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몸 1 - 몸의 기억과 마주하는 여성들 말하는 몸 1
박선영.유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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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게, 별것 아닌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인력이 많이 투입되지 않는 거잖아요. 그 별것 아닌 일을 들여다보면 열 가지, 백 가지니까. 그걸 그냥 하지 말자, 해서 될 일이 아니거든요. - P255

정중하게 말해주는 사람이라면 통계자료라도 보여주면서 말로 싸울 수 있지만 갑자기 "저 아줌마는 왜 이렇게 커요?" 하는 말처럼 훅 찌르고 들어오는 경우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자기를 위해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어떤 몸이든 그 몸을 갖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세상을 살아갈 때 그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중요한 건 여성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는거죠. 사람들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맘껏 먹고 맘껏 살찌우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외모 품평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면서도 외모를 가꿀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형태의 외모이든 영혼이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느 쪽이든 즐겁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거잖아요. 서로의 선택을 지지하고 같이 연대하고 싸울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 P257

좋은 식재료를 좋은 방법으로 조리해서 건강한 식사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들 그런 상황이 안 되니까 못 하는 거잖아요. 그걸 두고 ‘너의 식습관은 잘못됐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누구도 남에게 고치라고 말할 권리가 없어요. 운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운동을 좋아하는 습관을 형성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수 있는데, 누가 감히 가볍게 권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어요. ‘나도 그런 권유에 일조하고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주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은연중에 제가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하거든요. 그럴 때 약간 죄책감이 들어요. 이 고민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요. - P267

나는 점점 바삐 다가오는 미래를 생각보다 무서워하고 있었다. 변화를 주장하면서도 그 변화가 정말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정말 내가 주창하는 대로 변해버려서 그 변화에 수반되는 불안정과 혼란까지 내가 책임져야 한다면, 그 변화의 모범적인 실행자가 되어야 한다면 어쩌지.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처음 밟는 희열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 눈이 가리고 있는 게 단단한 땅인지, 비탈진 내리막인지, 아니면 끝없는 구렁텅이인지는 모를 일이다. 짧은 상상만으로도 ‘난 이런 세상을 만들겠다‘라고 선언하는 이들의 용맹함, 그 미래를 기어이 만들고야 말겠다고 행동에 나선 사람들의 진취성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들이 기존의 길을 답습하든 아니든, 그 밟지 않은 눈밭에 발을 내딛는 것은 인정할 만한 용기 아니겠는가.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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