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최전방이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삶이 너무 촘촘해서 삶에 질식할 것 같은
그 모든 격렬한 문장 속에서
목덜미를 풀어헤치고 나는 다만 노래 부르고 싶었을 뿐,
포효하고 싶었을 뿐.
- 고은강, <고양이의 노래5> 중에서 - P53
물론 글을 쓴다고 고통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와 괴로운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고통을 말했을 때와 말하기 전의 상태가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은 씹지 않고 그냥 삼켜서 목 안에 걸려 있는 느낌을 내사(introjection)로 설명한다. 내사는 외부의 대상을 비판없이 내면에 수용하는 심리적 행위다. 소화되지 않는 이물감이 목 안에 남아 있을 때 사실상 심리적 뇌사상태, 소위 여성적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증상의 기저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런점에서 자신이 무얼 참고 있는지 아는 사람보다 참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더 위태롭다. 내가 무엇을 참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자기를 갉아먹게 되니까. - P75
저는 우주로 대표되는 사람들, 제 이야기를 존중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꽤 많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말했어요.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설사 가족이나 연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고 해도 그가 내 경험과 상처와 감각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요? 저는 실패할지언정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내 세계로 기꺼이 확장하는 사랑를 원해요. -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