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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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지녀야 한다.", "실력을 키워야 한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어느 시대에나 나타나는 지배 세력의 지상 명령이고, 비극의 씨앗이다. 인간의 모든 소유욕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물리적 자원, 능력, 관계, 힘, 사랑………… 이 모든 것은 영향력으로서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 개념에서 갈등과 분쟁, 전쟁, 부패는 필연적이다.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는 여기서 나온다. 집권(執權), 권력 투쟁, 권불십년,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 같은 표현은 모두 권력을 구체적인 영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결국 권력의 최종은 무기(폭력)이고, 이 개념 앞에서 인간의 모든 지성과 윤리는 중단된다. - P73

권력이 힘과 영향력과 통제력이 아니라 책임감과 보살핌 노동이라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권력을 원하겠는가. 이때 권력은 ‘귀찮은 노동‘이다. 권력을 책임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리를 고사한다. 책임감으로서 권력일 때 우리는 그것을 소명, 사명감이라고 부른다. - P80

나는 인간과 사회의 ‘질‘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음과 지성의 용량(capacity)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 P85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각자의 몸이다.
이 모순, 아니 양면을 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 영원히 이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아무리 아파도 내 고통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길"…………. 미국 정신의학자 어빈 얄롬은 이렇게 위로한다(그가 실존주의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모든 이들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다. 그러나 배에 혼자 타고 있더라도 다른 배들의 불빛을 가까이 할 수 있다면 한결 안심이 된다." 조금 다르게 쓰면 삶의 유일한 위안은 우리 모두 비록 깜깜하고추운 밤바다를 혼자 표류하고 있지만, 반짝이는 등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나마 소통하고 있다는 데 있다. - P86

이 책의 부제는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이다. 나는 성찰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 자체가 남발되는 것도 문제지만 ‘아름다운 다짐‘으로 읽히는 어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영어 ‘reflexive‘의 번역어인 성찰(省察)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반성(反省)이 아니다. 자신에게로 끊임없이 되돌아옴(그리고 다시 출발), 재귀(再)의 연속을 말한다. 영어의 ’self‘로 끝나는 ‘재귀대명사‘의 ‘재귀‘가 그것이다. 재귀가 반복될 때 우리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의 상태를 산다. 즉 삶은 항상적인 상태가 없다(無常). 언제나 갱신 중이라는 의미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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