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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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때려죽여도 하기 싫은 일. 실은 너무 두려운 일. 왜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사람에게 더욱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무경은 고모의 그 일을 해주었다. 고모는 무경이 그 일을 해주었을 때 자기 안에 있는 구원을 바라는 마음을 보았다. 대체 언니는 어떤 눈을 지녔기에 그 나이에 그 마음을 봤을까, 목경은 아찔해지곤 했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이미상- - P41

가능이 아닌 선택의 영역에서 갈팡질팡하는 고모를 두고 ‘하기 싫은 일’을 기꺼이 선택한 무경은 전前 세대에 해당하는 고모보다 능동적인 수행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여성의 계보를 이어받고 더블 배럴 샷건을 쥘 만하다. 이 소설에서 무경은 의지를 선택의 영역에 두지 않는다. 세번째 명제와 같이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곧 ‘해야 하는일‘이며 따라서 기능과 의지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일치한다. 당연하지만 무경의 선택은 의지가 소거된 고모의 지난날과 같지 않다. 모래 고모의 "비밀스러운 원칙"(40쪽)을 완벽히 이해하면서도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상상의 세계를 모험하는 무경의 선택은 그 자체로 의지가 된다.
-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해설, 모험으로 전복하기, 소유정- - P54

오해는 억울함과 부착되어 있다. 그러나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오해를 일일이 풀기란 불가능하다. 동일한 상황과 사건은 그에 연루된 상대방의 해석에 의해 ‘너‘의 또다른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오해를 풀고 그 자리에 합당한 서사를 기입하고 싶은 욕망은 ‘내‘가 ‘너‘의 세계를 통제하고 조절하려는 욕망일 수 있다. 생의 역동적인 파도타기를 위해 필요한 자세는 이미 지나간 일을 순수 ‘나‘의 의지로 객관화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다만 그것을 ‘빈 괄호‘로 두는 일, 그 어떤 것도 한 가지 의미 층위에 배타적으로 귀속되지 않으며 최소한 두 개 이상의 다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납득하는 태도다. ‘나‘와 ‘나‘의 세계, 그리고 ‘너‘와 ‘너‘의 세계 역시 모두 복수의 상호 연관자들이 역동적으로 구성하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벡터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의 모습은 결코 종합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운동하는 물질로서의 세계다.
-김멜라 ‘제 꿈 꾸세요’ 해설, 커피포리의 물질계, 전승민- - P106

"그런데 할머니 별명이 ‘요카타 할머니‘라고요. 요카타는 일본어로 다행이다, 라는 뜻이죠? 뭐가 그렇게 다행이셨어요?"
요카타, 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였다. 요카타는 다행이다라는 말보다 더 다행 같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어도 요카타라고 말하면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요카타, 라는 말로 체념하고 요카타, 라는 말로 달래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오늘을,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정선임, 요카타- - P222

그가 속한 세계에서 연화는 말하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연화는 이 말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찾는 것에 성공하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그것이 연화 자신을 향한 이야기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 주체의 발화의 어려움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연화를 보편성의 장막에 몸을 숨긴 채 자신만의 고유한 비밀을 만드는 존재로 그리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연화가 이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연화가 자신의 삶에 대해 (아직) 말하지 않고자 하는 욕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발화와의 시차時差를 여성적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의 새로운 자원으로 삼는다. 이렇듯 연화가 자신의 개별적인 역사를 말하는 대신 보편성의 장막 뒤에 스스로의 이야기를 숨기며 은둔을 선택하는 행위는 그녀가 아버지에 의해 오랫동안 유폐된 존재였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한층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가끔 이름이 불릴 때마다 구멍에 숨어 있다 잡혀 나온 게들처럼 당황했다. 하지만 또다시 구멍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다행이었지. 요카타, 요카타." (229쪽)

-정선임 ‘요카타’ 해설, 발화의 시차로 다시 쓰는 해방의 역사, 박서양-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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