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 강남 성형외과 참여관찰기
임소연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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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내가 본 성형수술 연구의 대부분은 동양인, 특히 동양 여성들이 서양 백인 여성을 닮고 싶어 성형수술을 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즉 성형수술이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의 도구라는 것이다. 인종주의와 함께 성형수술 비판에서 주로 동원되는 것이 가부장적 미의 이데올로기다. 한마디로 성형수술이 나쁜이유는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가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들이 인종주의나 가부장제와 같은 이데올로기와 구조적 압력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해왔다. 혹은 외모지상주의라는 사회적 압력이나 그로 인한 실질적인 차별 경험 속에서 성형수술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 즉 개별 여성에게는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둘 다 틀리지 않다. 문제는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선택하지 않게 만들기에는 실효성이 매우 낮은 설명이라는 점이다. 성형수술만 하면 얼굴이 예뻐진다는데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구호가 먹힐까?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혹은 정신승리밖에 할 수 없는 싸움이다. - P37

나는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이 사회 혹은 성형산업에 대한 저항 논리는 최원장의 방식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예뻐질 수 있음에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예뻐지지 않으니 하지 말라는 논리 말이다. 아프지도 늙지도 않게 하는 약이 있는데 어찌 먹지 않을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아프고 늙어가는 너의 몸을 사랑하라거나 아픔과 늙음을 규정하는 이 사회의 ‘정상성‘을 비판하는 것은 한 줌의 사람들로 하여금 약을 먹지 않도록 할 뿐이다. 아프지도 늙지도 않게 하는 약이 실제로 아프지도, 늙지도 않게 하는지 약의 효과 그 자체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건강과 젊음 혹은 정상성의 정의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하는 실증적인 연구와 담론이 필요하다. 개개의 몸은 모두 다르고 다양하기에 몸을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규정 자체를 그만두자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치료받고 개선되어야 할 몸들이 있고, 그 몸들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상성‘의 기준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정의, 더 많은 자료와 설득방법이 있어야 한다. 이쪽이 훨씬 어렵지만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 P38

이렇듯 성형수술의 전문성을 두고 벌어지는 의사들의 논쟁에서 드러나는 것은 심리적 상태나 신체적 기능을 개선시키지 않는 ‘단순한 미용‘과의 거리두기다. 동시에 이것은 미용이 순수한 미용만의 문제가 아님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외모의 문제와 정신의 문제, 그리고 신체기능의 문제는 애초에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성형수술이 "해부학적 영역이 없고 비보험 분야"이며 많은 의사가 "덤비는" 분야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성형외과 대 미용외과의 대립이 보여주듯 성형수술은 의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지만, 그 인기만큼 성형수술 환자에 대한 연구와 지식 축적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형수술에 대한 환자의 총체적 경험 중에서 주로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수술적 기술과 관련된 부분이다. 수술 후의 관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환자의 수술 경험 개선에 필요한 지식 축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가슴수술의 경우 성형외과 학계차원에서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에 대한 자료를 장기적 관점에서 축적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나온 것이 2009년 즈음이다.
특히 수술 후 환자의 삶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성형수술을 개인의 일상에 가두고 각종 문제들을 개별 환자와 개별 의사의 책임으로 돌리게 한다. 공식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환자가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변화에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은 다른 환자의 경험이나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실험적 지식뿐이다. 이런 사정은 의사들도 마찬가지라서 수술 후 환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개별 의사에 따라 다른 실정이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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