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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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너무 절제를 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 때마다 술을 들였고, 밤늦게까지 모임을 가졌고, 잠도 조금밖에 못 잤고, 그나마도 자꾸 깼다. 논문 두 편과 강연 원고를 쓰느라 일도 무리하게 했다. 그뿐 아니라 가족 모임, 친구들 모임, 사무실 모임, 고객과의미팅, 정부 기관과의 협의까지. 매순간의 긴장, 즉각적인 반응, 권위, 친절함, 생동감, 효율성, 감사(監査). 감사는 벌써 일주일도 넘게 계속되고 있는데 에너지를 과하게 써온 것 같다. 끊임없는 전투 속에서 정신이 휘두르는 칼을 몸이 싫다는 내색도 못한 채 따르는 꼴이었다고 할까.
오늘 아침엔 최소한의 에너지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순간, 이미 순발력이 바닥나버렸다는 걸 느꼈다. ‘밧줄을 너무 팽팽히 잡아당기고만‘ 있다가 이젠 ‘손을 놔버리고픈’ 유혹이 생긴 것이다. 오늘은 모든 일을 의지의 힘으로 결정에 따라 처리해야 했다. 그 결정이란 게, 다른 보통 날들처럼 자연스레 연계되질 않고, 각각의 행동마다 일일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전 단계와 아무런 역동적인 관계도 없이 말이다. 또 각각의 결정에는 그에 따른 노력이 필요했다. 그건 마치 내면에 축적되어 있는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집 밖에 있는 발전기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과도 같았다. 뭔가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발전기를 재가동시켜야 한다. 크랭크를 돌려!
가장 힘든 건, 주위 사람들에게 이 피곤함을 감추기 위해 쏟아야 하는 정신적 노력이다. 식구들에게(피곤 때문에 가족도 낯설다) 똑같이 다정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겐(피곤 때문에 이상하게 낯익다) 전문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침착하다는 내 명성에 걸맞게 행동하고, 내 지위에 맞는 품위를 갖추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내가 쉬지 못하고 필요한 만큼 잠을 자지도 못한다면 발전기 자체가 고장 날 것이고, 난 손을 놓게 될 것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세상은 원래 무게보다 더 무거워질 것이다. 그러면 피로 속에 불안이 침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이 무겁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 있는 나 자신, 무능하고 헛되고 거짓된 내가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친 내 의식의 귀에다 대고 불안이 속삭이는 말들이다. 그러면 난 결국 화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아이들은 날 위태로울 정도로 불안정한 기질을 가진 아버지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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