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몸 2 - 몸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여성들 말하는 몸 2
박선영.유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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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몸을 볼 때 낯설잖아요. 뭔가 설명되지 않기에 두렵기도 하고요. 그 낯선 몸을 어떤 범주로 분류해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은 필요하겠죠. 그런데 우리는 쉽사리 기존의 정형화된 분류 틀에 기대어 낯섦과 공포감으로부터 벗어나 안도감을 찾으려 해요. 피부색이 다른사람을 보고 ‘백인이네‘ ‘흑인이네‘ ‘아시아인이네‘라고 분류하는 것은 고정된 틀이고 익숙하기 때문에 상식처럼 나에게 들어오거든요. 그 상식을 거부하는 경험이 필요해요.
낯설다고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출발점에서 자꾸 걸음을 떼어보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외국 아이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에서 예쁜 백인 아이들만 비추는 것 같지 않나요? 그러면 ‘백인 아이가 좋다‘ ‘하얀 피부가 좋다‘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스며들듯이 주입돼요. 저는 그게 위험하다고 봅니다. 다양한 몸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다른 몸도 낯설지 않을 수 있거든요. 가까워지면 낯설지 않아요. - P20

현대인에게 몸이란 게 유일하게 내 뜻대로 조종해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아라고 하더라고요. 이 몸에 관해서는 엄청 피나는 노력을 해서라도 내가 이렇게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한다는 거예요. 제가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남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거거든요. 제가 <아워 바디 > 시나리오를 처음 썼을 때보다 두 살 정도 더 먹었는데, 지금 훨씬 마음이 편해요. 누가 뭐라고 하든지 그냥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 얘기가 제일 하고 싶었어요. 남들 신경쓰지 않고 내가 행복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는 것이 제일이다.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제야 느껴요. - P39

말랑말랑하게 늙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면서 신념이라는 것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 신념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다보면 이게 사람을 딱딱하게 만들고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 같아요.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갖되 그것이 나를 딱딱하게 만들지 않게끔 말랑말랑해지려는 노력을 실천하면서 늙으면 참 좋겠어요. 정치적 입장뿐만 아니라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있잖아요. 페미니즘, 환경, 생명, 종교,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너무너무 거대해지고, 강해지고, 유일한 진리처럼 될 때 그것이 또다른 혐오를 낳고 또다른 공격으로 이어지면서 ‘나는 맞고 너는 다 틀려‘ ‘너희는 정의가 아냐‘라는 식으로 더 좁아질 수 있겠더라고요. 저부터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 P43

제가 다양한 운동을 하면서 몸을 굴려봤거든요. 자전거도 타보고 조깅, 요가, PT, 여름엔 주짓수도 배워보고요. 잠깐 하다가 그만두는 것으로서의 운동도 너무 신나고 재미있더라고요. ‘모든 운동을 잠깐잠깐 다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몸을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고, 이런 곳에도 근육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몇십 년을 끌고 다닌 이 육체를 알아가는 기쁨이 너무 크고 근사해요. 여기에서 수영을 배우면 내가 모르는 몸의 다른 영역을 알게 될 거고, 복싱을 배워도 또 알아가는 게 있을 것 같고요. 운동을 너무 못할 때 오는 굴욕감이 있는데 그것도 정다운 거예요. 제가 못하는 걸 사람들이 보고 웃어주는 것도 너무 재밌고, 어떤 운동 하나를 마스터하는 것도 좋은 목표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깨작깨작 이것저것 해보면서 내 몸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신나고 재미있고 가치도 있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기회가 된다면 ‘나는 못해‘ 이런 것 없이 못하면 못하는 대로 다 집적거려보고 싶어요. 농구도 해보고 싶고요. 배구도 해보고 싶고요. 씨름도 해보고 싶어요. 할 수 있는 거라면 다 해보고 싶어요. - P45

어떻게 보면 제가 쓰는 글들은 제 지나간 기억, 그렇지만 마음속에선 지나가지 않고 쌓인 것들에 대한 거예요.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진 그런 시시한 사건들이 제 마음속에 남아서 계속 쌓여가는데, 그 경험들을 언어화하는 거죠. 어릴 때 보았지만 말하지 못했던 사건들, 느꼈지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30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언어로 말하고 쓰기 시작했어요. 그 작업을 지난 10년간 꾸준히 해왔어요. 저 개인은 물론이고 여성들, 사회의 많은 소수자들과 약자들에게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걸 언어화하지 않으면 내가 느꼈던 그 경험들은 없어지는 거예요. 내 안에서 사라지는 거죠. 나는 겪었지만 없는 문제가 돼요. 공식적인 문제가 되지 못하고, 그냥 오로지 개인의 몸속에만 남는 경험이 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아요. 제 몸속에 남아 있는 이 경험들을 다 꺼내서, 제 몸을 구성하는 차별들을 다 꺼내서 문자로 기록하고 말하려 해요.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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