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 강남 성형외과 참여관찰기
임소연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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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은 가장 대중화된 트랜스휴먼 기술 중 하나다. 많은 이가 성형수술을 염두에 두고 인간 향상 기술을 비판한다. 인간 향상 기술은 쉽게 치료 대 향상 논쟁에 휩싸인다. 많은 인간 향상 기술이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으나 결국은 향상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치료와 향상의 경계는 모호하고 인간의 욕망은 대개 치료에서 멈추지 않는다. - P203

실패한 몸을 동정하거나 조롱하고 성공한 몸을 찬양하거나 질투하는 이분법 아래에서 몸은 둘 중 하나에 속하여 과대 재현되거나, 둘 중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침묵하게 된다. 이것은 이 이분법을 깨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이고, 더 다양하고 많은 ‘괴물’을 더 자주 만나야 하는 이유다.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 어디쯤에서 느끼는 불안과 희망이, 성공과 실패를 끊임없이 오가는 삶을 유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동과 실천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몸은 차이의 근원이면서도 서로 다른 존재들을 묶어주는 유일한 보편적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P207

몸의 이야기가 ‘왜‘의 이야기라면, 살의 이야기는 ‘어떻게‘의 이야기다. - P219

몸의 이야기는 여전히 의미가 크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게 해주는 자원이다. 따라서 몸의 이야기가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살의 이야기는 그 다양한 차이를 연결해주는 보편의 이야기다.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 호르몬치료를 받은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은 모두 다른 이유로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몸과 협상을 한다. 누군가는 그들을 비판하고 조롱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들을 지지한다. 그들의 살은 만족과 불안, 기대와 두려움 등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공유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 ‘몸의 차이‘를 가로지르는 연대를 통해 과학기술의 실천이나 제도 등에 개입하고 개선을 시도해볼 수 있다. 몸을 원하는 대로 바꾸려는 노력 대신 다른 것을 바꾸는 방법을 모색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 P220

나의 성형수술 역시 여성을 억압하는 산업에 공모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잘하고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 성형수술을 한 것이 아닐지라도 나의 선택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과학기술학 연구자로서 나는 보르도와 다른 길을 걷고 싶었다. 아니, 보르도가 멈춰선 곳에서 출발하고자 했다. 그렇게 선택했던 성형수술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성형수술을 선택한 여성들의 경험은 어떠한지 말하고자 했다.
결국 나의 이야기는 성형수술이 마법 같은 변신술이 아니라는, 뻔한 사실을 보여줄 뿐인지도 모른다. 맞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의료사고나 잘못된 성형수술의 사례로 보여주고자 하지 않았다. 그런 예외적인 사례가 갖는 힘은 언뜻 강해 보이지만 사실 아주 약하다. 기껏해야 겁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설아 씨의 염증을 옆에서 지켜본 나조차도 이 사건 때문에 성형수술을 하기로 한 나의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실패한 성형수술이 예외라면, 내가 그 예외에 해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성형수술로 쉽게 미인이 될 수 없음’이 예외가 아니라 규칙임을 보이고 싶었다.
‘기술로 바뀐 몸’은 기술을 선택하고 소비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 이후가 중요하다. 기술이 개입한 살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성형수술의 이야기가 몸을 바꾸는 기술 일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여성의 성형수술 이야기가 인간 향상 기술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자주 몸과 기술의 결합을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치료와 향상, 순수와 세속 등으로 구분하여 다루지만, 살은 그렇게 구분되지 않는다. 향상 목적의 수술이라고 해서 치료 목적의 수술과 달리 감염이 안 되는 것도아니고, 수술 중에 출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두 세계의 어디에 속하든 살은 활성과 저항을 갖는다. 남성의 성형이든 여성의 성형이든, 대학병원의 수술실이든 강남 성형외과의 수술실이든 완벽하게 통제되고 예측되는 기술은 없다.
살과 ‘신의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별 환자들의 삶이 더 진지하게 다루어질 때, 다양한 몸에 개입하는 기술이 개선될 수 있다. 한국 여성들의 몸을 바꾸려는 욕망과 경험이 한국 성형산업의 문제이거나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의 문제라는 틀에만 갇혀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 책이 성형수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한국‘, ‘여성‘, ‘아름다움‘에 특히 집중해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한국이 성형 대국이라면, 한국 여성이 그토록 성형수술을 많이 해왔다면 기술과 몸의 결합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이들은 한국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여성이 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말하는 것, 그럼으로써 한국 여성의 성형수술 이야기가 기술과 몸에 대한 보편의 이야기가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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