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7호 : 여성, 살림, 정치
재단법인 여해와함께 편집부 지음 / 여해와함께(잡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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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한순간도 식민주의 없이 존재한 적이 없고 인간이 발명한 식민지 권력은 인종차별, 성차별, 자연착취라는 세 기둥으로 작동한다. 기후위기도 자연을 착취하는 채굴주의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마르케스도 그렇지만 공동체와 자연을 지켜내고자 하는 아프리카나 남미 여성들이 말하는 젠더관계는 서구의 논의와는 다르다. 루고네스는 서구의 발전 담론을 비판하면서 ‘젠더의 식민성coloniality of gender‘을 제기하고 "차이와 함께, 차이 안에서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복수성과 탈식민decolonial 페미니즘을 주장하는데, 이는 기후위기 시대에 새롭게 사유해야 하는 젠더관계의 민주화에 유의미한 참조점이 될 수 있다. - P43

여성이 자연과 서로 연관성을 지니며 공동체 내 자급적인 삶의 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젠더와 자연이 모두 커먼즈의 세계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젠더가 개별적인 성역할로 축소되고 자연이 사유재로 전락하면서 커먼즈의 세계는 자본주의 질서 속으로 포섭된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자연도 원래 세계 속에 붙박고 있던 ‘장소성‘이 박탈되면서부터 소유에서 사유로 그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가령 소유로서의 토지는 선조에서 후손으로 전승되는 것으로 한 가계의 공통생계를 위한 공유재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토지가 사유재로 전락하게 되면 마치 물건처럼 자유로이 사고팔 수 있는 상품화의 길을 걷게 된다. 다시 말해 소유란 장소의 가짐이고, 사유란 장소의 박탈인 것이다. 소유는 공동체 내에서 어떤 장소를 가짐으로써 그 거처를 바탕으로 공공활동을 만들어내지만, 사유는 세계 속에서의 장소를 박탈함으로써 오직 사적인 축적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만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자의 경우는 보살핌이나 돌봄으로 장소를 대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오직 이윤으로만 장소를 다루게 된다. 이렇듯 젠더와 자연 모두 고유한 장소성과 그 장소에 속함belonging을 박탈당하게 됨으로써 커먼즈로서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개별성을 띤 사적인 어떤 것으로 떨어져나가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 P49

그렇다면 이미 대부분의 공유지는 사라지고 저마다 자기만의 방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오늘날 커먼즈 세계를 되살려낼 방밥은 무엇일까? 공동체 없는 공유지는 없다는 미즈의 주장에서 힌트를 얻자면 대안은 더많은 비자본주의 공동체를 조직하는 데 있다. 여기에는 공동육아, 공공임대, 공공도서관, 공원, 공유텃밭을 비롯하여 고립된 타자들이 화폐 경제망에서 탈주하여 환대와 돌봄의 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다양한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구체적인 장소에 토대를 둔 구체적인 접촉자로서의 타자들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촘촘한 자립의 그물망은 우리가 이웃한 타자들과 얼마나 깊은 우정과 연대를 나누느냐에 달려 있지만, 문제는 우정과 연대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낯선 단어가 된 지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 P50

나는 뉴욕에 살면서 온갖 세계적인 운동가들을 만나왔는데 결국 나의 뿌리인 로컬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힘이 센 것 같아요. 학자로서의 새로운 자기 인식과 자부심이 필요합니다. 옛날에는 항상 유럽과 비교해서 뭔가 모자란 느낌, 학문적 열등감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굉장한 일들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야해요. 기존 시스템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아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조언하기를 땅을 구해서 스스로 먹을 농사를 지으라고 하네요.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던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전망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P70

조안나 메이시가 쓴 『생명으로 돌아가기』(이은주 옮김, 모과나무, 2020)를 같이 읽고 있어요. 메이시가 이런 질문을 해요. 요새 네 기분이 어때? 뭘 느껴? 절망 속에서도 감사하는게 뭐야? 절망과 감사를 동시에 느끼면서 네가 잘 할 수 있는 게 뭐야? 그는 불교도답게 희망을 주지 않아요. 너의 세대에 인류가 멸종할 수 있다고 있는 그대로 보라고 말해요. 메이시의 제자인 마가렛 휘틀리는 일생 학교나 기업에서 어떻게 하면 민주적이고 공감을 형성하면서도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지 강의했대요. 그런데 잘 안된대요. 그 이유는 현재 지도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는 제도권에 들어가 세상을 바꾸는 일을 놔버렸어요. 그리고 말해요. "당신이 있는 곳에서 ‘온전함의 섬Islands of Sanity‘을 만드세요. 미래에 어떻게 살겠다가 아니라 오늘 당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사세요. 그 섬들이 둥둥둥 죽어가는 이 지구에 떠다니면서 서로 연결돼 면이 되고 입체가 되도록 하세요." 어떻게 연대하냐고요? 나 자체가 온전함의 섬이 되는 거예요. 물에 빠진 사람들이 허우적거릴 때 내 섬에 건져내서 같이 가는 거예요. 나는 요새 그들을 매일 생각해요. 어떻게 느끼지? 뭐가 무섭지? 감사하는 것은 뭘까? 다 기록하고 써야겠다, 그 생각을 하고 있어요. - P74

걔네의 지향을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순 없지만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토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하자!‘이다. 운동이나 활동의 무게와 부담이 때때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깨우친 뒤라 걔네의 이러한 모토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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