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 5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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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물질은 대립하지 않는다. 물질은 언어에 의해서(만) 물질, 곧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인식 행위가 존재를 가능케 한다. 탈식민주의나 여성주의가 ‘비가시화된 약자‘의 현실을 그토록 문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이미 배제된 (foreclosure)‘ 영역이 있다. 해방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질문하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한계가 아니라 축복이다. - P12

융합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이 ‘아니다‘. 융합은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 생산을 위해 필요하다. 보편적인(uni/versal) 사고방식은 사회적 약자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성의 윤리로 작동할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기준을 각기 다른 상황에 무차별하게 적용하는 보편의 폭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노인 여성, 장애인, 남성, 어린이가 같은 달리기 출발선에 서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이미 배제가 이루어진 불평등이다. 보편의 폭력에 문제 제기하며 등장한 사유가 다양한(poly/versal) 사고, 다시 말해 차이를 인정하자는 배려와 관용의 사고다. 그러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현실은 별로 없다. 문제는 기준 자체이기 때문이다. - P20

융합은 객관성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사유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기존의 인식을 넘어서는 것을 ‘트랜스버설(trans/versal)‘이라고 하며, 횡단(橫斷)으로 번역한다. 단어 그대로 가로지르는 것이다. 가로지름(crossing)은 수직적인 수용이 아니라 기존의 법칙을 파괴하고 재생산하고 다른 의미의 생명체를 만드는 일이다. 호프스태터의 표현인 ‘뒤엉킨 위계질서(tangled hierarchy)‘나 ‘소용돌이(vortex)‘는 융합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유용하다.
융합은 계급, 젠더, 인종, 성정체성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상호 교차성(inter-sectionality)과도 다르다. 계급, 인종, 연령, 지역, 종교를 통한 여성들 간의 억압은 교차하고 겹치는 더 커다란 구조의 매트릭스(母)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융합의 의미다. 즉 융합은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이고 재구조화이자 자유주의 사상의 질적 전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융합의 가장 정확한 번역은 ‘횡단의 정치‘이다. - P21

독자들에게 새로운 여정 (journey), 변화(meta-morphosis), 프레임 조정(framing), 변환(transform), 횡단(trans-verse), 문턱 넘어서기(threshold), 경계선 안팎 넘나들기(bordering), 협상(tuning), 직면(facing), 온몸의 재구성(사지의재조합, re-membering), 거리낌 없는 수용(embracing), 매사를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기(re-flection)의 과정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의 다른 제목이 있다면 ‘공부란 무엇인가‘이다. 아는 것을 버리자. 자기 입장에서 출발해 경계를 넘어서자. 우리 모두 트랜스포머(transformer)가 되자!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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