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내가 이 세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세계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그 세계와 연루된다는 것이고, 그 세계에 참여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와 베버가 말하듯 삶과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으로 시작하여 고독한 작업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 출발과 회귀 사이에는 고독한 여정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몸과 영혼을 뜨겁게 하고, 내 가슴 속에서 말을 들끓게 하고, 나의 손발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단순히 주제의 흥미로움이 아니라 바로 동시대인들의 삶이고 그 삶에 섞여드는 사물들의 동시대적 운동이다. 베버와 아버지는 삶과 예술, 삶과 학문을 분리시키라고, 그것을 하나로 합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지나친 열정을 잘 다스려서 성실성으로 바꾸라고 말했다. 나는 베버와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삶에 이끌린다. 친구들과 연인과 동시대인이 살고 있는 삶에 매혹된다. 나는 삶과 일, 삶과 작품 사이를 쉼없이 오간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충고와 살아 있는 이들의 부름 사이를 쉼없이 오간다. 나의 말과 행동, 나의 기쁨과 슬픔은 그 사이 어디에선가 태어나고 소멸하고 다시 태어난다. - P8
나는 지금 그날의 식당을 떠올린다. 그날 나에게 내던져진 ‘영혼’이란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에게 영혼이란 추상적인 개념어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슨 종교적인 광휘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어구도 아니다. 그것은 어느 평범한 아주머니의 입에서 터져나온 육성이요, 일상의 고통으로부터 터져나온 파열음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성좌가 아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언제나 일상으로부터, 태도들 사이에서, 몸짓과 말투 속에서, 모종의 신호로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그때 영혼은 일상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지리멸렬과 강박과 예속에 대해 매 순간 저항하게 하고, 망설이게 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어색하게 한다. 영혼은 우리를 자유롭게하거나 계몽된 상태에 다다르게 하지 않는다. 영혼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영혼은 다만 우리로 하여금 어떤 순간에 어떤말과 행동을 하게 한다. 그것은 놀랍도록 웅변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비참할 정도로 어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혼은 최소한 그말과 행동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자기 것으로 표현하라고 요구한다. - P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물이든 동물이든, 말과 행동을 수행하는 한, 그러면서 나날이 새로운 사건들을 경험하고 그것들을 통과해가는 한, 인간은 어디선가 불현듯 들려오는 영혼의 희미한 모스부호 소리에 감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인간은 어제는 없었던 새로운 지평선 쪽을 향하여 자신의 말과 행동을 감행할 것이다. - P20
집은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니라는 이 명제는 우리에게 계급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장소를 점유하고 그 안에 대화적 자원을 비축할 수 있는 한, 우리는 대화적 능력을 학습하고 키워나갈 수 있다. 지금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소 투쟁은 소유권 너머의 권리를 가리킨다. 당신이 장소를 소유하지만, 잠과 TV 시청을 뺀 모든 활동을 ‘아웃소싱‘한다면, 그곳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이 장소를 소유하지 않지만, 거기 거주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대화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비록 이런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 테지만. - P28
"영감이란 일반적으로 예술가 혹은 시인들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영감의 수혜자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며, 과거에도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뚜렷한 신념으로 자신의 일을 선택하고, 애정과 상상력을 가지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말이죠. 이 세상에 그런 의사들은 늘 있어왔고, 그런 교사들, 그런 정원사들은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행복한 의사, 행복한 교사, 행복한 정원사는 행복한 시인의 동료다. 그들은 일에 전념하며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타인과 교감하는 사람들이다. 시대가 불행할 때 시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시인이 시대의 진리를 증언해서가 아니다. 시인은 불행한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다시 돌아가야 할, 삶과 노동에 잠재한 행복의 형상을 밝히는 자다. 그렇기에 나는 시인은 진리가 아니라 행복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는다. - P32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유강은 옮김, 이후, 2002)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렸다. "우리가 놀라는 까닭은 끓어오르는 조용한 분노와 최초로 들려오는 희미한 항의의 소리, 우리가 절망하는 와중에도 변화의 자극을 예시하는 곳곳에 산재한 저항의 조짐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희미하고 산재하는 조짐들의 누적적 전개를 이해한다면 놀라운 사건은 사실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 친구는 아큐파이의 전사(戰士)이자 전사(前史)였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온 흐름 속에 존재하며 우리의 역할은 그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누구는 대담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이 될 필요가 없고 될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조짐, 움직임이다. 익명의 바통이다. 그리고 그 바통 위에는 ‘끝나지 않았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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