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몸 1 - 몸의 기억과 마주하는 여성들 말하는 몸 1
박선영.유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자기만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됐는지 생각해봤다. 방송을 만들 땐 한정된 시간 동안 할 이야기를 선택해야 한다. 오늘 벌어진 일이라 시의성이 있다거나, 혹은 너무 재미있어서 10분이 1분처럼 흘러갈 이야기라거나. 그런 기준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선택하고 나면 나머지는 버려진다. 버려진 이야기들, 심지어 발화되지않은 이야기들까지 셈하여 생각하면 왠지 그 이야기들을 마구 붙잡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다. 그 버려진 이야기는 오늘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아주 중요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말하는 몸>에서 발화되면 어떨지 궁금했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이야기라도 그 앞에 마이크를 놓으면 무엇이라도 튀어나올 거라 믿었다. 몰랐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감동을 기대했다. 한 시대가 이 작은 개인의 가장 내밀한 구석까지 비집고 들어가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키고, 새로운 사람으로 창조해가는지 그런 심오한 원리를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이야기들이 그러했다. 이야기의 크고 작음보다는 출연자의 ‘이 이야기를 하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았다. - P309

그러나 우리는 이토록 애처롭게 정신승리를 할 필요도, 그렇다고 그 사실을 무시할 필요도, 거꾸로 너무 사랑할 필요도 없다. 노지양의 말처럼 그것이 나의 전체를 규정하게 내버려두지는 말자는 것. 나의 선택지를 제한하지는 말자는 것. 바꿀 수 없는 내 몸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 그 거대하고도 잦은 파도를 피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로부터 멀리, 부지런히 도망쳐야 한다. - P319

저는 사실 살면서 뚱뚱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게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상관없어요.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든 나는 뚱뚱해져버리는 거예요. 그렇다면 나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건 방송에 나오는 몸, 아무리 욕망해도 가질 수 없는 몸에 나를 견주는 거죠. ‘난 뚱뚱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어요.
이런 생각에서 조금 자유롭고 싶어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저는 좀 비관적이에요. 쉽지 않을 거예요. 매일 마음먹고 매일 지는 싸움이 될 거예요.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건 판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완전하게 내 몸을 받아들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오르락내리락하겠죠. 오늘 더 만족을 느낄 수도 있고, 내일은 어제 안 보였던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래서 ‘내 몸을 받아들이자!‘라는 구호 대신에, 매일 지는 싸움이 되더라도 매일 나의 몸에 대해 반성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제겐 필요해요. ‘조금 더 사랑하자‘가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덜 미워하자‘. 이걸로도 충분한 거 아닌가요? - P327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편하게 이야기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몸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감추지도 않고, 콤플렉스조차도요. 저는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글을 기억하는데, 몸에 대해 스스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다보면 조금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주위에 있는 든든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의 든든한 관계들, 확실하고 단단한 사람들. 그 관계 안에서는 나의 몸에 대한 이야기가 쉬운 주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 P3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