 만족하는 것들을 사유하도록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만 정서 자체가 외부 원인의 사상에서 분리되어 참된 사상과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63

따라서 앞서 보았듯이 더 작지만 더 즉각적인 선을 위해 장기적이고 영구한 선을 절대 희생시키지 않는 자유롭고 이성적으로 유덕한 사람은 기만행위가 경우에 따라 그리고 단기적으로 자신의 지속적 삶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지만, 장기적으로는 외부상황의 악화를 초래하여 결국 자신의 완전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므로 생명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자신의 품성을 약화시키고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방법뿐이라면 이성은 자유인이 생명 연장을 선택하게 두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자유인에게는 덕이 지속적인 생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자유인의 이성적 덕이야말로 삶을 살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이다. 덕을 희생해야 생명연장이 보장되는 경우라도 자유인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 P185

이렇게 보면 유덕한 인간은 차갑고 매정한 존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스피노자를 오독한 것이다. 앞에서 보있듯이 자유인에게도 다양한 종류의 감정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왜 하느냐이다. 자유인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그가 능동적 사랑, 능동적 기쁨 등 능동적인 정서에 의해 마음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코나투스와 욕망이 희망이나 사랑 또는 연민과 같은 정념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덕이 아닌 예속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행동은 그가 선하고 올바르다고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그를 기쁨이나 슬픔, 즐거움이나 고통으로 자극하여 변화시킨 것에 의해 좌우된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그런 사람은 무능력하며, 이 "무능력은 오직 인간이 외부 사물들에 휘둘리고, 그 자체로 고찰된 자기 본성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사물들의 일반적인 성질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결정되는 데에 있다."
진정으로 유덕하고 이성적인 사람을 움직여 타인을 관대하고 윤리적으로 대하게 하는 것은 수동적 정서가 아니다. 현명한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안녕뿐 아니라 타인의 안녕도 추구하는데,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 보답에 대한 기대, 상대방이 자신에게 못되게 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다른 인간에 대한 동정심, 위협이나 연민 때문이 아니다. 현명한 이기주의자는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며, 이성이 그것을 명령하므로 그리고 그것이 옳고 선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행동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선의와 도의심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면서, 선의(benevolentia)를 "우리가 이롭게 하고싶어 하는 사물에 대한 연민에서 생기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나 충동"으로, 도의심(pietas)을 "이성의 지도에 따라 삶으로써 우리 안에 생기는 선을 행하려는 욕망"으로 정의한다. 자유인은 선의가 아닌 도의심으로 움직인다. - P199

이는 곧 무엇이 진정으로 자기에게 이로운지 아는 이성에 따라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수준의 이성적 완전함에 도달하도록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다. 이성적 인간이 행하는 타인을 향한 능동적 선의는 그저 타인들과의 교류에 나타나는 사려 깊고 관용적인 행위에 있지 않다. 그의 유덕하고 이성적인 선의는 단순히 다른 인간들의 단점을 인내하는 수동적 태도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선이라고 믿는 것(그것이 맞든 틀리든)을 추구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의 목표나 과제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전통적 의미의 개방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관대함도 아니다.
오히려 유덕하고 이성적인 인간인 자유인은 다른 사람들도 이성에 따라 살고 참된 선, 즉 인식을 추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방법을 강구한다. 이것이 바로 완전성을 위해 노력하는 자신에게 미치는 그들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덕을 추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원하는 선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원한다." 다시 말해서 이성적이고 유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이성적이고 유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한다. 그는 타인들을 대할 때 그들이 이성의 삶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유덕해지는 일은 그들에게도 유익하므로, 결국 이것은 이성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증대하고 그들을 진정으로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하고자 노력한다는 의미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이타적인 동기가 아니라 이기적인 동기일지라도 말이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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